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트뱅 Jun 19. 2020

나의 예.술(酒)에 관하여

어떤 글을  쓸 거야?

가장 싫어했던 만화책


군대를 제대하고 홍대의 한 와인바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었다.

와이너리(Winer-LEE)라는 재치 있는 상호명, 사장의 성이 이 씨였기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주말이 되면 사람이 몰릴 정도로 홍대에서는 그래도 이름이 알려진 와인바였었다. 

정말 즐겁게 일을 했었는데, 가끔 손님들이 이런 말을 할 때 힘이 빠졌었다.


혹시 신의 물방울에서 나오는 것처럼 마셔보시고 표현해 주시면 안 될까요?


신의 물방울에 나오는 것처럼 디캔팅 좀 해주세요


그렇다. 내가 가장 싫어했던 만화책이 바로 신의 물방울이었다. 






저 만화책이 뭐라고 난리지?


내가 또 좋아하지 않는 만화가 있다. 

바로 "요리왕 비룡"이다.

요리와 와인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모습과 내용에 당시 나는 혀를 내둘렀었다.

칼로 재료를 썰면 자동으로 날아가 냄비로 들어가고, 음식과 와인을 맛본 사람의 등 뒤로 갑자기 폭포수가 떨어지고 꽃이 만개하고, 감동한 사람은 갑자기 하늘로 날아가버리고...

물론 이 만화책으로 인해 와인시장에 생기를 불어넣어준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난 인정하기 싫었었다.


저게 말이 돼?


그렇기에 가끔 손님들이 저렇게 말을 건넬 때엔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조금의 불쾌함은 있었다. 

와인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괜히 저러는 거다... 잘난 척하고 싶어서..라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너무 어렸었고, 지기 싫었했으며, 내가 아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마치 투정 부리는 꼬마 아이에 불과했던 것이다.


하지만, 가이드로 활동을 하면서 루브르와 오르세를 비롯한 프랑스의 많은 장소들을 방문하여 작품들을 보며 관련된 이야기와 느꼈던 감상들을 손님들과 공유를 하면서 나의 생각은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이 만화책 진짜 대단하다


제 2사도 샤또 빨머(Chateau Palmer) 1999년과 2000년 빈티지에 대한 이야기를 작가인 아기 타다시는 이렇게 표현을 하였다.


샤또 빨머(Chateau Palmer 1999년산, 모나리자 그림
이 와인은 모나리자이다.

나는 피렌체에서 피사로 향하는 길을 차로 달리고 있었다. 중간쯤 왔을 때일까 문득 낡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가 눈에 들어와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린 나는 몇 백 년 된 올리브 고목이 정원에 심어져 있는 오래된 가옥들을 향해 가지가 휘도록 열린 포도밭을 지나 마을 중심부로 걸어간다. 로마 시대의 납 작돌이 깔린 길을 천천히 걸어 올라가니 오래된 벽돌집 한 채가 나왔다.

나는 그 집에 사는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이상한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작은 마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낡은 집인데 거기에는 완벽한 미와 조리 정연한 조화를 자아내는 불멸의 영혼이 깃들어 있었다. 나는 그 집에 들어갔다. 그 순간, 내 영혼은 아득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미와 수수께끼에 싸인 하사람의 예술가와 해후했다.

그는 나를 자신의 아틀리에로 안내했다. 높은 창에서 쏟아지는 오후의 햇살은 검은 천으로 덮어둔 작은 그림 두장을 비추고 있었다. 예술가는 나를 그림 앞에 세우고 수수께끼를 내듯 천을 걸었다. 두 그림은 정숙하고 애매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여자를 그린 것으로, 구분이 안 갈 정도로 흡사했다.
 
예술가는 나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느 쪽을 사랑하는가?”

 나는 물었다.
 “이 두 그림은 언제 그린 것이오?”

예술가는 답했다.
 “오른쪽 그림은 여름에 그렸소, “왼쪽 그림은 봄에 그린 거요.”

그 말에 또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이 두장의 그림은 누구를 그린 거요?”

예술가는 다시 대답했다.
 “왼쪽 그림은 막 아이를 잉태한 여자요. 오른쪽 그림은… " 

말하다가 예술가는, 장난꾸러기 꼬마처럼 미소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오른쪽 그림의 모델은 가르쳐 줄 수 없소.”

나는 다시 두장의 그림을 비교해봤다.
오른쪽 그림은 보다 힘차고, 아직 물감이 다 마르지 않은 생상함으로 넘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왼쪽 그림은 완성된 부드러움과 자혜로움이 가득해서, 내 마음을 비단처럼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나는 모든 것을 깨닫고, 대답했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왼쪽 그림이요.”


내용을 보면, 이게 무슨 말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하나하나 뜯어보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모나리자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설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다빈치가 바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동성연애자였었다. 자신의 제자 살라이와도 사랑에 빠졌던 그는 평소 자신에게 내재되어있던 여성성을 바탕으로 하여 그녀 내었던 다빈치의 자화상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또 하나가, 16세기 미술학자 조르주 바사리 썼던 <예술가 열전>이라는 책에 모나리자에 관한 언급이 있다. 리자라는 부인이 살고 있었고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 프란체스코 데 조콩다라는 남성과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에는 아이가 생기지 않았고, 몸을 애지중지 관리하여 결국 아이를 한 명 출산하게 된다. 

하지만 너무 애지중지했던 것일까? 아이는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죽음을 맞이했고, 아이를 잃고 슬픔에 빠져있는 아내에게 슬퍼하지 말라며 남편이 당시 최고의 사치품이었던 그림을 그려 선물하려고 한다. 

그 그림 의뢰를 다빈치에게 하게 되는데, 그녀의 초상화를 그려야 하는데 슬픔에 빠진 그녀가 웃어 보이지 않자, 남편은 광대를 불러 그녀에게 웃음을 선사하려 한다. 그런 남편의 노력과 사랑을 알았던 것일까?

그녀는 슬프긴 하지만 그 와중에 애써 웃어 보이려는 듯 애매한 미소를 띠게 되고 다빈치는 그 모습을 그려내게 된 것이 바로 모나리자라고 한다.


즉, 만화책의 설명에서 오른쪽 모나리자는 바로 첫 번째 설화를 말하는 것이고, 왼쪽 모나리자는 두 번째 설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에 작가는 와인 이야기를 덧붙이게 된다. 

보르도 지역 3등급 샤또 빨머(Chateau Palmer)는 1등급을 위협할 정도로 높은 퀄리티로 와인을 생산하는 곳이다. 포도가 재배가 되는 해마다 작황은 다르다. 그렇기에 와인을 만들 때, 섞는 포도 품종의 퍼센트를 달리하여 고유의 색을 지키고 각 해마다의 개성을 입히게 되는 것이다.


와인이 섞인 비율(assemblage)을 보면

1999년 - 메를로 46%, 까베르네 소비뇽 48%, 쁘띠 베르도 6%

2000년 - 메를로 47%, 까베르네 소비뇽 53%

으로, 와인의 힘이라 할 수 있는 떫은맛의 타닌이 강하게 나타나는 까베르네 소비뇽 품종의 비율이 다르다. 

그렇기에 까베르네 소비뇽이 더 많이 들어간 2000년 산을 조금 더 남성적인 다빈치의 자화상에 빛댄 모나리자로, 1999년 산은 조금 더 부드럽고 자비로운 어머니의 모습에 빛댄 모나리자에 적용시켰던 것이다. 


이 얼마나 멋진 비유인가?

이렇게 표현을 한다는 것은 예술과 와인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이해가 있어야 하는 것이며 거기에 하나 더! 

바로 경험이 필요하다. 


모나리자를 직접 보지 않았다면, 그리고 와인을 마셔보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표현해내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경험을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 작가의 노력으로 단 한 권의 만화책으로 즐겁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나는 어렸을 때 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겉멋 든 싸구려 만화책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름대로 공부와 경험을 해보면서 이 만화책이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난, 이런 글을 적어나가고 싶다


나는 신의 물방울 작가, 아기 타다시만큼의 많은 경험과 풍부한 표현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프랑스에 살고 있고, 요리 + 와인 + 예술, 이 3박자의 모든 것을 나름 학교에서 공부를 했고, 관련된 일을 해봤고, 지금도 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재미있는 나만의 예. 술(酒)에 관한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이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이 하며... 

그리고 또 누가 알겠는가? 나도 "신의 물방울" 못지않은 책을 쓸 수 있을지도...?





작가의 이전글 예술과 와인을 사랑하는 남자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