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다녀온 딸들에게 자주 묻는 질문이 있다.
"딸, 오늘 학교에서 뭐가 가장 즐거웠어?"
대부분 체육 시간 이야기, 쉬는 시간에 친구랑 논 이야기, 점심 급식 메뉴 이야기 등이 대부분이다. 수업 시간이 재미있었다는 말은 좀처럼 듣기 어렵다. 하긴 내가 학생이었을 때도 그랬던 거 같은데 시간이 지나고 변하지 않는 것은 확실히 있다.
어제 우리 반 애들을 데리고 고척근린시장에 다녀왔다. 전세버스 이용 문제로 인해 작년에도 대부분의 현장체험학습이 취소되었는데, 올해 역시 학생이 후진하는 버스에 사고를 당했던 사건 때문에 대부분의 현장체험학습이 취소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일단 학생들을 데리고 학교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위험부담이 큰데 사전 안전 교육을 철저히 하고 현장에서 주의를 기울였다고 하더라도 사고가 발생했을 때 모든 책임을 담임교사가 짊어져야 한다면 체험학습을 가고 싶은 교사는 없지 싶다.
그럼에도 학생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활동을 단연 현장체험학습이다. '체육이 좋아, 현장체험학습이 좋아?'라고 물어보면 아마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못지않게 어려운 질문일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교실 라이프를 벗어나 새로운 것을 친구와 함께 보고 듣고 느끼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새로움이고 즐거움이다.
한 달 전쯤에 고척근린시장 매니저님께 전화가 왔다. 전통시장 살리기 프로젝트 예산이 교부되어 학생들을 초대하고 싶은데 혹시 가능하시겠냐고. 동학년 선생님들께 의견을 물었더니 현재 사회 교과에서 배우고 있는 '우리 주변의 장소' 주제에 부합하니 현장 답사 형태로 가보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교실에서는 학생들과 사회 수업을 하며 '우리 생활에 편리함을 주는 장소'에 대해 미리 학습을 했고, 동학년 선생님들과는 고척근린시장에 사전 답사를 하며 도보로 이동했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점과 불편함을 찾아보았다.
그렇게 고척근린시장으로 떠날 아침이 되었다. 9시 40분에 학교를 출발해서 시장에서 여러 가지 물건을 구경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오면 11시 20분쯤 될 터인데 채 두 시간도 안될 이 짧은 시간에 우리 학생들은 어떤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내 생각이 짧았다. 상인분들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 덕분에 우리 아이들은 교실 안에서 여러 물건을 구경하고, 시식도 하고, 가족을 위해 무엇을 사갈 것인지를 진지하고 고민하고 고민의 결과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고척근린시장 상인회 분들의 준비는 감동스러울 정도였다. 천 원짜리 쿠폰을 개인별로 다섯 장씩 수령할 수 있게 준비해 주셨고, 장바구니에 김과 옥수수를 담아 나눠주셨다. 게다가 천 원 쿠폰으로 살 수 있는 물품을 미리 세팅하여 학생들이 구경을 하다 구입할 수 있게 도와주셨다. 게다가 쿠폰을 다 쓰고 나서 개인 용돈을 이용하여 물건을 구입하려 하니 원 가격보다 훨씬 더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내어주셨고 그 덕분에 아이들을 사랑하는 가족을 위한 장보기 활동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활동을 모두 끝낸 후 학생들의 소감문을 보니 장바구니에 가장 무겁게 담긴 것은 고척근린시장 상인분들이 따뜻한 마음이었다. 우리가 말하는 그 인심이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아이들에게 맛보라고 삼겹살도 구워서 주시고, 딸기도 나눠주시고, 이것도 하나 더 가져가서 가족과 나눠먹으라고 챙겨주시는 그 마음 덕분에 난 뭉클해졌다.
우리가 자주 가는 이마트, 코스트코...물론 편리하고 깔끔하다. 하지만 전통시장에는 분명 바코드로는 찍히지 않는 따뜻한 뭔가가 있다.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