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남은 생각들
<사탄탱고>(1985) /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202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작품이라 궁금해서 읽었는데, 세상 불친절한 소설이었다. 1994년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러닝타임이 무려 7시간 19분이라고 한다.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그래도 소설 쪽이 조금은 낫지 않을까 싶다.
이 소설에는 배경 설명이 거의 없다. 장소도, 시대도, 인물들의 관계도 독자가 스스로 짐작해야 한다. 읽고 나서야 알게 된 건, 1980년대 헝가리의 쇠락한 농장 마을을 배경으로 한 공산주의 체제 붕괴 이후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80년대 헝가리나 공산주의의 붕괴 자체가 생소하다 보니 인물들의 행동이나 분위기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작품 전체를 뒤덮는 끊임없는 비의 이미지가 상상력을 무겁게 눌러 앉힌다. 착취와 배신, 거짓된 희망, 그리고 반복되는 무력함이 작품 전반을 감싸고 있다. 인간의 비참한 조건과 역사의 끝없는 반복을 그린 걸작이라지만, 읽는 내내 우울함이 앞서 그 의미를 곱씹기 어려웠다.
제목 속 ‘탱고’ 장면은 단 한 번 등장한다. 그것도 어린 소녀의 죽음과 맞물려, 즐겁기보다 섬뜩하게 다가온다. 마을 사람들은 밤새 이리미아스를 기다리며 술에 취해 탱고를 춘다. 그는 한때 마을을 이끌던 인물이었지만, 어느 날 정부에 붙잡혀 사라졌고 곧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다시 돌아온다는 소식이 들리자, 사람들은 그가 이 황폐한 농장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라 믿는다. 그 믿음의 광기 속에서, 그들은 한 소녀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그리고 더 아이러니한 건, 그들이 기다리던 이리미아스가 사실은 단순한 사기꾼이라는 점이다. 사기꾼을 위한 탱고, 소녀의 죽음을 몰랐던 탱고, 바로 사탄의 탱고였다.
<사탄탱고>는 공산주의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독자를 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불친절함 속에서 인간의 보편적인 나약함과 간교함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메시아처럼 등장한 이리미아스는 사기꾼이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를 의심하기보다 오히려 믿고 따르고 감사해한다. 마치 사이비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나마 독립적인 푸타키나 의사 같은 인물들이 이리미아스를 의심하지만,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 결국 이 소설의 인물들은 모두 길을 잃거나, 의심 속에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어쩌면 그 ‘길 잃음’ 자체가 라슬로가 말하고자 한 인간의 운명일지도 모른다.
<사탄탱고>는 ‘희망의 부재’를 통해 인간을 바라보는 냉혹한 시선의 소설이다. 하지만 그 절망의 진창 속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누군가를 믿고, 다시 속고, 또다시 살아간다. 라슬로가 보여주는 세계는 우울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쉽게 현혹되고, 또 얼마나 완고하게 살아남는 존재인지 되묻게 한다.
책 속의 마을은 1980년대 헝가리지만, 그 착취와 무기력, 맹목적 믿음은 지금의 세상에서도 낯설지 않다. 누군가의 말에 기대며 체제를 탓하고, 그릇된 희망으로 내일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사탄탱고>는 그런 우리 모두의 초상처럼 느껴졌다. 인간은 왜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속을 줄 알면서도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따르려 하는가. 어쩌면 그것은 인간이 본래 결핍된 존재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한계를 알기에, 자신보다 강해 보이고 나아 보이는 이를 구원자로 세워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희망을 위탁한 채 살아가는 나약한 인간. 그러나 그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구원자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우리가 추던 그 기다림의 춤은 결국 ‘사탄의 탱고’였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