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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 상남자 Sep 03. 2021

속초까지 자전거타고 갈 수 있을까? 240km던데...


대학교 신입생 시절, 여름방학때 친구들과 떠났던 주문진 엠티에서 마주했던 동해바다는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집이 전라남도이기에 항상 다소곳한 남해 바다만 보고 살았던 내게 쾌활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파도와 그 뒤로 펼쳐진 광활한 바다에 나는 빠지고 말았다.


사랑앓이를 하듯 동해 바다가 그리웠고, 25살에 차를 갖게 된 이후로는 떠나고 싶을때 동해 바다를 보러 갔었다. 강릉, 화진포, 송지호 해변, 하조대, 주문진, 정동진, 속초 등 변화무쌍한 매력을 가진 동해는 늘 갈때마다 새로웠다.


결혼을 하며 서울 서쪽에 터를 잡았다. 서로 사랑에 빠진 견우와 직녀를 은하수 양쪽에 떼어놨듯이 나는 교통체증 가득한 서울 서쪽에서 지내게 되었다. 까치와 까마귀가 만들어주는 오작교도 없는 마당에 동해를 가기엔 그 뒤로 더욱 버거운 일이 되었다.


작년부터 라이딩을 시작하면서 다시 동해앓이가 시작되었다.


그러던 중 문득 궁금해졌다.


집에서 자전거타고 동해까지 갈 수 있을까?

올해 초부터 이런 생각을 했고, 생각을 하니 실행에 옮기고 싶었다. 용문역에서 출발하여 속초까지 가는 140km여정을 가는 팀이 있었지만 스케줄이 맞지 않아 합류하지 못했다. 내 주변 자전거를 타는 지인들에게도 속초까지 자전거로 가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지만 다들 한결같이


"속초까지 공도(자동차 도로)도 많고, 미시령도 (약 800미터)도 넘어야되고 힘들어서 안돼.."


그러던 중 하루의 시간이 생겼고, 예상대로 동행을 구할 수 없었고 그래서 혼자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결심은 했지만 실천에 옮기기까지 고민은 많았다.


집에서 속초까지 240킬로미터인데...하루 최대 120킬로 남짓 타본게 최대인데 과연 240킬로미터를 소화할 수 있을까, 44번 국도를 차와 함께 달리는 구간이 있는데 안위험할까 위협운전자도 있다는데, 도중에 경로 이탈하여 헤매지는 않을까 등등


오죽하면 출발하기 전전날 꿈까지 꿨다.


신나게 놀고 있는데 잠깐 들어와서 시험하나 보고 가야 한다고 해서 왔더니 문은 잠기고 풀 수 있는 건 전혀 없는 수학 시험에 마주하는 그런 꿈...


새벽 4시에 알람을 맞췄는데, 그 전부터 2시간 간격으로 깼다. 2시에 일어났을때 그냥 지금 일어나서 출발해버릴까 했는데 참았다. 3시반에 일어났고 4시반에 출발을 목표로 준비했다.


뒷꿈치를 들고 혼자 부산을 떤다.


뭐가 필요할까?


예비 튜브, 예비 타이어, 펑크 패치, 물통 2개, 갈아입을 옷(위, 아래), 바람막이, 보조배터리, 속도계, 후미등, 전조등, 휴대용펌프. 약간의 간식




최소 13시간을 자전거 위에서 보내야 할 먼 길이다.


돌발상황이 생겨도 무사히 해결되길 바라면서 4시 반에 현관문을 나선다.


새벽 라이딩은 참 고요하다. 바람도 없고, 라이더도 별로 없는 이 길이 주는 산뜻함이 있다.

몸에서 아드레날린이 뿜어져나와 마구 페달을 돌리고 싶지만 오늘 가야할 길이 멀기에 계획했던 항속 32로 진행한다.


라이딩이 좋은 이유가 뭘까 생각했다.


라이딩은 집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부터 여행이 시작되니까. 차를 타고 가면 준비단계에서 주는 설렘과 도착지에서 마주하는 환희 사이에 '고속도로'라는 휴전선이 있다. 도로에 의해 단절된 이 감정은 혹시나 차가 막히게 되면 더더욱 심각해진다.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며 이 단절감을 피해보려 애쓰지만 설레이는 마음을 지속하기란 쉽지 않다.


 오늘 라이딩을 할때 분홍 져지를 입을까 회색져지를 입을까 고민하다 3만원 더 비싼 회색져지를 골랐다. 3만원 더 비싸니깐 그만큼의 값을 더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데 아직 어스름이 가득한 라이딩 길에 내 분홍져지가 나타나 내 뒤에 붙었다가 어느 순간 내 앞으로 나타났다.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분홍져지를 멀끄러미 보다가 그 뒤로 붙었다. 나랑 비슷한 체형을 가진 라이더가 내가 고민했던 그 분홍져지를 입고 가니 기분이 묘하다.


내가 분홍져지를 입으면 저 느낌이겠군, 꽤 잘 타는 것 같은데 같이 좀 멀리 가면 좋겠다 생각할때쯤 당산역에서 휙 빠진다. 아쉽


혼자 간다는 강박관념 때문인지 무의식 중에 같은 경로로 갈 라이더를 찾았지만 동행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압구정 근처를 지나는데 강건너 성수뷰가 참 좋다. 함께 역풍이 시작되었다. 역풍이면 곤란한데 싶었는데 역풍 타고 달려드는 벌레들이 그 걱정을 씻어준다. 눈에도 들어가고 입 근처에도 와서 부딪힌다. 어쩔 수 없이 선글이를 쓰고, 마스크를 다시 추스린다.


광나루 근처에서 내 옆을 쌩 지나가는 4명 팩이 있다. 슬쩍보니 지인이 포함되어 있다. 붙어갈까 했지만 먼길을 위해 내 페이스를 유지하기로 하고 잠시 쉬어간다.

아이유 고개를 지나니 내가 사랑하는 남한강길이 나온다. 이 길은 언제 달려도 참 좋다. 강에서 피어오르는 안개와 그 아래 잔잔히 펼쳐진 강을 보면 이게 힐링인가 싶다.



출발 2시간만에 팔당대교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사고 팔당 초계국수를 먹으러 맘 먹고 왔던 기억이 있는데 1년만에 참 마이 컸다 ㅋ


구름이 잔뜩끼고 바람이 없는 최상의 날씨다. 페달링 할때 다리털에 느껴지는 살랑거림이 기분좋은 아침 라이딩이다.


 그동안 내가 효율에만 너무 집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정도 노력만 가지고 이 정도의 퍼포먼스를 내야하지 않을까 하는 시행착오를 용납하지 않는 그런 생각. 속초간다고? 그럼 차 안막히는 6시에 출발하면 2시간 반이면 도착할껄 하는.


오늘은 정반대다. 효율을 내려놓고 효과에 집중해보다. 돌아가고 헤매더라고 속초에 도착하는 효과만 확실하면 된다. 다치지 않고


240킬로미터를 언제가나 싶은데, 30킬로씩 8번만 하면 되는 간단한 문제다. 20킬로씩 12번 해도 좋고. 쪼개기 신공을 발휘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팔당 올때마다 먹었던 초계국수집이 폐업했다. 실향민이 된 것처럼 마음이 찡하다. 초계국수를 먹으면서 옆길로 지나가는 라이더를 보면서 나도 저길로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드디어 오늘이 그날이다. 진정한 여행의 시작


양수역으로 향하는 길. 3인팩과 솔로 한명 그리고 나까지 5명 팩이 생겼다. 3인팩이 주춤거리는 사이에 솔로 고수 한분이 앞으로 튀어 나갔고 나는 그 분 뒤에 붙었다. 여유를 부릴 수 없는 항속 38의 주행. 사진 한장이라고 찍을라치면 저 앞에 멀찌감치 가버리는 고수를 따라잡으려 사진 한장과 인터벌을 반복했다.

그러던 중 유명한 포토존인 북한강 자전거길(맞나?)도 지난다. 사진은 참 이상하게 찍혔네;;;


어느 덧 양수역에 도착했다. 양수역앞에서 잠시 정차할 것 같았던 고수분은 그냥 유유히 사라져버렸다. 그 분이 사라진 길을 따라가니 경로이탈했다고 자꾸 삐약삐약 경고음을 날린다. 두어 바퀴를 헤메고 나서 도대체 어디로 가라는 거지?? 고민하다가 혹시??!!!



답은 양수역 앞에 있었다. 양수역 기차길 바로 옆에 길이 떡하니..


길을 항상 가까이에 있었다. 못 찾고, 못 봤을 뿐..


터널이 쭈욱 이어진다. 호명산갈때 몇몇의 터널을 지나면서 정말 신기하다는 느낌이었는데 터널도 자주 지나가다보니 이제 슬슬 익숙해진다. 그래도 터널안이 시원한 것은 참 맘에 든다. 긴 터널은 정말 냉장고 같더라


함께 달리는 라이더가 주변에 없는 기가 맥힌 솔로 라이딩이다. 이 풍경이 오롯히 내것이라 생각하니 힘이 나고 흥이 오른다.


오른쪽으로 기가막힌 풍경이 스쳐간다. 차로 갈때 감탄하며 갔던 경로인데 안장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더욱 근사하다.


한적한 시골 버스정류장서 잠시 정차하며 지금까지 라이딩하며 떠오른 생각을 간단히 메모한다. 안장 위에서 쉴새없이 만들어지는 생각 누가좀 받아적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덧 양평에 도착했다. 출발한지 3시간 반

라이더도 없고 차도 없어서 공도를 타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던 라이딩이었다.


양평을 지나가면서 느낀 거지만 '양평'은 정말 컸다.


양평 진입했다고 좋아했는데 가도가도 '양평'은 내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자주 들었던 '용문'은 좀처럼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집에서 100킬로미터 떨어진 용문은 그렇게 나를 애태웠다.


슬슬 배고프고 목마를때쯤 회현마트가 저 앞에 등장했다.


집에서 가져온 빵과 함께 먹을 콜라, 물, 토레타를 샀다.


가게 앞 테이블로 앉았는데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던 새끼고양이가 대놓고 치근덕댄다. 귀여운 '야아오옹' 소리에 맘이 흔들린다.


"나 간택당한 건가??"


귀여움을 마무 뽐내는 야옹이를 어찌할지 몰라서 야옹이 2마리의 집사를 자처하고 있는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친절하고 자세한 투머치 카톡이 연신 날라온다.



이 와중에 속초 데리고 가서 회 좀 사줘라는 친구의 말도 ㅋㅋㅋㅋㅋ

만지거나 음식을 주면 책임져야 한다는 친구의 말에 희망고문을 해선 안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희망은 줄 게 아니면 '절망'을 줘야겠지. 냉정하게 야옹이의 시선을 거절했더니 시큰둥하게 저 옆으로 가서 자리를 틀고 앉는다. 출발 하려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 하니 반대편에서 또다른 새끼 야옹이가 등장...얘네 뭐지 ㅎㅎ



회현마트를 떠나 20여분을 신나게 달리니 드디어 용문이 등장했다.


용문을 지나고 나니 이제 44번국도를 타야하는 경로가 등장한다. 지금까진 차가 별로 없는 한적한 공도라서 참 좋았는데 어쩔 수 없이 국도를 타야 하나 보다.


역시나 차가 옆에서 쌩쌩달리니 공포심이 올라간다. 사진이나 영상이 없는건 폰을 꺼낼 엄두가 안나서다. 쌩쌩 달리는 차 옆에서 나 역시 괜시리 속도를 높여야 할 것 같아서 페달에 힘을 주니 어느새 속도계는 40을 찍고 있다. 무슨 소용이 있겠냐만 슬슬 고개를 들기 시작하는 해는 40으로 달리는 나에게 '수분'을 내 놓으라 한다.


44번 국도에서 탈출하고 나서야 잠시 한 숨을 돌린다. 이런 길을 몇번이나 더 달려야 속초에 도착하는 것일까? 후우. 막막하다.


차가 많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갓길도 넓지 않아서 차의 양보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바로 이어지는 업힐을 댄싱으로 올라가려는데 체인이 또 빠진다. 오늘벌써 3번째다. 오늘 갑자기 왜그런겨;;;;; 장거리 간다고 어제 오일을 좀 많이 뿌렸는데 그것 때문인가...누르는 무게를 못견디는 체인이 야속하다. 미시령도 넘어가야 하는데... 갈 수 있을까? 의심이 기운을 좀먹는다


다시 한적한 버스 정류장에 자리를 펴고 앉았다. 매미가 더 해보란다  갈수 있다고


정류장에 붙어있는 안내 문구가 보인다.

행복버스가 8월9일부터 13일까지 휴가란다. 그래, 몇 일동안은 좀 덜 행복할수도 있는거지 뭐, 매일 행복하진 않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는건데 못찾으면 없을 수도 있지 뭐. 최악만 아니면 괜찮아


여기부터 홍천까지 가는 코스가 고난의 행군이었다.


44번국도를 차와 함께 계속 달려야 했고, 중간에 휴게소나 편의점도 없었다. 공구통을 빼고 그 곳에 물통하나 더 가져온 나의 선택을 마구 칭찬할 수 밖에 없는, 아니 그나마 안도할 수 있었다.


물통이 가벼워질수록 마음과 다리는 자꾸 무거워졌다.


드디어 양평군에서 안녕히 가시라는 사인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도 홍천까지는 18킬로미터 였는데,,,,18  18...18킬로미터는 착각이었다.


나는 차가 아니었다.


업힐다운힐이 반복되는 18..... 난 이미 118 km 넘게 달려왔는데, 에너지와 수분이 고갈되어 가는 타이밍에 마주하는 18은 정말 18이었다


아까는 좀 무섭게 느껴졌던 44번 국도와 좀 친해지고 나니 44번 국도에서 빠지라는 경로 안내가 야속하게 느껴진다. 그냥 이 길로 계속 가면 안되니... 이 길로 가야 빨리 도착할꺼 같은데;;;


이런 차에 굳이 돌아가라는 오더..고민하다가 혹시 터널이 있으면 곤란하니 시키는대로 오른쪽 업힐로 나간다. 지친 나에게 44번 국도 오른쪽에 보이는 업힐은 마치 무슨 폭포처럼 보였다.


업힐을 오르고 나니 축석고개 옛길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 이런 길은 맘에 든다. 다행히 해를 가려줄 그늘도 간간히 있다.


완만한 업힐이 끝나고 아니 이제 상쾌한 다운힐이다. 다운힐도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기고 싶은데 손에 여유가 없으니 찍을 수가 없다. 아쉬울 뿐.


다시 평지로 와서 다시 꾸역꾸역 페달을 밟는다.



그러던 중 !!! 와... 씨유다!!!







실크 로드를 가다가 마주친 오아시스가 이런 느낌이었을까.


너무나 행복했다.


맘 가는대로 정신줄 놓고 집어들었다. 그리고 다 때려넣었다. 음료를 마구 들이붓다보니 문득,


4시반에 출발해서 지금까지 화장실을 한번도 안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나 음료를 마시고 있는데도.. 음료가 곁에 있는데도 음료가 계속 그리운 날씨다.


오늘 10시 정도까지 구름이 가득낀 날씨였으니 망정이니 아침부터 해가 짱짱했으면....몸에 수분이 차오르며 감사의 마음도 함께 채워진다.


자전거 휠과 타이어도 뜨끈하다. 나만 먹기 미안해서 차가운 물을 휠과 타이어에도 뿌려주었다. 부디 안전하게 속초에 닿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하며


씨유 다음부터는 홍천까지 시골길을 주로 달렸다. 한적한 길을 달리면서 이런 경로를 누가 만들어냈을까


11시 23분. 내 생일과 같은 시, 분에 홍천에 도착했다. 이 이후에 이어진 여정을 미리 알았더라면 홍천에서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홍천에서 인제까지가 진정한 고난의 행군이었다....'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속초까지 가야겠는데'의 시작이다.


홍천시내를 지나가던 차에 삼천리 자전거 홍천점이 있기에 방문해서 체인 이탈 문제를 여쭤보았다. 체인 체커기로 확인해보시더니 체인이 늘어나서 그렇다고 하시며 스프라켓도 많이 닳아서 체인을 교체하면서 스프라켓도 함께 교체하는 것이 소음을 줄일 수 있는데 샵에 스프라켓이 없다고 전문샵에 가서 다시 의뢰해 보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가는 날이 장날이네 생각하던 중 맛있어 보이는 '파주 닭국수'집을 발견했다.


체인 문제가 걱정이지만 이 와중에 배는 고팠다. 앞으로 가야 할 길로 머니깐 먹고 가기로 했다.


처음 먹어본 맛인데 생각보다 훨씬 근사하고 맛있었다. 찬 음료만 계속 먹어왔던 속을 좀 진정시킬 수 있는 절묘한 메뉴였다. 하지만 배가 허한 것에 비해서는 한그릇을 다 먹진 못했다. 완주한 다음에 느낀 것이지만 장거리를 달리고 나니 속이 아팠다. 내장 하나하나에 알이 배긴 느낌이랄까, 라이딩을 하며 페달링을 하는데 복부, 내장에 굉장한 자극을 준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위와 내장이 수축되어 있었나 보다. 배는 고프고 음식도 맛있는데 속에는 잘 안들어가서 40프로는 남겼다. 밥을 먹고 나오니 뜨거운 8월  해에 달궈진 내 자전거가 애처롭다. 그늘에 둘껄 하는 미안함에 내 물통을 건냈다. 열이 좀 식었으면 하면서


인제까지 가는 길은 여전히 고난의 행군이다.



가는길에 있는 씨유에 들렀는데 왠 청개구리가 씨유 테라스에 붙어있다. 물기가 하나도 없는 곳에서 만난 청개구리가 낯설다.


 니가 왜 여기서 나와?


다시 44번 국도를 차와 함께 달린다. 멀게 느껴졌던 19시에 대한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19시까지 속초터미널에 갈수 있을까?


모르겠다 일단 좀 쉬자...



인제가는 길에 먼저 들러야하는 곳이 '신남'이다.


신남이라고? 이 순간을 버티고 지나면 아까처럼 다시 신나질까? 내가 온다고 했으니 끝까지 신남해야할것 같지만 지금은 째뜬 '안신남'이다


가는길에 찜빵 옥수수 파는 길거리 가게에 들렀다. 배고픈것보다 목이 탔다. 아스팔트 열기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른지 오래다.  찜빵 3개를 집어 먹으며 옆에 있는 받아둔 샘물을 내 몸과 자전거에 연신 뿌려댔다.


열이 나가며 혼이 들어왔다.


찬물 몇 바가지 덕분에 다시 신남을 찾았다. 다행이다. 다시 출발이다


하늘내린 인제를 보고 행복했는데,


하늘을 향해 1시간을 더 달려야 진짜 인제가 나왔다


아내한테 '인제' 왔다고 하니 드디어 도착했냐고..앞으로 50킬로 더 가야한다니 놀랜다.



도착했다며?
아니 인제에 왔다고.
아..난또 인제 도착했다고. 더 가야해?
응. 50킬로 정도. 미시령 산악스테이지가 남았어..

미시령..차를 사고 종종 동해를 갔을때 차가 막히면 미시령, 한계령 등을 넘어가곤했다. 그때 자전거를 끌고 oo령을 넘는 라이더를 보고


미쳤네. 미쳤어. 싸이클 선수겠지


했는데 그 미친놈이 내가 되는 순간이 찾아와 설렌 것도 잠시..  

넘을 수 있을까 너무 힘든데 하는 의심이 다시 고개를 쳐든다


근데 도대체 미시령 입구는 언제 나오는거야??


인제를 지나 몇 십개의 집을 지나고, 몇몇의 꽉꽉찬 캠핑장을 지나왔는데도 아직이다

5시인데...7시차 탈려면 적어도 5시3ㅇ분까지..아니 5시 40분까진 미시령 정상에 가야하지 않을까. 갈수 있을까?연기해야할까?


라이딩 시작 12시간만에 미시령  46호선 옛길 앞에 섰다.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힘이 풀려 길가에 그냥 풀썩 내려 앉았다. 이때 정말 태워주시면 안될까요? 하고 사인을 보내고 싶었다. 간절하게

내 간절한 바람을 하늘에서 들었는지 차를 보내주지 않았다.


나는 계속 페달을 밟아야했다.


너 힘으로 끝까지  가봐. 포기하지마!


그래 포기하지말자. 40킬로 남은게 아니라 200킬로를 달려왔다


경치가 좋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지만 사실 눈에 들어오진 않았다. 기록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렌즈를 내밀었다 폰 마저 이제 무겁다



자전거 타이어를 구입한곳에서 파워젤을 보내줬는데 혹시나 기대하는 마음에 한포를 뜯었다  먹고 힘나면 난 앞으로 파워젤 매니아가 될테다


미시령 본격 업힐은 3.2킬로미터. 남산과 북악의 중간정도였지만 이미 기력은  소진한 상태였고 나중에 기록된것을 보니 이미 해발고도를 꾸준히 극복해온 과정이었다. 화룡정점이었을뿐


다리가 아닌 복부가 아파서 업힐 중간에 세 번이나 멈춰서 쉬어야했다.  혹시 장출혈 이런게 오면 어떨까 싶기도 했다.


다행히 바람은 없었는데 위로 갈수록 안개가 자욱하면서  보슬비가 흩날린다. 멋진 경치를 볼수 없어 아쉽지만 지금 그 아쉬움이 문제는 아니다.

미시령 정상까지 500미터.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이곳이 정상인줄 알았는데 헤어핀 구간이다.  순간 허무함이 덮쳐서 땅에 다시 다리를 딛는다. 아직이라구...?


드디어 미시령 정상에 도착했다


나  그리고 구형 이에프 소나타를 타고 오신 노부부 이렇게 셋이다.


안개는 자욱하고 온 세상이 고요한 마치 다른 행성에 온 것 같았다.




새벽 4시반에 출발해서 여기까지 오는데 13시간 반이 걸렸구나. 고생많았다. 미시령 정상에 오면 세상을 얻은듯 기쁠것 같았는데 오히려 먹먹하고 아쉽다. 내려갈일만 남아서일까, 지친 몸을 다독여 정상을 향해 한발한발 내딛던 순간이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더 짜릿했다. 희망이 있으면 지치지 않는 법이니깐.


미시령 기념비 앞에서 인생샷 하나를 남기고 싶었는데  야트막한 언덕 하나를 올라가야해서 포기다. 오늘 마이 찍었는데 기념비는 마음으로 찍어 넣어두자 하면서


정상에서 여유를 부리고 싶었지만 점차 어둠이 깔리는 미시령에 압도되어 떠날 채비를 한다. 길이 미끄러워 다운힐이 걱정되는 찰라 땀이 식으며 소름이 돋는다.


챙겨온 얇은 바람막이 한 장이 주는 온기가 미끄러운 다운힐을 내려갈 용기를 준다.



"야 이 와 머야 172562718821828282"


미끄러질까 타이어먀 보고 가다 문득 고개를 들었는데 비명 반, 환호 반씩 섞은 감탄이 터져나왔다. 저기가 속초구나!! 다운힐을 내려가는데 괜시리 눈시울이 붉어졌다.


설렘이 아쉬움으로


긴장이 성취감으로


두려움이 뿌듯함으로 바뀐 흔적이었을까



속초 시내까지 한 달음에 내려왔다.

내가 차인지, 차가 나인지 모를 주행이었다.


예전에 한번 들렀던 아바이마을 나룻배식당에 와서  순대국밥 한그릇을 먹고



잠시 속초 야경에 빠져본다.


내 두 다리를 이용해서 동해를 올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신기하고 뿌듯했다. 내가 240킬로를 라이딩 할 수 있는 사람일까, 내가 마음 먹은 것을 해 낼 수 있는 사람일까 내 자신을 시험에 들게했는데


  합격 입니다. 참 잘했어요.



이렇게 내 모든 건을 쏟아낸 적이 언제였던가


그래, 이제 효과가 있으면 포기하지 말고 하는 거다.


오늘 집에서 속초까지 내 팔다리가 되어준 자전거를 소중히 짐칸에 눕혔다. 너도 서울까지 누워서 좀 쉬렴. 맘 같아선 나도 너 옆에 누워가고 싶다ㅠ


출발과 동시에 눈이 감길꺼라 생각했지만 예민해진 신경은 쉬 전원을 끄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속초 시내를 내려다보다 눈을 감았는지 떴는지 모를 때쯤 잠깐 잠이 들었나보다


고터에 23시 10분에 내려 다시 20킬로를 타고 집에 왔다. 4시 30분에 이 사거리를 지났는데 21시간이 지나 다시 이 길 위를 지난다


Relive를 이용해 오늘 갔던 경로를 다시 돌아보니 참 많이 갔다 싶다. 긴 여정었지만 지루할틈없는 길이었고, 이틀이 지났는데 벌써 그리워진다. 잠을 자려고 눈을 감으면 페달을 밟으며 스쳐갔던 많은 풍경이 재생된다.


비워야 할 것들이 쌓이면, 용기가 필요할때 그리고 나를 믿고 싶을때

이 길을 다시 찾게 될 것 같다.


 다만 7~8월은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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