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교회를 시작하며 목회 방향을 3S로 정했다. 3S는 "Slow, Simple, Spiritual"이다. 이것을 한국어로 직역하면 느리고, 단순하고, 영적인 교회가 되지만 내 의도대로 번역하면, 여유 있고, 단정하고, 경건한 교회다. 이런 표현들에는 기존 교회가 가진 문제점들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나는 기존의 한국교회가 "너무 빠르고(Fast), 너무 복잡하고(Complex), 너무 종교적(Religious)”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런 한국교회의 문제를 개선하는 “대안적인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도전 의지를 담아 3S를 목회 방향으로 삼았다.
나는 교회는 성숙만이 아니라 성장도 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다만 성장에는 외적 성장만이 아니라 내적 성장도 필요하다는 것을 덧붙이고 싶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을 키나 몸무게만을 가지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교회의 성장에는 외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근육 발달과 호르몬의 변화와 같이 내적 성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 성장을 얼마나 짧은 시간에 얼마나 성장했는가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급성장이 문제라고 단정 지을 필요는 없다. 급성장을 하더라도 균형을 잡아가고 내실을 기하는 일정 기간을 잡으면 된다. 내가 슬로우 처치(Slow Church)를 표방하는 것은 성장 혹은 급성장에 대한 조급함이 앞선 나머지 각 교회들이 가진 본 교회만의 성장속도를 놓치면 안 된다는 뜻이다. 교회 성장을 위한 많은 이론들과 프로그램들은 역으로 성장하지 않는 교회를 문제 있는 교회로 단정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아무래도 그렇게 해야 그 이론들과 프로그램들이 더 절실하게 들리기 때문일 것이다. 패스트푸드(Fast Food)가 대량 생산을 하기 위해서 재료와 맛과 조리법을 모두 표준화하는 것처럼 패스트 처치도 성장을 위해서 각각의 교회가 가진 특이점(uniqueness)을 간과하고 이론과 프로그램이 제안하는 체질로 교회를 변화시키라고 요구한다. 그렇다면 슬로운 처치는 무엇을 중요하게 여길까? 각 교회가 가진 소명과 은사를 중요하게 여긴다. 성도 개인만이 본인의 소명과 은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지역교회도 그것들이 있다. 그것들은 담임목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담임목사가 신설 교회의 소명과 은사에 많은 영향을 주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 성도들과 함께 발견해 가고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이 느린 속도이고 이것을 달리 말하면 인내라고 할 수 있다. 이 인내가 있어야 슬로우 처치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자라 가는 교회는 그 교회만의 색깔을 갖는다. 이런 교회들을 한 공간을 사용하더라도 각각이 존재할 이유를 가진 교회들이 된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장 이론이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 교회로 성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소명과 은사를 찾는 일에 시간을 쏟는 슬로우 처치가 돼야 한다.
나는 또한 교회는 너무 복잡하지 않고 단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어로 "Simple"을 "단순하다"라고 번역하면 때때로 부정적 의미를 갖는다. 혹 생각이 없고 게으르고 변화가 없는 상태를 일컬을 수도 있어서 "단정하다"로 번역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이것은 한국 교회의 구조나 프로그램이 너무 복잡한 것에 대한 비판이다. 요즘은 많은 교회들이 새가족(혹은 새신자) 반이 있다. 이것을 마치면 몇 가지 성경공부 프로그램이 있고 이후에 제자훈련이 있다. 제자훈련을 마치고 나면 사역자반이 있다. 이후에는 사역자반을 마친 사람을 위한 보다 심화된 교리반이나 성경공부반이 있다. 이것과 별개로 서리집사들을 포함한 교회 제직자들을 위한 제직세미나가 있고, 안수집사나 장로가 되기 위해서는 따로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처럼 다양한 교육과정이 언제부터 교회가 도입되었을까? 아마도 한국교회에 제자훈련이 소개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기존에 있던 교회 교육과정에 제자훈련이 추가된 형태다. 그래서 교회 프로그램이 무척이나 복잡해졌다. 이처럼 복잡한 교육프로그램은 성도의 신앙을 단계별 교육과정으로 분류하는 어리석음을 낳기 쉽다. 한 성도가 교회에 들어왔을 때 그 성도는 마치 반편성 배치고사를 보듯이 신앙평가를 받고 거기에 맞는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하도록 지도받는다. 그런데 과연 이런 식으로 신앙을 평가하는 것이 합리적인가? 그리고 이러한 평가에 따라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하는 것을 통해서 신앙이 자라는가? 나는 그렇다는 대답에 매우 회의적이다. 오히려 우리는 이러한 교육과정을 이수하는 것으로 자기 신앙을 대체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그러므로 교회가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많은 교육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이수하기 급급하기보다는 보다 단정한 교회 구조와 사역에 집중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복잡해진 사회 교육제도를 답습하기보다는 단정한 교육을 성실히 함으로써 신앙이 프로그램이 아니라 삶이라는 것을 증명할 필요하 있다는 것이 심플 처치(Simple Church)의 방향이다.
마지막으로 경건한 교회를 가리키는 "Spiritual Church"는 신앙와 삶을 구분하는 이원론적 신앙생활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Spiritual Church"를 "영적 교회"가 아닌 "경건한 교회"로 번역하는 이유는 "영적"이라는 의미를 너무 신령하고 신비한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로마서 12장에서 바울이 우리 몸을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권면하면서 이것이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라고 말한다. 여기서 "영적 예배"라는 말은 표준새번역 성경이나 새번역 성경이 번역한 것처럼 그리스어로 "합당한 예배"라는 뜻이다. 복음에 합당한 예배는 로마서 12장부터 15장까지 설명된 거처럼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이뿐만 아니라 바울의 편지들에서 "영적(spiritual)"으로 번역되는 "퓨뉴마티코스"의 뜻은 성령과 관련된 것 즉, 성령이 충만한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성령이 충만한 것은 신비한 영적 세계나 체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충만한 삶을 말한다. 이것은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 1:27)와 유사한 개념이다. 그러므로 "경건한 교회(Spiritual Church)"는 성경을 배우기만 하는 교회가 아니라 성경을 실천하는 교회다. 그리고 복음을 배우고 전하기만 하는 교회가 아니라 복음을 사는 교회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