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직관, 로마의 휴일, 경복궁 출사
요근래 pt를 하면서 이전에 했던 크로스핏과 다르게 부위별상세한 피드백을 받았다. 그 중 하나가, 데드든, 씨티드든, 로우든 어느 부위를 집중적으로 운동을 할 때 힘을 갑자기 확 뺀다는 것이다.
보통 3세트를 한다고 할 때 서서히 횟수가 많아질 때 자연스레 힘을 빼는데 나는 한번 더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세트에 힘을 확 풀어 마지막에 모든 자세가 다 틀어진다는 것이다. 풀업으로 매달리거나 무게가 있는 바(bar)를 들어올릴 때, 사실 무의식적으로 느끼긴 한다. 3초의 “한번 더”가 나에게는 어찌나 버거웠던지.
올해는 내게 3초 정도의 찰나가 나를 좌지우지하는 날이 많았다. 3초가 3분만큼 길게 느낀 적도 있었고 슬로우모션처럼 그 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하기도 하였는데. 이를테면 방금까지도 까르르하던 그 행복이 갑작스런 문자를 보고 깊은 우울감으로 하루를 마감하기까지 한 날도 있었다.
빈도가 잦아질수록 오락가락하는 감정상태로 차라리 무감정을 디폴트로 살아가는 것이 낫다고 보내게 되는 날들이 생겼다. 에너지가 없는 삶은 생기를 잃어갔고, 이 때문에 외부환경으로 역으로 재충전하는 일들을 새롭게 찾아갔다.
올해 농구공을 처음 잡고 경기장을 뛰면서까지 농구 경기 규칙(룰)자체도 잘 몰랐다. 우연히 학교 친한 언니가 서울 잠실에서 하는 경기가 있다고 보자고 하였다. 스포츠는 관람보다 직접하는 것을 즐기는 나이기에 사실 의무적으로 따라간 날에 가까웠다. 그러나 2시간 농구 경기를 직관하고나서 황홀했고, 충격적이었다. 우선 농구경기는 토요일 14시에 고양 소노와 서울 삼성의 경기였다. 경기 시작 30분 전부터 오면 선수들이 몸풀고 있는 것부터 과자 및 음료를 사와서 경기장에 익숙해질 수 있는 여유가 있더라.
농구코트가 생각보다 관람석과 가까웠고 관람석에 팀별로 나눠 앉아 응원하는 열기가 너무 체감되었다. 직접 하던 농구가 장난이었고 선수들이 직접 하는 농구가 진짜라는 것도 꺠달았고 전광판에 비춰지는 모습과 방방 뛰게 만드는 음악들과 생중계까지, 모든게 생동감이 넘쳤다. 모든 감각들이 바짝 긴장하며 보여지는 관경을 놓치려하지 않았고 본능적으로 소리지르고 박수치면서 오직 경기 하나로만 집중을 하게 되더라. 오랜만이었다. 몰입하고 흥분하면서 즐겼던 순간이. 모든 게 노잼이었던 일상이었는데, 너무 처음으로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느 팀도 아닌 내가, 고양 소노를 응원하고 있었고 경기룰도 헤매던 내가 최소한 더블드리블 반칙을 온전히 이해했고, 선수 이름을 숫자로만 보던 내가 “6번 국가대표 이정현”은 외우고 있더라. 3쿼터까지 상대팀의 역전 여지가 있어 조마조마하던 때였는데, 4쿼터에 격차를 벌려놓으면서 승리하니깐 그때 소리지르면서 탄성을 질렀던 것이 아직도 새록새록하다. 웃는 날이 많이 없던 수개월째에 억지가 아닌 흥분에 겨워 박장대소하던 그 날이 너무 감사했다. 한번도 안해본 일이 이렇게나 즐거울 수 있다는게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주말 한 세션에서, ”번아웃 극복하는 법“으로 원우들과 돌아가면서 포스트잌으로 나만의 방법을 적었었다. 그 중 하나로 ”고전영화 보기“를 추천받았다. 최근 나온 영화도 안 보는 내가, 고전영화까지 굳이 찾아보는게 가능할까싶었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학교수업이 줌으로 대체되면서 집에 혼자 있어야했다. 줌수업은 대체로 집중이 안된다. 그날도 그랬다. 유튜브로 간략하게 로마의 휴일 요약본을 찾아보았다. 말광량이 공주의 궁전 탈출기같은 그런 이야기같더라.
처음에는 집중하지 않고 옛날 따분한 고전영화처럼 틀어놓았다. 앤 공주가 궁에서의 일과를 따분히 여기면서 로마 거리에 나서면서부터 갑자기 너무 몰입이 되었다. 이후 미국인 기자와 함께 로마를 돌아다니면서 즐기는 모습들과 나오는 음악들이 너무나도 뭉클해졌다. 영화가 흑백이라 그런가, 더 히스토리가 있는 듯하고 앤 공주의 생기발랄한 자유가 부러워서인지 대입이 돼서인지 영화 중간중간 눈물도 나더라. 영화 마지막은 앤 공주는 궁으로 돌아가 본인의 본업을 하면서 미국인 기자와는 가벼운 이별로 열린결말로 마무리가 된다.
그렇게 두시간을 보내고나니, 나는 또 생전 즐기지 않는 고전영화에 몰입한 내가 되어있었다. 무채색같았던 내가 웃고 울고 감동받으면서 다채로운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오랜만에 깨달았다. 안해본 일은 내가 싫어하는 일이 아니라, 모르는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봤다. 고리타분할 것 같다는 흑백영화와 뻔한 스토리같았던 고전영화는 내 선입견이었고 이 날만큼은 내 세계였다. 그렇게 영화를 보고나서 추천해준 원우님께 감사인사를 하고 그 날만큼은 푹 잠도 잤다. 평일이었는데도 지치지 않고 행복감을 느꼈던 때였다.
날은 좋았고, 주말 아침에는 눈이 빨리 떠졌다. 2025년이 가기 전에 “안국역”은 또다시 가보고 싶었다. 그렇게 충동적으로 캐논카메라를 들고 버스를 탄 게 12월 초였다. 사실 폰으로 찍는 사진 외 직접 카메라로 나가는 일은 지난 3월 외 없었고 찍고 싶은 대상도 딱히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문득 눈 앞에 보이는 카메라로 안국역에 가고 싶다는 충동은 우연이든 필연이든 좋은 용기였던 것 같다. 침체되는 주말이 싫어서 무작정 나가기로 한 내가 억지로라도 세상과 등을 지지 않기 위한 노력인 셈이다.
막상 안국역에 와도 찍고싶은 대상이 없어 무작정 카메라로 간판, 건물, 사람들 등을 찍었다. 그렇게 국립현대미술관과 민속박물관을 거쳐 경복궁 앞까지 가게 된 것이다. 케데헌 열풍으로 이미 외국인 관광객들과 한복입은 사람들로 넘쳐나던 때였다. 학창시절 수학여행으로 왔던 모습, 3년전에 가족들과 왔던 모습, 사촌들과 한복입고 야경을 즐겼던 모습 등등 경복궁에는 여러 추억들이 보였다. 어느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자연스레 셔터를 누르고 카메라로 여러 풍경을 담아내면서 음미하는 나를 발견했다.
사진찍는 걸 좋아하고 찍히는 걸 즐기는 내가 과거 속의 모습이라고 차치해버렸는데, 경복궁 앞에서 웃으면서 그 날의 분위기를 온전히 느끼는 것을 보면 감추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혼자서도 즐기고 당당할 줄 아는 나였는데 무엇이 그렇게 무서웠는지 오랫동안 주저했더라. 숨이 터지는 느낌이였고 방해받지 않는 자유가 너무 좋았다. 내가 나와 마주하지 않았던 시간들이 길어지면서 감정을 돌보지 못했고 건강을 챙기지 못하면서 스스로가 늪에서 허우적대면서 좌절을 하지 않았나싶더라. 오랜만에 본 경복궁 풍경은 여전히 웅장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