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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 상남자 Sep 17. 2021

섬진강에서 흘러가는게 인생이더라

지난 속초 라이딩 이야기에 참 많은 분들이 격려와 공감 댓글을 달아주셨다. 나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정보가 되고, 재미와 용기를 채워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감동으로 스며들었다.


섬진강 자전거길을 달리며 안장 위에서 했던 생각과 느낌이 다시 한번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런데 섬진강 라이딩 후기를 작성하려 했는데 쉬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왜그럴까 싶었는데...


섬진강 라이딩 후기를 쓰는 것이 마치 맛있는 음식을 먹다가 그것을 냉장고에 넣어야 할지 그대로 두어야 할지에 대한 문제처럼 느껴졌다. 냉장고에 한번 들어가면 맛이 없어지니깐.


섬진강 라이딩의 맛을 남겨놓고자 미루고 미뤘는데 이제는 넣어야 할것 같아 글로 남겨보려 한다. 이렇게 된거 아예 잘 마무리해서 냉동실에 넣어두고 그곳이 그리워질때 꺼내어 해동해야겠다.



이번 섬진강 라이딩은 혼자가 아닌 셋이 함께 떠난다. 당일치기로 계획했으나 섬진강 하구까지 내려갔다가 고향에 안들르고 바로 상경하면 서운할 것 같아 고향집에서 1박하고 돌아오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혼자 떠날때보다 함께 떠나게 되어 한결 부담을 덜었다.


전날 장거리 운전을 하고 10시 반이 넘어 어렴풋이 잠이 들었다. 3시반에 일어나야 하니 쉽지 않겠군 싶었는데 알람 한방에 벌떡 일어났다. 일어나 공부하라면 힘들텐데, 운동하라면 벌떡 일어날 수 있는 내가 신기하다. 나에게 걸맞는 직업을 하나 생각해봤다.


SEC(Sports Experience Cordinator): 다양한 종류의 스포츠와 관련 동호회, 커뮤니티를 경험해보고 의뢰인의 성향, 선호 종목, 활동 가능 시간 및 수준 등을 고려해 원하는 클럽, 코치, 체육관 등을 소개하고 연결해주는 역할이다. 듀오가 남성과 여성을 매칭해주는 것이라면 SEC는 스포츠와 사람을 매칭해준달까?


뒷꿈치를 들고 이것저것 준비물을 챙기다가 문득


'내가 죽으면 누가 장례식에 올까?' 어제 지인이 읽었다는 책 제목이 머리를 스친다. 섬진강 라이딩을 하러 갔다가 혹시 무슨 문제가 발생하여 내가 이 집에 돌아올 수 없게 되면 어떻게 될까?....


너무 일찍 일어났나보다. 수면 부족인가..


4시가 조금 안된 시간에 집을 나섰다.


나혼자일 것 같았던 거리에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이미 움직이고 있어서 실망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편의점 근처에서 어슬렁 거리는 사람도 보이고 누군가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이미 가게에 불을 켜고 불을 만지는 분들도 보인다.


다리털을 간지르는 바람이 참 좋았던 지난 7~8월의 라이딩이었는데 오늘 아침엔 그 바람 속에 가을의 서늘함이 묻어 있었다. 여름이 달아나고 있구나.


양화대교를 건너와 아래를 내려다보니 오늘 섬진강 투어를 함께할 형님이 벌써 와서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다.


 올해 3월에 처음 만났는데 자전거와 끈이 되어 벌써 절친이 되었다. 특히 지난 7월, 8월에는 꽤 자주 만나 라이딩을 함께 했다. 남산 도전 2회만에 5분대에 진입한 강려크한 유망주다.

만나자마자 일단 페달부터 함께 돌렸다. 자세한 이야기는 안장 위에서 하는 것으로 하고. 일 이야기, 집안 이야기 등 페달을 돌리다보니 어느 덧 원효로다.


일주일 전에 집에서부터 속초까지 혼자 달렸던 라이딩과 오늘 라이딩이 마치 '영화 대 영화'처럼 자꾸 비교된다. 오늘 후기의 주요 관전 포인트가 될 수도 있겠다.


집을 나옴과 동시에 목적지까지의 라이딩이 바로 시작되었던 속초 라이딩과는 다르게 이번 섬진강 라이딩은 여행의 아이콘인 '기차'가 껴있다. 고향에 가기 위함이 아닌 여행을 위한 기차를 탔던게 언제였더라...결혼 이후에 잃어버렸던 재미 하나를 찾아낸 느낌이다.  


섬진강 물을 먹고 자란 고향 친구들에게 '섬진강 종주 라이딩'하러 간다고 이야기했더니 자신들도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다. 속초 라이딩 간다고 했을때는 '그래, 고생이 많겠다. 잘 다녀와라' 했었는데 ㅎㅎ


답사 잘 다녀올테니 '나중에' 꼭 같이 한번 가기로했다. '나중에'란 말의 유통기한이 '죽기 전'까지라는게 맘에 걸리지만...


고향에 내려갈때 KTX를 종종 이용했기에 꽤 익숙한 용산역이지만 새벽 5시에 오긴 이번이 첨이다. 이 시간에 누가 있을까, 오늘 함께 떠날 친구는 왔을까 호기심을 안고 용산역 대합실에 들어가려는데 익숙한 뒷태가 벤치에 앉아있다.


4시 20분에 용산역에 도착했다는 그.


'조심히 오세요'가 용산역에서 보낸 톡이었다니... 너 혹시 용산역에서 잔건 아니지?


고향이 광양인 동생은 섬진강 종주를 하는 것이 자신의 버킷리스트였다며 드디어 오늘이 그날이라며 감격해 했다.


누군가의 버킷 리스트 달성 순간을 함께한다는 것은 참 특별하다. 목소리에서, 표정과 동작에서 느껴지는 설렘과 떨림을 전해받는것만으로도 충분한 감동이 스미니깐.


이른 시간이라 평소에 이용하던 엘레베이터 위 화장실은 이용 중지란다. 2번 게이트 앞 화장실을 이용하라고 되어 있었다.



용산역 대합실이 텅텅 비어 있어서 어색했지만 평소에 북적거리던 곳에서 누려보지 못했던 '고요함' 느낄 수 있어 특별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이벤트를 즐긴다.



우리가 탈 기차는 임실행 무궁화호 5시 46분 차다.


게이트로 내려갔더니 이미 무궁화호가 와있다.


얼마만에 타는 무궁화호던지..


그런데 오랜만에 마주한 무궁화호는 꽤 많이 낡아 있었다.


4호차에 있는 자전거 거치대에 자전거를 실었다. 앞바퀴에 안들어가서 이거 어떻게 쓰는 건지 남자 셋이 3분간 고민했다. 이리저리 끙끙대다가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어놓진 않았을 것이라 결론을 내리고 방법을 고민하던 중... 테이블을 들어올리면 된다는 것을 깨닫고 '유레카'를 외쳤다.

역시 모든 것에 이유가 있고, 방법이 있다.


식당칸을 개조한 것으로 보이는 이 칸에는 자전거 거치대 외에 밖이 보이는 테이블과 지하철스러운 좌석이 있었다. 둘은 3호차 좌석에 가서 앉고 나는 이 곳에 남았다. 혼자 가만히 테이블에 앉아 있고 싶었다. 내키는것을 그때 하기로 하고.


여행은 자유니깐


 이 넓은 객차에 손님은 나와 다른 남자 한 분. 롯데리아에서 산 커피를 보며 창 밖을 바라본다. 기차의 덜컹거림이 있으니 음악은 없어도 될 것 같다.


5시 46분에 출발하여 임실역에 9시 반경에 도착하는 4시간이 조금 안되는 긴 기차여행이 시작됐다. 2시간 반 내외로 이용하는 KTX에 적응이 되었는지 4시간이 정말 길게 느껴진다. 무궁화호는 2027년에 운행이 종료될 예정이라는데, 느리다는 이유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게 된 것일까? 고장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고장도 없이 매정하게 흘러간 세월은 무궁화호에도 무정하다


창 밖을 보고 가는 테이블 좌석에 앉아 있으니 넘실거리는 초록 파도 덕분에 동해안을 달리는 관광열차 못지 않다.


예수를 사랑하자는 조끼를 입으신 어르신이 폰카메라를 창 밖에 고정하고 창밖 풍경을 유투브 라이브로 중계하고 계셨다. 유투브로 함께하는 랜선 기차 여행이라.. 꽤 근사한 컨텐츠다.


테이블 좌석에 있다가 지하철 같은 일렬 좌석에 앉아 머리를 기댔다. 그리곤 1시간 남짓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보니 객차에 꽤 많은 분들이 탑승해 있었다. 자전거를 자전거 전용거치대에만 실어야 하는 줄 알았는데 꼭 그런것은 아닌 것 같았다. 거치대가 아닌 곳에도 꽤 많은 자전거가 실려있었다. 이 분들은 신탄진 근처에서 대부분 내리셨다. 대청호 주변 라이딩을 가시는 것 같았다.




어느덧 임실역에 도착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무궁화호를 다시 만날 날이 있을까? 내 옆을 지나가는 낡은 그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찡했다.


임실역 앞은 정말 고요했다. 흔한 가게 하나 없는 그런 조용한 곳이었다. 편의점이 있으면 뭐를 좀 사서 사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계획을 변경했다. 일단 출발하고 나서 '강진' 정도 가서 슈퍼에 한번 들르는 것으로.


 한강을 벗어나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한강 주변 처럼 편의 시설이 잘되어 있는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목이 타들어가는데20~30km이상 달렸는데 슈퍼 하나 찾을 수 없는 길도 흔하다. 그래서 투어 라이딩할때는 꼭 물통 2개, 간단한 간식은 필수다.


첫번째 코스는 일단 강진, 순창이다.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는데 모든 것이 완벽한 라이딩이었다. 구름이 해를 막아주었고, 도로 컨디션이 훌륭한데 지나는 차도 별로 없었다. 한강에서 달릴때는 항속 35를 찍으려면 힘이 부치는데 여기는 항속 40으로 달려도 힘이 남아 돌았다.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오는 이 느낌에  어느덧 강진 터미널을 지났고, 드디어 섬진강을 마주했다.


섬진강 종주길의 시작이다. 덜덜 거리는 도로 컨디션을 로드 자전거로 마주하니 맘이 심란해진다. 손목에 강제 진동마사지를 받으면서 이런 길을 140km가야 한다고...?


풍경 덕분에 눈은 즐거운데, 길 때문에 엉덩이와 손목은 비명을 지를 태세다.


섬진강 풍경에 감탄하며 가다가 어느덧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생가가 있는 진뫼마을에 다다랐다. 섬진강 라이딩을 시작하기 전에 김용택 작가가 어떤 분인지 궁금해서 '새로운 생각은 받아들이는 힘에서 온다'는 책을 미리 읽고 왔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깐.


       


        새로운 생각은 받아들이는 힘에서 온다


김용택 시인은 1968년 경에 초등교원 양성 시험(초등교사가 부족해서 임시로 실시했던 시험. 이 시험에 합격하면 4개월간 교육을 받고 바로 초등 교사로 발령 받게 해주었다)을 합격하고 근 40여년간 자신의 고향에서 초등교사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 중 자신의 모교인 덕치초등학교에서 근 35년을 근무했다고.  2008년에 퇴직한 후에 이 마을에 사시면서 글도 쓰고 강연도 하신다고 한다.


 

 당신이 젊었을 시절, 열기 왕성한 남자가 시골에 갇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보는 것'이었다고 했다. 외상으로 책을 사서 책을 '보았고', 매일 섬진강으로 나가 섬진강의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보고 생각이 떠오르면 생각을 적었고, 적은 것을 글로 쓰다보니 어느 덧 시인이 되어 있고 작가가 되어 있더라는 그의 말에서 '축적'이 갖는 위력을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다.


 나는 이번 섬진강 라이딩에서 무엇을 보게 될까?


진뫼마을 지나 섬진강을 왼쪽에 두고 계속 페달을 돌린다. 녹음이 우거진 섬진강의 풍경에서 20대 청춘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10시가 넘으니 구름이 힘을 잃고 해가 기지개를 켠다. 8월 중순의 해는 아직 기세가 등등하다. 땀샘에서 땀이 솟고 목에서는 물을 달라 아우성이다.


 섬진강 라이딩의 첫번째 포토 포인트에 도착했다. 다리 방향으로 찍을꺼냐, 수직 방향으로 찍을꺼냐 잠시 논쟁(?)을 하다 둘은 다리 방향으로 나는 수직 방향으로 찍기로 했다.


결론은 어떻게 찍어도 주인공은 '하늘'이라는 사실이다. ㅎㅎ



사진 왼편에 있는 전봇대 같은 구조물은 좀 제거해야 할 것 같다. 다리 설계자의 센스가 아쉽다.


다리에서 내려다보는 섬진강 협곡의 경치가 기가 맥힌다. 물의 양이 조금 아쉽다. 작년에는 너무 많이 와서 난리였다는데...올해 내릴 양을 미리 땡겨쓴 것일까?


섬진강 종주 첫번째 인증센터인 장군목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매점이나 슈퍼가 있을 줄 알았는데 문을 안 열었다. 여기서 보급을 한번 하기로 했었는데...이렇게 통과해야 되나 보다. 더운데..


섬진강 종주 GPX파일을 속도계에 입력하고 갔지만 도로 사정이 안좋을때는 공도로  올라와서 달렸다. 섬진강만 보고 가면 되니 어차피 만날 길이다. 오늘 섬진강 라이딩의 제한시간은 동광양 터미널에 18시 30분이다. 줄일때는 확실히 줄여야 한다.


섬진강 종주길은 파란색 페인트칠이 되어 있어서 이 파란색만 보고 따라가면 되니 쉽게 찾을 수 있다.


길을 잃을 염려보다 가는 길을 접지 않을 끈기가 더 필요한 종주길이다. 아직은 무더운 8월 중순이니까


순창을 향해 달린다.


마치 햄버거처럼 후끈한 여름 패티들 사이에 가을 바람이 껴있다.


때론 머리로, 어떨땐 다리로 서늘한 가을 바람을 맛보는 느낌이 참 좋다.   

향가 유원지에 와서 첫 보급을 시작했다. 임실역을 출발한지 2시간 남짓 걸렸다. 경치를 바라보며 먹는 '월드콘'맛은 정말 월드클래스였다.


이제는 30~40대가 된 섬진강을 오른쪽에 두고 달린다. 폭이 넓어졌고, 물의 양이 많아졌다. 새도 보이고, 물결이 비친 흰 구름도 참 보기가 좋다. 주변을 어우르는 섬진강의 여유로움이 힐끔힐끔 쳐다보며 계속 달린다.

횡탄정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인증센터 빨간 박스를 보면 아래 부분에 진흙이 잔뜩 묻어있는데, 작년 섬진강이 범람했기 때문이란다.


이 울타리 너머로 광활하게 펼쳐진 섬진강이 이 둑을 넘어올 정도로 넘실댔다니...섬진강의 황토빛 분노에 주변 주민분들이 얼마나 가슴을 졸였을까...


2시까지 구례에 도착하는 것이 점심 식사 전 목표다.


횡탄정을 지나 거의 비포장에 가까운 자전거길을 항속 30으로 뚫고 나왔다. 그러고나니 벚꽃길이 등장했다. 벚꽃은 없었지만..

작년 섬진강 범람으로 인해 유실된 구간도 있어서 공도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기도 하고, 덜컹거리는 구간도 많고. 참으로 다이나믹한 주행이다.

 

슬슬 에너지가 고갈되어 갈때쯤 드디어 저멀리 구례구역이 보인다. 내 고향 순천의 경계안에 자전거를 타고 들어왔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다. 오늘 최종 목표는 광양에 들렀다가 순천까지 가는 것이니 부지런히 페달을 돌려야겠다.


구례구역 앞 중국집에서 '냉콩국수'를 순삭했다. 진한 콩물맛이 예술이었다. 원래 전라도에서는 냉콩국수에 설탕을 넣어서 먹는데.. 광양이 고향인 동생은 당보충이 필요하다며 설탕 반, 콩물 반으로 먹는 것 같았다. 설탕물에 콩국수를 담궈 먹는 느낌이랄까?



다시 기운을 차리고 오후 2시 25분에 구례구역을 지난다. 왼쪽에 지리산자락을 바라보며 하동 그리고 망덕 포구로 향하는 길이다.


2시 36분에 사성암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왼편에 지리산 자락이 정말 그림 같이 펼쳐져 있었다. 이 순간, 내 눈에는 알프스 보다 지리산이다. 지리산에게 잘 보이고 싶어 힘차게 달린다.


오후 3시 즈음에 쌍계사, 화개장터로 빠지는 갈림길에 도착했다.

작년 7월 말에 피아골 근처로 글램핑을 오면서 이쪽 길을 지났던 기억이 났다.


작년에 물난리가 한번 났던 지역인데.. 작년에는 황톳빛 물결이 도로 바로 아래까지 넘실거렸었는데, 1년반에 다시 찾은 섬진강은 '이순'이 된 듯 여유롭고 유순했다.


동행한 2인이 지지난 주 혼자 속초에 갈때 이렇게 라이딩을 하고 나서 미시령을 넘은 거냐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오늘은 9시반부터 라이딩을 시작한거고 그때는 4시반부터 시작한 거라고 양념을 좀 더 치니 고개를 절레절레 한다. 다시 집에서 속초까지 라이딩 할 수 있겠다는 질문에 대한 내 답은 '예스'다. 물론 올해는 아니다ㅎㅎ


청춘의 아름다움에서 이제 원숙미가 느껴지는 섬진강의 풍경을 사진에 담아보았다. 점차 넓어지는 백사장을 보니 이제 섬진강 하구에 다가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오후 4시에 섬진강 매화마을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봄이 되면 이 주변 산과 들이 모두 매화와 벗꽃으로 가득 찬다고 한다. 가까운 곳에 살면서도 왜 이런 장소를 모르고 살았던가...이제라도 알게되어 다행이다.

기력이 약해지는 것처럼 보였던 섬진강의 분위기가 변했다.


바다의 기운을 받은 섬진강은 마치 제 2의 인생을 시작한 것처럼 보였다. 물결이 치고, 고기잡이 배가 드나들었다. 무궁화호가 이런 섬진강의 모습을 보고 힘을 더 냈으면 싶다.

바다에서 밀려드는 바람에 생선 비린내가 숨어있다. 오후 늦은 시간이 되니  가을의 서늘함은 이미 사라지고 하구에서 불어오는 바람엔 소금기가 실려있다

바다에서 불어보는 맞바람이 오늘 라이딩의 하일라이트가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바람 소리가 워낙 거세어 바로 옆에서 말하는 동행인의 말소리마저 공중에 흩뿌려 버렸다.


0여킬로를 달려온 여정, 모두다 피곤할 법하지만 이 맞바람에 맞서서 누군가는 끌어야 한다.


'힘드냐? 난 엉덩이가 아프다..'


다리는 괜찮은데 엉덩이가 아파서 기어를 무겁게 놓고 댄싱으로 바람막이가 되어본다. 효과가 좋다. 앞으로도 엉덩이 아플때는 엉덩이를 흔들어야겠다.

오후 5시쯤, 섬진강 휴게소를 지난다. 저 멀리 포스코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갑자기 힘이 솟으며 한 켠에 아쉬움이 커져간다. 그렇게나 기다렸던 섬진강 라이딩도 이제 끝이 보인다.


역시 여행은 시작하기 직전이 제일 재미있다.  


어린시절 부모님과 종종 재첩 초무침을 먹으러 왔던 망덕포구를 지난다. 작년에 섬진강이 범람한 것 때문에 재첩 수확량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평일이긴 했지만 분위기가 너무 쓸쓸했다.


간판을 보니 알겠더라. 20여년 전쯤에 왔었던 가게라는 것을.


오늘의 마지막 인증센터인 배알도 수변공원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함께 달리면서 서로의 자전거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여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밀어주고 끌어주고 당겨주고 하다보니 170km가 언제 지났는지 모르게 어느덧 섬진강 종주 라이딩이 끝나버렸다.


마지막 미션이다. 오후 6시 30분 서울행 버스를 타기 위해 동광양 터미널 도착하기. 포스코 앞 수변 공원을 돌아 터미널로 향한다.



오후 6시가 되기 조금 전에 동광양 터미널에 도착했다.


함께 달려온 우리 셋은 각자의 길로 떠나야 한다. 같은 직장에 있지만 나부터 일단 내년에 내 길을 찾아 가야 하는 것도 맞다. 자전거로 연결된 셋이 그리워지는 순간이 언젠가 찾아오려나



형님은 서울로,

동생은 광양 집으로,

나는 순천 고향 집으로.


팔,다리를 보니 자덕라인이 더욱 선명해졌다.

올 여름에는 정말 자전거를 많이 탄 것 같다. 페달을 돌린만큼 다리가 튼튼해졌고 자전거가 더 좋아졌다.


3시반에 일어나 용산역에서 기차를 탔고, 임실역부터 광양 그리고 순천까지 왔던 아주 길었던 섬진강 라이딩이 이렇게 끝났다.


라이딩을 하면서 찍었던 수많은 사진과 영상을 정리하고, 후기를 쓰다보니 어느덧 3시간이 훌쩍 지났는데 이 과정이 마치 긴 시간 불에 푹 고아내는 곰탕 국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 맛이 담담하니 먹을만 한 것 같다. 냉동실에 잘 넣어놨다가 속이 허~할때마다 꺼내서 제대로 한 그릇씩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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