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평 Jan 11. 2020

(1) 내 고향은 프랑스, 그것도 파리!

반가워요. 자칭이지만 빠히지엔느입니다.


그냥 그랬던,
생각보다 회색빛을 띠던,
로맨스보다는 칙칙함이 어울리던,

때론 하늘색은 이런 색이라고 정의하던,
아니 핑크빛 하늘을 가졌던,
골목마다 말로는 표현 못할 느낌이 넘치던,

그래. 내가 찾고 느꼈던 그 도시.
Paris!



처음 방문했던 건 2015년이었다.
인문학 좀 했다는 대학생에게 파리는 배낭여행지로 당연했다. 각종 매체와 책에서 봤던 모습은 로맨틱 그 자체였고 말 그대로 유럽의 상징이고 중심이었으니까.


그곳의 공기는 꿀이라도 흐르듯 달달하고, 해는 서울의 것과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포근하길 바랐던 게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지만 그것이 이유의 전부였다.


2015년 처음 만난 에펠탑


하지만 파리를 처음 만났을 때 알았다. 난 이곳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거다. 퍽 실망스러웠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하겠다.


크고 어두운 철조물에 지나지 않은 에펠탑과 생각보다 좁은 폭의 센 강, 그다지 맑거나 밝지 못한 하늘. 그뿐이었다.


뭐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역시 사람의 눈은 마음에 있나니-


미련은 남지 않았다.

‘겨우 3일 머무른 나의 구(舊) 짝사랑, 구 환상의 도시여. 우리가 언젠간 다시 만날 일이 있을까?’

라며 쿨하게 런던으로 가는 버스에 뛰어올랐던 기억이다.


(서유럽에 막 첫 발을 디뎠던 나는 파리 발 런던 행 버스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의미하는지 몰랐던 것 같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메가버스는 아주 굉장한 젊은이의 포부가 있지 않다면 추천하지 않는다


이후 영국에서 남은 여행을 끝마치고 돌아온 나는 파리라는 남자에 사랑의 배신을 당하기라도 한 것 마냥 이 도시에 대한 뒷담화를 하고 다니게 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지. 1년 후, 다음 유럽을 계획하는 나의 일정표엔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파리가 들어가 있었다.


이제는 갈 이유가 전혀 없는 도시, 날 기다릴 그 어떤 로맨스도 역사도 풍경도 없을 도시를 도대체 왜 잊지 못했던 걸까?


하지만 120만원은 이미 지불되었고,

비행기 표는 내 손안에 있었다.



2017년 여름, 우리는 다시 만났다.
그리고 나는 반해버렸다.

별 일을 한 것은 아니었다.


뛸르히 정원의 널찍한 초록빛 의자에 누워 뚠뚠한 마카롱을 입에 넣어보는 것,

오페라 가르니에 근처의 빗물 촉촉한 벤치에 앉아 번잡한 도시의 풍경을 가만히 살펴보는 것,

근처 도시에서 고흐와 모네, 루소의 아뜰리에에 남겨진 그들의 날숨을 취해보는 것뿐.


뛸르히 정원, 야심찬 네일아트와 함께


특별할 것 없이 그 땅 위에서 서너흘을 자고 난 뒤, 나는 ‘자칭 파리지엔느’가 되었다.
아무도 말릴 도리가 없는 ‘자칭’으로 살게 된 것이다.

이제 내 고향은 프랑스, 그것도 파리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2년 후 똑같은 120만원을 결제하게 된다.
드디어 사랑 앞에서는 선택지가 없는 ‘을’로서의 삶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제 그 사랑의 이유를 하나씩 풀어보려 한다.

여행은 언제든 끝나버리지만 애정엔 정도程度가 없으므로

또 다른 ‘자칭’이 될 그대를 마음 깊이 환영하며...



그럼, À bientô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