보지 않아도 될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하여
수많은 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 광고, 추천, 리뷰 등을 통해 산 제품이 내 생각과 다르게 품질이 좋지 않거나, 나에게 맞지 않아 실망한 경험들이 누구나 조금씩 있을 것이다. 책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수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 매년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출판업계이지만, 한 사람이 소화할 수 있는 양의 수백, 수천 배의 책들이 매년 쏟아져 나온다. 그 책 중에는 나에게 맞는 책과 안 맞는 책, 좋은 책과 좋지 않은 책들이 뒤섞여 있다. 독자는 더 좋은 선택을 위해 친구의 조언을 듣고, 서평을 보고, 미리 보기를 읽어보는 등의 노력을 하게 된다. 이번 글은 오래간만에 쓰는 '실패담'이다.
Richard Dobbs 외 2인이 쓴 이 책은 빠르게 변화해나가고 있는 현대 사회를 움직이는 4가지의 힘과 그로 인해 생길 변화들, 그에 대한 대비 방법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들은 모두 맥킨지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며, 이 책의 감수도 맥킨지 한국사무소에서 진행했다고 되어있다. 맥킨지라는 이름값과 강렬한 소개 문구 ('산업혁명보다 10배 빠르고, 300배 더 크고, 3,000배 더 강하다!'-근데 구체적으로 어떻다는 건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구글과 링크드인 회장, 하버드대 총장 등의 추천 글들로 기대감을 키웠지만......
1. 누가 이 책을 읽을 것인가?
이 책이 타깃 독자층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는 서문에서부터 잘 나타나 있다. 한국어판 서문의 제일 마지막 구문은 아래와 같다.
우리는 이 책이 한국의 기업가와 정책 결정자에게 소비, 자원, 자본, 노동, 경쟁, 정책 등의 핵심 문제를 결정하는 데 근간이 되는 다양한 가정에 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주고 미래로 항해하기 위해 직관을 재정립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여기에 적혀있듯 정부, 기업의 의사 결정권자들이 이 책의 주요 타깃이다. 거시적인 측면에서 세계가 어떻게 변화되며, 이를 정책에 어떻게 반영시킬 것인지가 이 책의 주요 관심사이다. 실제 2부인 5~9장의 마지막 소제목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인데, 이 대응의 주체 역시 정부와 기업이다. 각 개개인에 대한 언급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기본 타깃은 정부와 기업이다. 내가 정부나 기업의 방향을 결정하는 의사결정권자가 아니기에, 그들의 조언이 바로 와 닿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책의 소개, 광고 문구, 제목 등 모든 것들이 미래의 변화에 대비하고자 하는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되어있다. 이 책이 하루하루 자기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미래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최소한 나 스스로에게는 거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2. 어떤 책들이 더 도움될까?
앞으로 변화해나갈 트렌드를 알고 싶다면 '트렌드 코리아'를 포함한 수많은 트렌드 소개서들, 4차 산업혁명이나 기술 발전에 의한 변화를 알고 싶다면 4차 산업혁명을 소개한 수많은 책과 기술발전에 대한 좋은 책들이 너무 많이 나와 있다. 개인적으로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선 작년 하반기 관심이 생겨 우리나라에서 나온 다큐멘터리들을 몇 개 찾아봤었고, 그 정도만 찾아보더라도 이 책에 소개된 내용을 훨씬 다양한 사례들과 함께 쉽고 재미있게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다.
3. 책을 고르는 방법에 대해.
초반에 잠깐 언급했었지만, 수많은 책 中 나에게 맞는 책을 찾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크게는 책 자체에 대한 소개를 참고하는 방법, 그리고 책에 대한 평가를 참고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책 자체에 대한 소개로는 저자, 목차, 제목, 소개 글, 추천사, 출판사, 표지 등을 사전에 확인해볼 수 있다. 저자가 비슷한 내용의 책을 쓴 적이 있는지 (혹시나 저자의 이전 저작을 읽어봤다면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나에게 흥미를 끄는 내용이 있으며 내용 전개에 큰 무리가 없어 보이는지 (목차만 보고 판단이 쉽지는 않다. 실패한 경우들이 꽤 많다), 제목과 소개 글, 추천사 등에서 흥미로운 부분을 찾을 수 있는지, 그 글을 쓴 사람은 어느 정도 공신력이 있는 사람인지, 출판사가 해당 분야에 대한 책을 낸 적이 많이 있는지, 그 출판사에서 나온 책 중 흥미롭게 본 책이 있는지, 표지가 눈길을 사로잡는지 등이 책 자체에 대해 평가를 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책에 대한 평가를 여러 경로로 확인할 수 있다. 온라인 서점의 독자 평가, 여러 매체 (특히 신문사)에서의 서평들, 서평 블로그, 책 소개 방송, 팟캐스트 등이다. 신문사 서평의 경우 출판사의 홍보물 (온라인 서점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출판사 서평 or 리뷰 or 소개' 칸에 적혀있는 내용)을 요약한 것이 많고, 그런 내용은 온라인 서점에서 이미 다 볼 수 있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분야마다 다르며, 특히 경제경영 분야의 책에서 이런 경향이 심하다. 신문사의 문화/출판 분야 기자분들은 경제경영 분야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런 경향 때문에 좋은 경제 경영서들이 잘 알려지기 어려운 상황이지 않나 싶지만... 이 내용은 따로 다뤄야 할 것 같다) 서평 블로그는 내가 읽은 책이나 관심 분야의 책들에 대해 주로 서평을 쓰는 분을 찾으면 큰 도움이 된다. (잠깐 방심하면 수많은 책을 사는 원흉이 될 수도 있다) 책을 소개하는 방송이나 팟캐스트 (방송은 그리 많지 않지만, 팟캐스트는 매체의 특성 때문인지 정치를 제외하고 가장 활발한 분야 中 하나인 것 같다) 역시 책에 대한 소개를 받고, 관심 분야가 아닌 다양한 분야의 책을 소개받는 데 도움이 된다. (읽지 않고서도 마치 읽은 것 같은 착시현상은 항상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온라인 서점의 밑 부분에는 독자들의 평가가 항상 적혀있으며, 그것도 짧은 평과 긴 리뷰로 나누어져 있다. 100자 평, 한 줄 평 등은 트위터처럼 간단히 읽어서 넘겨볼 수 있고, 내용도 보통 '재미있겠다', '읽어봐야겠다' 등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많은 정보를 이 글들에서 얻을 수는 없다.
긴 리뷰의 경우 서평 블로그에 쓴 글을 옮겨놓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이 리뷰는 항상 조심해서 봐야 한다. 예를 들어 현재 알라딘의 '미래의 속도' 페이지에 있는 긴 리뷰는 총 29편이다. 이 중 책의 출간일이라고 표시된 11/9 이전에 쓴 글이 3개, 11/10~28까지, 즉 출간되고 보름 정도의 기간에 작성된 글이 24개이다. (12월 이후 작성된 글은 2개) 또한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보면 10월 말경부터 많은 서평 이벤트 (책을 증정하고 서평을 쓰는) 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모든 서평이 이런 이벤트에 의해 작성된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이 책의 내용이 여러 서평에 보이는 것처럼 '필독서'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함께 이 책을 읽은 친구들 (이 책은 독서모임에서 선정해 읽게 되었다) 모두 큰 틀에서 내 의견에 동의하였다. 이 책의 타깃 독자층은 굉장히 한정되어 있으며, 일반 독자가 읽기에 더 재미있고, 유용하게 읽을 만한 책들이 많다. 이것이 우리가 내린 결론이었다.
어떤 책을 '추천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많은 글을 쓰게 될지 몰랐다. 다른 경우들처럼 '재미없고, 별 도움도 안 되었네' 정도 생각하고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책에 대해 찾아보면서, 생각보다 이 책의 순위가 높은 것에 놀랐다. 실제 얼마나 판매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책이 출간된 지 꽤 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20~30위권을 유지하고 있고, 이 책을 읽었던 약 한 달 전에는 훨씬 순위가 높아 경제경영 분야에서 거의 손에 꼽히던 책이었다. 그래서 많은 분이 보셨다면, 책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많은 영감을 얻고, 재미있게 읽으신 분들이 크게 언짢아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그냥 한 사람의 의견으로 생각해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