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커피

- 미국 사람의 커피, 학림다방의 에스프레소

by 정소정


커피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조금 우습다.

“미국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사약처럼 검은 블랙커피를 사발에 부어마신대!”


친구 녀석의 출처를 알 수 없는 증언이 바로 그것이다. 때는 80년대라 믹스커피 마시던 시절이다. 물론 난 어려서 그 마저도 먹어본 일이 없었다.


“설마. 누가 커피를 밥도 안 먹고 먹어?”


지금은 다들 그러고 있어서 생각하면 무척 놀랍다. 그때로선 나뿐 아니라 애들 다 못 믿을 일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꼭 내가 개화기 시대 사람이라도 되는 것 같지만 난 80년대에 태어났다. 정말이다.


그러니 우리네 커피사랑의 역사가 생각보다 짧다는 것이다. 지금은 스세권이라는 말이 자연스러울 정도지만. 어쩌면 자연의 시간보다 커피의 시간은 더 빨리 흐른 것 같다.

도민준이 앉은 바로 그 곳, 학림다방


내가 커피를 마셔야겠다고 처음 결심(?!)한 건 2007년 봄, 학림다방에서였다. 맞다, 별그대의 도민준이 애용한 바로 그곳. 바닥과 테이블의 나무가 낡아서 더 좋은, 커피 향과 오래된 시간의 향기가 뒤섞인 곳.


그곳에서 나는 김병익 선생님과 함께였다. 당시에 난 문하부 산하 직원이었고 문학과 지성사 대표로 더 유명하셨던 그분은 그 기관 위원장이었다. 나는 위원장님과 마주 앉은 신입직원이었다.


“에스프레소요.”


일반인들보다 약 1.5배 정도 정확한 딕션으로 에스프레소를 주문하셨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테이블 위에 아주 작고 하얀 잔이 놓였다. 촌스럽지만 난 살아있는 사람이 내 앞에서 에스프레소 마시는 걸 그때 처음 봤다.



그리고 그 처음은 매우 근사했다!

커피만 마시면 이상하게 배가 아파와서 먹지 못 하던 내가 커피를 마셔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들 만큼. 위원장님은 그 작은 잔을 두 손가락을 살포시 집어 들어서 입술에 갖다 대셨다. 뭘 홀짝홀짝 들이마시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빠르게 댔다가 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게 왠지 당시 나의 눈에는 문학과 지성의 상징과도 같은 몸짓으로 여겨지고 만 것이다!


‘아! 나도 커피라는 것을 마셔야겠다.’


그리고 나의 커피타임은 이 나라의 커피타임보다 더 빨리 흘렀다. 난 몇 번의 장트러블을 극복하고 커피 중독자가 되었다. 덕분에 자주 불면에 시달리지만 비 오는 날 은은하게 퍼지는 커피 향이 얼마나 유혹적인지, 또 달콤한 빵과 함께 먹으면 빵맛이 얼마나 더 맛있어지는지 알게 되었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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