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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세흔 Dec 14. 2022

나의 용감한 동유럽 여행

나는 남편 없이 동유럽을 갔다.

아들이 중3이고 딸이 중1 겨울방학에 나는 큰 마음을 먹고 동유럽을 셋이서 갔다.

남편은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 같이 못 가고 우리 셋이서 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두 개 트렁크 중 하나의 트렁크 바퀴 하나가 부서졌다.

첫날 비행기에서 나온 우리 트렁크... 아저씨들이 던지다 망가진 듯 새로 살 수도 없고, 임시로 손수건을 연결해서 아들이 끌고 다녔다.

아빠 없이 여행을 오니까 아들은 자기가 남자라고 우리를 보호하려 하는 모습이 굉장히 낯설었지만, 아들을 다 키운 듯한 느낌이 들게 되어 무척 뿌듯하고 신기했다.

셋이라 가장 불편한 것은 방 쓸 때였다. 항상 엑스트라 베드는 아들이 잤다. 바꾸자고 해도 싫단다.

트렁크를 사려고 하니 아들이 그냥 바퀴만 하나 망가진 거니까 그냥 끌 수 있다고 못 사게 했다.

물론 패키지여행이라 내 마음대로 살 곳이 마땅하지도 않았다.

아들은 힘이 많이 들었을 것인데도 끝까지 책임을 다 했다.

트렁크는 나중에 돌아올 때 가이드님이 공항에서 신고처리를 해주셔서, 며칠 후에 집으로 새로운 트렁크가 와서 받았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이드님이 고마웠고, 아들에게는 많이 미안하다.




오스트리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온 시골 교회에 가서 구경하고 호수에서 배도 타고 여유로운 여행을 하고 비인에 와서 시내 안내 후에 자유시간을 줬다.

우린 화장실에서 줄 서서 기다리는데 젊은 할머니가 뭐라고 하는데 화를 내는 것 같기도 하고, 줄이 기니까 옆 남자 화장실에 가도 된다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큰 소리로 얘기하는데 알아 들를 수 없어 답답했지만 그냥 순서를 기다렸다.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왔을 때 소리 크게 내면서 말하면 무척 당황스럽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화장실 기억이 지금도 남는 건 딸과 내가 무척 당황했었던 일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는 짧은 자유시간에 오스트리아에서 쵸코 케이크를 먹으려 빵집을 찾았고, 하지만 주문하는데 나의 짧은 영어 실력으로는 잘 안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만국 공통의 바디랭귀지를 동원하여 케이크와 우유, 커피를 시켜서 먹었는데, 그때의 광경이 딸은 인상 깊었는지 혹여 무슨 일이 생겨도 엄마를 따라가면 절대 굶어 죽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지금도 말하면서 역시 엄마는 대단하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돌아와서 영어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전화영어와 원어민 선생님과의 수업을 했지만 내가 영어를 하는 실력보다 선생님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기회를 만들어 드렸다.

공부해서 남은 건 외국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문법에 맞게 하는 것이 안돼도 단어 나열이라도 해서 우선 말을 하면 서로 통한다고 하는 생존하는 영어를 배웠다.


도레미송으로 유명한 미라벨정원에 갔는데 겨울이라 볼 것이 별로 없는 앙상하고 쓸쓸한 정원이었다. 거리의 동상들도  보온을 위해 다 두껍게 천을 씌워 놓아 동파를 예방하고 있었다. 방학을 이용한 여행이라면 여름 여행을 추천한다.




폴란드

소금광산과 폴란드에서는 아우슈비츠에 간 기억이 너무 생생하다.

소금광산에서는 계단으로 빙빙 돌아서 내려가는데 한글 낙서가 너무 많았다.

맨 아래에 있는 최후의 만찬 모습과 샹들리에 모습, 쇼팽의 음악이 나오는 공간은 컴컴하지만 폴란드 사람들의 쇼팽 사랑을 많이 느꼈고, 그 해가 쇼팽 200주년이라 기념 술 1병과 술잔 2개가 들어 있는 세트를 사서 같이 가지 못한 남편에게 선물로 줬다.




아우슈비츠는 내려서 걸어가는데도 스산하고, 음침한 기운이 정말 강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머리카락으로 카펫 짠 것, 생체 실험하느라 쓴 유리 벽장을 가득 메운 깡통, 유대인의 가죽신발들(좋은 곳으로 간다고 가장 좋은 신발들을 신고 왔다.), 가죽 가방, 등등 정말 말로 얘기하기가 힘든 상황을 봤다.

가이드 이야기가 여기는 점심 전에 스케줄을 안 잡는다고 (식사들을 못하신 분들이 계셔서...)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 투어를 잡는다고 했다.

한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애들도 충격적인 모습에 많이 놀랐고, 지금도 기억을 해서 딸이 올해 학생들에게 이야기해줬다고 한다.




슬로베니아

숙소로 갈 때 구불구불 산 길을 한참 갔는데, 여기 사람들은 겨울에는 산에 눈이 많이 있으니까 교통수단으로 스키를 탄다고 한다.

도착하니 깜깜하여 경치가 잘 안보였다.

아침에 눈을 뜨니 시원하고 신선한 공기, 온천지가 하얀 모습에 정말 감탄을 감탄을 하였다.

참 아름다웠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강에서 배를 타고 야경 구경을 하는데 너무도 찬바람이 우리의 얼굴을 때려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야경은 예뻤고, 낮에 봤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광장에 있는 상점들이 예쁜 것들이 많이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지만 우리는 광장에서 비둘기와 놀았고, 슈퍼에 가서 아이들이 먹고 싶은 것을 사 와 먹으면서 휴식을 취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고속도로에서 잠시 쉴 때도 물건을 사보도록 했는데, 우리처럼 (우리보다 젊은 엄마와 아들 딸이 온 팀이 있었는데) 그 엄마도 아이들에게 물건을 사보도록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저 집이 우리 따라 한다고 재미있어했다. 이런 소소한 것들이 다 추억인 것 같다.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로 들어가는 길에 가이드가 빙고 게임을 했는데 우리가 일등을 하여 피아노 오르골을 받았다.

기분 좋은 기억으로 지금 생각해도 미소가 번진다.

게임하면서 오는데 저녁 하늘의 노을이 너무 아름다웠다.

밤에 프라하 광장에서 아이들은 따뜻한 핫쵸코와 나는 맥주 한 잔을 먹었다. 참 맛있었다.

다음날 광장 탑에서 시계도 보고 피노키오 인형을 사서 갖고 와 지금도 딸이 갖고 있다.  

공항에 와서 짐 부치고 면세점에서 먹을 것을 샀는데, 체코 아줌마가 계산을 틀리게 하는 것이다.

다시 가서 따져 잔돈을 받아 왔다. 대한민국 아줌마를 몰라 보다니...


남편 없이 가족여행은 동유럽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다시 안 간 이유는 동유럽 얘기가 나오면 남편만 모르는 것이다.

이 건 가족 간의 대화가 안 되는 거라 다시는 그러지 말자고 했다.

다른 이유는 너무 힘들었다.

9일 기간 동안 오롯이 혼자 아이들을 책임지는 게 힘들었다.

아들, 딸도 너무 힘들었는지 다음부터는 네 식구가 같이 가자는 것에 다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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