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생활 10년 차 가이드
2009년 10월 3일 개천절.
나는 프랑스에 처음 도착을 하였다.
지내오면서 비행기라고는 가족여행으로 제주도를 갔을 때 밖에 없었는데, 살아가면서 이렇게 비행기를 많이 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중학교 때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아 대학도 조리과로 진학을 하였었다.
그리고는 군대에 입대를 하였고, 다녀온 사람들은 알겠지만 새벽에 보초를 설 때면 하염없이 생각에 빠지곤 했었다.
"나중에 뭐해먹고살지?"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때 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었던 질문이었다.
평소 성격이 내성적이었고, 냉정히 나를 들여다보았을 때, 창작이라는 머리가 많이 부족했던 것 같았다.
헌데, 요리라는 것은 뛰어난 창작 기질을 가지고 있어야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는 또 깊이 생각에 빠졌다.
"그럼 내가 잘하는 것은 뭐지?
단점을 찾기 쉽지만 장점을 찾는 것은 어려운 법이다.
그래도 꼬리에 꼬리를 물며 긴 새벽녘의 경계근무 시간 동안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 것은 참으로 행운이었던 것 같다.
결국, 나는 한 가지 장점을 찾아내었다.
창조적 머리는 부족해 보였지만, 기존의 정립된 이야기들을 모아 구성을 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재창조의 머리는 그래도 괜찮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이 와인이었다.
와인은 기존의 만들어진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재조합하여 재구성시키면 재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요리사들 중에 와인을 잘 알고 업무에 임하는 사람은 더욱더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리고 그때 당시에 와인은 우리나라에 대중적으로 알려지지도, 소개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였었다.
"이거구나!"
나는 번뜩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 군대로 책을 한 권 부탁을 해서 받았다.
바로 김준철 교수의 <와인>이라는 책이었다. 7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
이 책을 군대 점호가 끝나면 연등실에 들어가 몇 번을 보았는지 모르겠다.
와인을 한 번도 안 먹어본 내가, 책을 읽으며 와인의 맛이 어떠할지 상상하게 되는데, 그때 그 기쁨이 얼마나 컸었는지 지금도 생생히 기억을 한다.
특히, 보르도 등급체계를 공부하면서 1등급 와인의 맛이 얼마나 궁금하던지...
그리곤 제대를 하고, 바로 와인샵에서 일을 시작했다.
당시 <신의 물방울>이라는 책이 엄청 유행을 하며, 우리나라 와인업계에 활력을 넣어주고 있을 때였었다.
아직도 기억하는 것 중 하나가, 장사가 끝나고 나면 직원들끼리 모여 주머니에 들어있는 와인 캡슐이 누가 더 많은지 세어보고 내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
손님 앞에서 와인을 오픈할 때, 떼어낸 캡슐은 필요가 없으니 주머니에 넣고 쓰레기통에 버렸었는데, 이것을 쓰레기 통에 버릴 정신조차 없었다는 것으로 정말 활기차고 즐겁게 일했던 기억이다.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다 보니, 근처에 매장을 하나 더 낸 사장님께서 제안을 해 주셨다.
"네가 저 매장 관리해볼래?"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모르고 나이도 어렸던 나에게 무엇을 믿고 제안하셨었는지 궁금하기는 하다.
여하튼, 나는 많은 것을 경험해 볼 수 있다 생각하고 제안에 수락을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쓰며 일을 했지만, 처음에는 손님이 적어 항상 적자를 면하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많은 분들이 찾아와 일손이 부족할 때도 생겼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일을 하던 주말 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단골 남자 손님이 한분 계셨는데, 와인을 한병 가지고 왔다며 보여주셨다.
- 이 와인 마셔보셨어요?
와인 라벨을 보고 나는 대답했다.
- 아뇨, 비싸서 저도 못 마셔 본 와인이네요.
- 잔 하나 들고 오세요. 한잔 드릴게요
기분 좋게 와인 한잔을 받고 마셔보려는 순간, 손님들이 물밀듯 들어오기 시작했었다.
정신없이 일을 4~5 시간하고 잠시 자리에 앉았는데, 한편으로 놓아두었던 와인잔이 눈에 들어왔다.
"한번 마셔볼까?"
대수롭지 않게 와인잔을 코에 갖다 댄 순간... 정말 나는 꽃밭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이었고, 바로 잔을 들고 근처 다른 매장의 직원들에게까지 전력질주로 뛰어가 향을 맡게 했던 기억이 있다.
그 와인은 프랑스 부르고뉴(Bourgogne) 지역, 도멘 쟝 자크 콩피홍(Jean Jacques Confuron)의 샹볼 뮈지니(Chambolle Musigny) 2004년 산이었다.
정말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와인이지만, 그 이후로 이 와인은 단 한 번도 마신 적이 없다.
마실 기회가 없었다기보다는 일부러 마시지 않았다.
왜냐하면 다시 마시게 되었을 때, 그때의 향과 맛이 아닐 수도 있기에... 좋은 기억이 깨져버릴 수 있다 보니 일부러 마시지 않았다. 마치 나에게는 첫사랑 같은 와인이랄까?
그렇다 보니 앞으로도 이 와인만큼은 다시 마시지는 않을 것 같다...
여하튼, 이 와인 덕분에 나는 결심했다.
"프랑스로 가야겠다..!"
부랴부랴 준비를 단 3개월 만에 끝내버리고 프랑스행 비행기에 홀로 몸을 실었다.
해외로 나가는 비행기는 처음이었고, 나 홀로 떠하는 여행도 처음이었으며, 더더군다나 난... 프랑스어라곤
봉주르(Bonjour)밖에 몰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