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든 것을 걸고 추천합니다 ; 두메산골 / 88생선구이 / 카페소리
2024년 12월 31일 자정, 제야의 종소리를 온라인으로 듣고나니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2025년이구나. 변화는 주변이 움직일 때, 곧잘 알아챈다. 2024년과 2025년 경계 속에서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속초로 떠났다.
2025년 1월 1일 속초행
서울에서 속초는 약 2시간 반 정도 걸린다. 속초로 향하는 길은 뻥 뚫였고, 반대편 도로는 서울로 돌아가는 차량들은 멈춰있다. 우리가 빠르게 달리고 있다는 것은 주변 차량들이 뒤로 밀림으로써 인식할 수 있었다.
운전은 친구가 담당하고 음악은 내가 맡았다. 내 플리는 운전자의 반응에 따라 빠르게 곡 선정이 진행됐다. 악동뮤지션, 볼빨간사춘기 등 가벼운 곡들을 선곡하다가 국힙 노래를 틀었다. 친구의 반응은 시원찮다. 데이식스, 실리카겔, 소란 등 밴드음악과 함께 팝송을 틀었다. 핸들에서 손가락이 춤을 춘다. 이 장르가 취향인가보다.
데이식스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로 속도를 올려 달리면서 강원도 풍경을 구경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였기에 설레는 마음도 가득하였고 주변이 도시에서 산속으로 자연스레 넘겨가면서 저건너 세상으로 가는 느낌이었다. 두근거림과 설렘. 어렸을 때, 새학년/새교실을 맞이했을 때 딱 이런 감정과 느낌이었다.
속초 찐맛집 인증, 두메산골
친구가 아는 오랜 속초 맛집이 있다고 했다. 서로 허기진 마음으로 '두메산골'을 찾아갔다. 기와한옥집으로 포근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식당이었다. 2시쯤 갔었던 터라, 사람들도 많지 않았고, 친구의 너스레한 친화력으로 사장님께서 크게 흡족하셔서 반찬도 넉넉하게 주시고, 황태구이도 맛있게 구어주셨다. 나물 반찬에 그렇게 손이 가는 것도 오랜만이었고, 황태구이를 고기처럼 쫄깃하게 먹은 것도 좋았다.
내게 음식은 허기를 달래는 용도가 컸다. 시간에 쫓기며 살면서, 맛을 음미하기보다는 하루를 아침/점심/저녁을 구분하는 시간표였고, 다이어트를 하면서는 칼로리를 계산하여 기입하는 수치표였고, 남들이 다가는 맛집지도의 인증을 하는 사진이었다. 그랬었는데, 이 날 먹었던 황태구이 정식은 맛있다고 느꼈다. 맛있었다!!
할머님 사장님께서 밑반찬을 두둑하게 주시면서 더 필요한 것이 없냐고 물어봐주셨고, 창밖으로 보이는 앙상한 나무 풍경들이 온몸으로 겨울 강원도를 느끼게 했고, 무엇보다 요새 힘들다고 하던 친구가 밥 한공기를 뚝딱 헤치우면서 맛있게 잘 먹었다. 음식, 사장님, 풍경 모두가 만족스러웠다. 황태구이와 젓갈, 황태전, 나물, 짱아찌 벌써 그리운 맛이다. 식사에 대해서 다시금 정의를 내리게 되는 그런 맛이었다.
저녁에는 숙소 근처의 속초해변에 나갔다. 속초아이로 유명 관광지가 된 듯, 비교적 추운 겨울밤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바다에는 고깃배들이 반짝였고, 속초아이 거리에는 프랑스 거리를 연상케하는 샹송이 흘러나왔다. 배가 부른 상태에서 보는 풍경들은 비교적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매서운 바람도 견딜만 했고, 모래사장을 거닐면서도 모래가 신발에 들어와도 무신경했으며, 무엇보다 아무생각 없이 멍하는 시간조차 행복했다.
초성으로 세워진 조각물(ㅅㅊ)을 보고 초성게임을 하면서도 까르르했고, 폭죽이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밤하늘에 터지는 것을 보면서도 감탄을 하였다. 바닷길을 터 놓은 길을 따라 가면서 반짝거리는 별들을 보았는데 삼태성(별 3개가 나란히 있는 것)을 보고 오리온자리도 찾았다. 어렸을 때, 대전 천문대에서 친구들이랑 천문 망원경으로 봤던 별들이 새록새록 생각나는 듯하였다.
때론 과거로 회귀하고 싶은 순간들이 더러 있다. 한순간에 어른이 된 지금을 보면, 과거에 좀 더 활기차고 자유롭게 활개치고 다니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 밤하늘의 별들을 볼 여유나 시간조차 핑계삼아 버려두고 있었다니.. 그 날의 속초의 밤하늘은 그 무엇보다도 반짝거렸다.
숯불에 구운, 88생선구이
생선구이는 갈치조림이나 고등어조림 그외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뭐랄까, 생선을 발라먹기도 귀찮고 비린내를 견디면서 요리하기가 비교적 빡센 그런 종목이라고 느꼈다. 그런데, 속초에서 숯불에 구운 생선구이는 무조건 먹어야 한다고해서 열심히 서치해보았다. 아마, '맛집'이라는 타이틀로 내가 찾은 오랜만의 숙제였던 셈이다.
다행히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88생선구이가 있었다. 호텔조식을 포기하고, 무작정 찾아갔다. 다행히 웨이팅은 없었으나, 10여 명의 종업원들과 빈자리가 남기도 전에 채워지는 좌석을 몇 분간 보면서 '정말 대단한 맛집이구나' 싶었다. 좌석에 앉자마자 인원에 맞게 숯불을 넣고 생선구이가 차려졌다. 무엇보다 나는 밑반찬으로 나온 미역국이 너무 맛있어서, 친구 미역국까지 뻇어먹었다.
매번 포케, 샐러드, 요거트로 끼니를 때우는 내가, 미역국을 쓱싹 헤치우고, 생선까지 열심히 발라먹으면서 한공기를 뚝딱 먹는다니. 스스로가 대견했다. 미역국은 청국장 맛과 함께 미역이 신선했다. 생선구이는 노릇노릇하게 구워서 비린내는 안나면서 생선살이 바삭한 것이 이전에는 먹어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맛 표현도 서툴고 음식에도 일가견이 없는 나였지만, 아무말 없이 음식을 먹은 것을 보면 여기는 정말 훌륭함그자체였다.
배부르게 식사를 하고 식당 주변이 항구가 있었던 터라, 산책을 하였다. 고깃배를 살짝 편도로 타면 500원(입장료)를 낼 수 있다더라, 편의점 앞에 앉아있는 외국인 사진작가에게 말을 걸거니말거니하기도 하였고, 불법 촬영의 법적 형량이나 이슈에 대한 얘기도 나눴고, 다음은 어딜로 이동할지에 대해서 (산을 보러가자 VS 카페를 가자) 의견이 분분했었고 등등. 밥을 먹고나누는 어떠한 잡담은 목적도, 의도도 없이 무의식적으로 흐르는 잡담에 불과하더라.
여기는 그냥 카페가 아니다, 카페소리
겨울산을 보며 멍때리고 생각은 정리하고 싶고, 밥도 먹었기에 잠도 깨고 싶었다. 이럴 때, 안성맞춤인 곳이 여기였다. 1층에 레스토랑이 있어서 우리도 처음에 길을 잘못 찾은 줄 알고, 네비게이션을 다시 찍었는데, 2층이 카페였다.
카페는 전체적으로 전시장같이 크고 넓고 쾌적하고 예술작품이나, 조형물로 가득해서 굉장했다. '카페소리'라는 카페이름이 걸맞게 여러 대의 고가의 스피커에서 클래식 음악이 나왔고 실제 부착물에 소리를 더 크게 잘 듣기 위해서 큰소리의 대화를 삼가는 글이 있었다. 컨셉에 충실하면서 내가 원하는 조건(겨울산&맛있는 커피)이 충족된 공간이 이 카페였다.
다음 일정으로 인해서 오랜 시간 머물지 못했는데, 아직도 그 카페에서 울렸던 클래식이 귀에서 멤돌았다. 그만큼 옆사람 목소리보다 카페 전체에 울려퍼지는 그 음악에 모든 것을 맞추면서 겨울산의 웅장감을 체감하고, 아점을 먹고 난 후의 평온함과 안정감을 만끽하게 되었다. 티라미수 케익은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향이 짙고 부드러워서 한 모금 할 때마다,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https://youtube.com/shorts/NNbDPIZ3rX0?si=fXzaMZPkr7Gy2EPW
#2025새해 #2025년여행 #속초여행 #두메산골 #황태구이정식 #88생선구이 #카페소리 #속초맛집추천 #속초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