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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녕그것은 Jul 01. 2020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날은

[편의점에서 유럽까지] #4. 가르델리 더치 치즈 위드 트러플


 응답하라 1988의 마지막 회는 쌍문동에 살던 가족들이 하나 둘 모두 동네를 떠나며 쓸쓸하게 홀로 남은 골목의 모습과 함께 끝이 난다. 살던 동네는 대개 모두에게 추억으로 남아있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는 예외지만.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나의 10대를 온전히 보낸 동네에서 딱 10년 후 다시 살게 됐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때는 엄마, 아빠 집에서 살았지만 이제는 나와 동생의 집에 살고 있다는 것. 다시 돌아온 무지개마을은 여전한 듯 달랐다. 10년이 꽤 긴 시간이었다는 것은 하늘을 가릴 만큼 울창해진 가로수들이 증명해 주고 있었다.


 10년 전 살던 집은 탄천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학교에서 열리는 다양한 행사들도 탄천을 톡톡히 활용했다. 체력장이나 체육대회는 물론, 학급 단합대회 뒤풀이로 탄천 수영장에서 해질 때까지 물놀이를 했던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선명하다.




 다시 이 동네에 이사 온 며칠 뒤 술을 한잔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나는 오래된 책상 한 켠을 가만히 쓸어내리는 마음으로 탄천을 찾아갔다. 가로등이 시야에서 흔들거리고 운동하는 사람 몇, 아이들이 몇 뛰어놀고 있었다. 나는 잠시 앉을 수 있는 물가 계단 가까이로 향했다. 플랑크톤의 냄새일까. 비릿한 듯, 푸른 듯, 잊고 있었던 탄천의 냄새가 불현듯 뇌관 깊숙이 파고들었다.





눈이 오면 썰매를 타기 위해 달려갔던 내리막길, 우리 자매가 롤러브레이드를 타는 동안 엄마가 앉아있던 벤치, 자전거를 끌고 나서던 저녁과 풀벌레 소리. 작은 돌다리를 건널 때 나던 쿰쿰한 탄천 저 아래 바닥의 냄새까지. 기억이 눈부시게 펼쳐지는 이곳이 그대로 있었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된 밤이었다. 







[가르델리 더치치즈 위드 트러플]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트러플이 들어간 네덜란드 치즈다. 약간은 퍽퍽할 수도 있는 고다치즈인데 한입 베어 물자마자 트러플 향이 황홀하게 퍼져나간다. 트러플은 역시 반칙인 것 같다. 시원하게 칠링한 값싼 화이트 와인 한병만 있으면 세상 부러울것 없다.





 나는 이 치즈를 캠핑에서 처음 만났다. 치즈에 트러플은 왠지 과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에 불과했다. 오히려 치즈의 끝은 어딜까, 치즈는 어떤 음식과 더 어울릴 수 있을까? 라는 실험정신이 솟아날 정도였으니까.

 이후 서울 도심 레스토랑에서 트러플이 들어간 음식을 먹게 될 때면 나는 처음 이 치즈를 먹었던 그 캠핑장의 풍경이 떠오른다. 너무 조용했지만 파도만큼은 맹렬하게 치던 고성의 바닷가, 쨍한 그때 그 텐트의 색깔, 내리쬐던 한낮의 태양을 피해 까무룩 잠들었던 그늘막과 사람들의 이야깃 소리들. 추억이라 말하기엔 너무 생생한 순간들이다.





 끼니를 때워야 하는 저녁 꾀를 냈다. 트러플 치즈로 호사를 부려보기로 했다. 냉장고 속 두부를 숭덩 숭덩 잘라 식용유에 부쳤다. 따로 간은 하지 않았다. 트러플의 맛을 조금이라도 해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치즈도, 두부도 멋대로 잘라내도 상관없다.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저녁 천 원짜리 두부 한 모와 식용유 그리고 가리델리 위드 트러플이 아주 완벽하다.


냄새로 인한 향수는 언어나 사고에 의해 희석되지 않는다. 가리델리 위드 트러플 치즈를 준비한다면 당신은 마치 초능력을 가진 것처럼 언제든 그 순간을 꺼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랑도르사의 가리델리 위드 트러플 치즈력 97%

[치즈력]은 치즈의 정령이 지극히 주관적으로 가격과 맛 식감 유통기한을 포함해 평가하는 지표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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