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목회를 해야 할까

by 최정식

소금 교회를 시작하기 전에 한 친구 목사가 나한테 "목사가 누구라고 생각하냐"라고 물었다. 그 친구는 벌써 세 번째 새 교회를 설립하는 친구니, 목회에 있어서는 나보다 내공이 깊다. 그럼에도 나한테 보다 원론적인 질문을 건네곤 해서 도움을 주곤 한다. 나는 그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답을 했다.


"예전에 목사는 선생님의 이미지가 강했지. 성경을 가르치고 인생을 가르치는. 그 이후에 한 때 목사를 코치로 생각하는 것이 트렌드였지. 성도들을 가까이서 지도해 주는. 그런데 난 요즘 시대에는 목사가 PT 트레이너라고 생각해. 코치까지는 살쪄도 괜찮거든. 그런데 PT 트레이너는 뚱뚱하면 누구도 그 말을 안 듣지. 그래서 함께 운동하듯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무엇보다도 성도가 스스로의 변화를 체감하도록 만들어야 성도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할 것 같아."


그 친구는 내 말에 맞장구를 치며 말을 이어갔다. 친구는 세 번째 교회를 설립하면서 목사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형님"으로 두었다고 했다. 사역 타깃(target)을 30,40대로 정하고 그들에게 형님 같은 목사가 되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그 친구의 "형님형 목회"는 매우 성공적이다. 자신들보다 형님이나 큰 형님 정도 되는 연배의 목사와 그 가정을 보면서 30,40대 성도들은 친근감을 느끼는 동시에 자신들도 할 수 있다는 격려를 받는다.

이처럼 목사가 목사로서 자신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하다. 하나의 정답은 없다. 목사 개인의 소명과 은사에 따라서 그리고 교회의 구성원들의 성향과 나이에 따라서 다양한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한 교회가 그동안 걸어온 역사나 지금 당면한 문제 따라서도 다양한 유형의 리더십 혹은 목회 방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목사는 자신의 목회 스타일이나 방법을 이러한 필요에 민감하게 그리고 종합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다만, 목회 유형에 대하여 다음의 몇 가지처럼 정리하는 것에는 무리가 따르지 않을 것 같다.

첫 번째로 "가르침" 중심의 목회 유형이 있다. 이때 목사는 자신을 선생님으로 정의한다. 교회는 설교와 성경공부가 중심 사역이 된다. 이런 목회에서 목회자가 성경과 신학에 대한 전문성과 탁월함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내가 떠올릴 수 있는 목사들 중에는 곽선희목사님, 옥한흠목사님 그리고 박영선 목사님 정도가 있다. 이런 교회는 상대적으로 지적욕구가 강한 성도들이 모인다. 단점이 있다면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신앙을 갖기 쉽다는 것이다. 내가 훌륭한 설교를 듣는다고 해서 훌륭한 성도가 되는 것이 아니다. 더 큰 단점은 교회가 학교처럼 된다는 것이다. 이럴 때 상대적으로 학습 능력이 부족한 성도들은 교회에 적응하기 어렵다.

두 번째 목회 유형은 "돌봄" 줌심의 목회다. 돌봄 중심의 목회자로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분은 홍정길목사님이다. 개인적으로 홍정길목사님의 설교와 주례사를 들을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그분은 설교의 톤에서도 "돌봄"이 느껴질 정도였다. 성도들 뿐만 아니라 부교역자들도 품어 주시는 그분의 성품은 우리 교단에서는 유명하다. 그분은 아마도 목회자는 성도들의 "부모"와 같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이것은 자녀를 키우듯이 인내로 성도들을 기다려주며 함께 가는 목회다. 나는 요즘 같은 AI 시대에 이런 목회자가 더욱 필요해졌다고 생각한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온라인 설교를 듣는 것이 한국 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익숙해졌다. 설교를 잘하는 유명한 목사들의 설교는 언제든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게다가 성경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ChatGPT 같은 AI 한테 물어보면 신속하게 답을 해준다. 그런데 AI 가 아직까지는 해주기 어려운 것이 "돌봄"이다. 목사는 돌봄 중심의 목회를 하면서 먼저 연락하고 만나고 함께 고민하고 기도할 뿐만 아니라 때론 실제적인 도움도 줘야 한다.

세 번째 목회 유형은 "사역" 중심의 목회다. 이 사역 중심의 목회에는 "비전"과 "프로젝트"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때 목회자는 리더(leader, visionary) 일뿐만 아니라 실무자(worker)이다. 이런 유형으로 내가 경험한 목사는 하용조목사님이다. 그리고 이찬수목사님도 이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청년부 때 2년 정도 온누리교회를 출석했는데, 그때 들었던 하용조목사님의 사도행전 강해설교 중 일부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을 정도다. 당시 선교사의 꿈을 가지고 있었던 내 마음에 하목사님의 설교가 불을 질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에 "2000/10000"이라는 슬로건을 지금도 기억하는데 200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1만 명의 선교사를 후원한다는 계획이었던 것 같다. 하목사님은 소천하실 때까지 이 비전에 사로잡혔던 목회자다. 다만 사역 중심의 목회나 교회도 부작용이 있다. 사역에 함몰된 나머지 성도들은 자신들이 동원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럴 경우 성도들이 쉽게 지치고 내면에 충만한 즐거움을 경험하기 어렵다. 게다가 사역이 주는 성취감은 때론 독이 돼서 사역이 없는 신앙을 생각하기 어렵게 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목사는 한 유형만 고집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목사가 잘하는 것을 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좋은 선택이지만, 그것조차도 사역의 대상과 교회의 필요에 따라 그 비중을 결정해야 한다. 목회에도 그리고 한국교회에도 트렌드가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참고사항이다. 교회는 비즈니스도 아니고 학교도 아니기 때문이다. 가정이 그 성격에 있어서 가장 유사하지만 교회는 가정보다 커서 나라와 같은 모습도 있다. 그러니 목사는 하나님께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하나님, 내가 지금 뭘 해야 할까요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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