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읽고 남은 생각
영화 <어쩔수가없다(2025)> 박찬욱 감독. [원작: ‘액스(The Ax)’(1997)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
제지회사 ‘태양’에서 “해고는 살인이다”를 외치던 노동자 유만수(이병헌)가 해고된다. 새 일자리를 찾아 ‘문(門 혹은 moon) 제지’로 향한 그는, 이제는 본인이 취업하기 위해 경쟁자들을 '살인'하기로 한다. 그의 목표인 회사 ‘문’은 통과해야 할 문(門 )이자, 쫓겨난 ‘태양’의 낮의 밝음과 대비되는 달(moon)의 어둠이다.
유만수는 평생 자신의 꿈이었던 집을 샀지만, 해고 후 집은 가족에게 눈치 보이는 불편한 공간이 된다. 만수는 집보다는 옆 ‘온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경쟁자도 ‘온실’에서 처리한다. 처리한 시체를 집 마당 나무 아래에 묻는데, 마치 시체가 나무를 자라게 해 종이 나무를 만들어 줄 것 같은 느낌이다.
가족은 더 답답하다. 자신 때문에 생활 전선에 뛰어든 와이프는 외도할 것 같고, 아들은 좀도둑질하다 경찰에 끌려가고, 딸은 첼로 영재 소리를 듣고, 선생님으로부터 초고액 강사에게 가야 한다고 추천받지만, 절대 가족에게는 연주를 들려주지 않는다. 결국 만수가 경쟁자를 살인하고 ‘문’에 입사하자 딸은 기다렸다는 듯 가족에게 첼로 연주를 들려준다. 이제 집안의 경제 문제가 해결된 것 같으니 자신을 초고액 강사에게 데려가달라는 말보다 강력하다.
영화 ‘어쩔 수 없다’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유만수와 제지맨들의 종이에 대한 찐사랑이다. 만수가 경쟁자들을 없애기 위해 가짜 채용공고를 내서 종이로 입사지원서를 받는다. 채용 공고에 유만수는 “원서는 경기도 모처 사서함 76호로 보내주세요. 인터넷 접수는 거부합니다. 우리가 종이를 안 쓰면 누가 쓸까요?”라고 썼다. 그리고 종이 이력서가 밀려 들어왔다. 그 대사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원작 소설 ‘액스(The Ax)’가 90년대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라 20년이 넘은 소설을 현대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겠지만, 영화는 그 간극을 관객을 설득시키는 멋진 대사로 승화시켰다.
총이 가진 이야기도 의미심장하다. 원작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아버지가 독일군 장교에게서 빼앗은 루거 권총을 사용한다. 영화에서는 베트남전 당시 만수의 아버지가 죽은 베트남 군인에게서 빼앗은 권총이다. 영화는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그늘까지 아우르고 있다. 그리고 그 총으로 저지른 일은 추적당하지 않는다. 마치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이 벌인 잔인한 일들을 지금 아무도 추적하지 않는 것처럼.
원작 소설의 결말은 주인공이 면접을 보러 가기 직전, 경찰이 집에 찾아와 그동안 경쟁자들의 수상한 죽음에 용의자로 지목됐던, 하지만 실제로는 주인공이 죽였던 사람이 사라졌다는 말을 전하면서 끝난다. 반면, 영화에서는 만수가 ‘문' 제지 면접에서, 노동자들을 해고해야 하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어색한 웃음으로 순간을 모면한다. 그리고 입사에 성공해 자동화 기계를 관리하는 '문' 제지의 유일한 노동자가 된다.
사실 소설에서는 경쟁자들을 죽이는 과정과 심리 묘사가 매우 자세해서 섬뜩하고, 실감 나지만 경쟁자로 나오는 등장인물도 많아 반복되는 느낌이 있다. 특히 90년대 미국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고, 사회를 비판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너무 빈번해 약간 뻔하다거나 반대로 반감을 가질 독자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찬욱 감독은 이런 점을 의식한 듯, 영화에서 살해당하는 인물 수도 대폭 줄였다. 마지막에는 기계로 대체되는 노동자를 보여주고, 딸이 직접 집에서 첼로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간결하고, 집약적으로 사회비판하는 결말이 아름다웠다.
책 보다 재미있는 영화는 드문데, 나는 영화 ‘어쩔수없다’가 더 좋았다. 내용상 취직을 위해 살인을 저지른다는 설정 자체로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긴 하다. 그걸 보면서 만수가 ‘살인에 성공했으면’하는 내 추악한 욕망을 확인하게 되고, ‘그래도 사람을 죽이다니’하는 죄책감을 건드리기 때문이 아닐까. 박찬욱 감독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