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식PM Dec 20. 2024

싱가포르 조기유학 (번외 편) - 공립학교 합격 후기

떡밥 회수

싱가폴 국제학교 1년, 말레이시아 국제학교 1년, 어느덧 아내와 아이는 해외 생활 만 2년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3년 차에는 다시 싱가폴로 돌아가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대체 왜 이런 짓(?)을 했는지,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해 본다.




1. 말레이시아 생활은 편리했다.

그러나 이것은 단점이기도 했다. 편리한 것이 문제라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학교 구하기도 쉽고, 생활도 저렴하고, 한국인도 많다... (응?) 맞다. 한국인이 너무 많다. 해외 경험 없는 사람들이 적응하고 살기는 참 좋다. 다만 어쩔 수 없이, 영어 실력 향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국제학교를 다니는 아이 반에도 30%는 한국인이다. 물론 학교 교육은 영어로 진행되고 EAL 반도 운영되니, 영어 베이스가 없는 아이들이라면 괜찮을 수 있겠다. 


2. 다시 싱가폴로 돌아갈 마음을 먹었다.

그 타이밍은 2026년 ACS 국제학교 Primary(초등학교) 개교였다. 한국에서 몇 개월 동안 체류하면서, ACS에 도전하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 계획은 내가 반대했다. 합격도 불확실한 데다, 길게는 6개월 정도의 공백이 아이의 영어에 악영향을 미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2년간의 애매한 유학 생활로, 한국 커리큘럼에 적응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한국도 5학년부터는 난이도가 크게 높아지는 데다, 수업에서 사용되는 한자어들도 어려울 것 같았다. 애매하게 몇 개월 한국에서 살면 모든 것을 잃을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떻게든 싱가폴에서 비벼보는(?) 것으로 합의했다.


3. 입싱 수단은 두 가지였다.

다시 MIS로 돌아가거나, 다른 국제학교를 지원하는 것. 그리고 한참 동안 잊고 지냈던 공립학교(!)에 다시 도전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았다. 공립학교를 지원하려면 공인 영어시험부터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급하게 수소문하여 Cambridge 시험 일정을 받아왔다. 다행히 한국과는 다르게 현지인들도 많이 응시하는 시험이어서, 쿠알라룸푸르에서 치를 수 있었다. 이때가 5월 25일이었다. 하필 이 날 아이가 40도 가까이 열이 펄펄 났던 것이 기억난다. 초딩 주제에 약 먹고 5시간이나 잘 버틴 게 대견하다. 본인 말로는 쉬웠다던데 믿을 수가 있어야지. 그리고 한 달 정도면 결과가 나온다더니, 2주나 지연되어 초조했다. 다행히 AEIS 시험 접수 기간 전에 점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싱가폴 공립 초등학교 시험은 AEIS라고 하는데, 7월 12일에 접수했고, 시험일은 9월 5일이었다. 공립학교는 불확실했으므로, MIS 지원을 병행했다. 다행히 합격해서 Plan B를 마련해 둘 수 있었다.


4. 싱가폴 공립학교 AEIS 응시 인원은 너무 많았다.

시험 장소는 Woodlands에 있는 Republic Polytechnic이었다. 과거에는 Expo 인근이었다는데 원장님도 당황하셨다. 아내가 찍어온 사진을 보니 시험장은 인산인해가 따로 없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미 싱가폴에 살고 있을 터. 게다가 똑똑한(?) 인도계, 중국계 아이들이 많은 것을 보니, 가능성 낮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또한 인생의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길 바랐다. 내 딸은 이러다 전 세계 모든 시험 다 치고 다닐 판이다. 결과는 12월 11일에 나온단다. 시험 비용만 370달러에 항공권, 숙박비 포함하면 백만 원은 훌쩍이다. 돈 없으면 서글픈 나라다. 그게 내 얘기다. 내 딸아, 너는 세계 어디든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살기 바란다. 아빠는 그거면 충분하다.


5. 그 와중에 싱가폴 SJI 연락을 받았다.

AEIS 응시하고 온 뒤, 뜬금없게도 2022년에 지원했던 싱가폴 SJI에서 연락이 왔다. 계획도 없던 시험과 면접을 치렀다. 사실 싱가폴을 떠난다는 폴란드 출신 영국 아줌마 친구를 만나려 했던 아내의 사심도 반쯤은 포함된 여행이었다. 어쨌든 SJI는 좋은 옵션이었고 합격까지 했지만, 등록 기한이 너무 짧아서 일정도 안 맞았고 비용도 부담되어 포기했다. 그러나 내가 여유가 있었다면 보냈을까? 잘 모르겠다.


6. 결국 합격했다.

12월 11일 오전, 나는 말레이시아행 비행기를 탔다. 오후 3시경,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활주로 위에서, 비행기 모드를 해제하면 밀려들어오는 연락들 속에서 합격 소식을 확인했다. 인생 재미있다. 시험 등록할 때, 희망 지역을 입력하게 되어있는데, Pasir Ris 같은 외곽 지역을 선택하라는 원장님의 조언을 뒤로하고, 호기롭게 명문 학교들이 모여있는 Bukit Timah를 적었었다. 사실 합격 확률이 낮다고 예상한 나의 객기였다. 그래도 싱가폴답지 않게 웬일로 배려를 해줬는지 크게 멀지 않은 Bukit Panjang의 West View Primary School에 배정되었다. (부킷 판장 역에서 부킷 티마의 탄 카키 역까지는 지하철로 6 정거장이다. 12분 정도 거리니 배려가 맞겠지?) 


혹시나 영어 시험 성적이 궁금한 분들이 있을까 봐 첨부한다. 아이는 만 10세다. 아내가 공유해 준 다른 분의 2022년 AEIS 합격 후기는 163점이었던 것을 보면, 수학 시험을 보기 위한 영어 점수 커트라인 140점보다는 높은 것이 좋은가보다. 수학 시험 수준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아이 말로는 쉬웠다고 한다. 아이가 국제학교 수학 점수가 좋은 편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한국 아이들 수준보다는 낮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오히려 영어 시험 점수가 당락을 가르는 기준일 것 같기도 하다. 이건 주최 측만 알고 있겠지.


7. 살 집을 구했다.

12월 14일 토요일 아침 9시, 창이 공항에 도착했다. 3일 동안 10여 곳의 콘도를 방문하는 일정이었다. 성격 급하신 에이전트 덕분에 토요일 오전 10시 반부터 오후 7시까지 13곳의 집을 볼 수 있었고, 그중 여러 가지 조건에 맞는 집을 선택해서 당일 저녁 계약했다. 2023년에는 임대인 우위 시장에 매물도 적어서 선택권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아서 수월했다. 학교가 도보 거리이고, 슈퍼마켓이 가깝고, 컨디션이 나쁘지 않은 작은 집이다. 임대차 계약, 전기/수도, 인터넷 신청까지. 이제 좀 경험이 있다고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었다.


8. 학교에 방문했다.

이번 싱가폴행의 목적은, 집 구하기와 학교 방문하기였다. 집 구하기를 1일 차에 해결한 덕분에, 2일 차는 여유롭게 살 동네를 둘러볼 수 있었다. 집에서 도보권에 파란색 DT(다운타운) 지하철 역과 제법 큰 몰이 2개 있었다. 싱가폴은 자동차 번호판 총량 규제가 있어서 차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다. 그러므로 대중교통 접근성이 매우 중요하다. 게다가 무더운 날씨와 수시로 내리는 비 때문에, 보행로에 그늘막 여부가 중요해서 꼼꼼하게 체크했다. 아이의 등굣길, 지하철 역으로 가는 길은 그늘막이 있었다. 그리고 지하철 역에서 인근 몰까지 지하통로가 있어서 좋았다. 


9.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12월 26일. 말레이시아를 떠나는 날이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싱가폴은 육로 이사가 가능하다. 이것도 한 번 해봤다고 낯설지 않다. 정들었던 자동차도 팔고, 싱가포르에서 사기에는 비싼 물건들도 미리 사재기하고, 버릴 물건들도 정리하고 있다. 그 와중에 나는 원격 근무로 하루 종일 일하느라 바쁘다. 그래도 시차가 한 시간이라 어렵지 않다.




아이는 웬일로 걱정이 많다. 싱가폴 로컬 스쿨의 중국어 수업이 걱정되는 것 같다. 한국인이 영어도 아니고 중국어로 걱정하니 어이없지만 이해할 만하다. 이러다 싱글리시와 중국어만 늘어 오는 것 아닌가 싶지만, 그것은 또 그것대로 좋은 점이 있겠지.


말레이시아 조기유학 편을 완성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싱가폴 복귀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재미있다. 이것도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얼른 마무리해야겠다. 


우리 가족의 여정은 아직 끝이 아니다. 다른 경로로 미국 영주권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또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르겠다. 도전을 두려워하지만 항상 도전하고 있는 우리 가족의 모습이 가끔 멋지다는 생각도 한다. 2025년 싱가폴 생활. 각자 자기 자리에서 다시 화이팅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