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커뮤니티의 글들을 보다보면 ‘제가 너무 예민한 걸까요?’ 라는 제목의 글이 자주 보인다. 연령대가 낮은 곳이든 높은 것이든, 관심사가 패션이든 인테리어든 뭐든 할 것 없이 여성들이 있는 곳에는 늘 이 질문이 따라다닌다. 나는 그 글을 읽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예민함 감별사가 되기라고 한 것처럼 주의를 기울이곤 한다. 그리고는 남의 글이라고 쉽게 ‘너무 예민하네.’ 혹은 ‘이 정도면 예민한 건 아니지.’ 따위의 방구석 판결을 내리곤 하는 것이다. 그럴 때 나 자신은 그다지 예민하지 않은, 무난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 문제를 내가 겪고 있는 건 아니니까. 난 어디까지나 편하게 읽는 입장이니까. 하지만 정말 그럴까? 난 무난하고 강한 사람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다.
넌 그만한 일로 언제까지 힘들어 할래?
가깝다고 생각했던 선배에게 상처받은 과거 일 때문에 힘들다는 말을 했다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바닥에선 그보다 더 한 일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고. 니가 뭘 알겠냐고. 자긴 그보가 더 잔인한 일도 많이 겪었지만, 지나면 그 뿐이지 그게 뭐라고 아직까지 힘들다 그러냐고. 그 말을 들으니 말문이 막혔다. 뭔가 가슴 속이 꽉 막히면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고 약간 서글프면서 억울하기도 했지만 왠지 할 말이 없었다.
진짜 내가 너무 나약한 건가. 힘들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일 따위로 힘들어한 건가. 저렇게 말하는 선배는 내가 알지 못 하는 무시무시한 폭력을 겪고도 강인하게 훌훌 털고 일어나 산업의 역꾼이 된 걸까. 나 역시 이 바닥에서 일을 하려면 누가 어떤 부당한 짓을 해도 그냥 별 일 아니네 하고 일어서야만 하는 걸까. 난 그런 사람이 아닌데... 어떤 폭력적인 상황을 겪으면 그 충격이나 상처가 아물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사람인데... 나처럼 약한 사람은 잘 못 한 것 하나 없이 다만 피해를 입었어도 계속 아프다는 이유만으로 욕 먹어도 싼 건가.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일어났다. 내가 참 못난 사람처럼 느껴져서 더 아팠다. 근데 그 선배의 말을 곱씹을 수록 말이 안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괜찮고 안 괜찮고는 어디까지나 그 감정을 느끼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거 아닐까. 상처를 훌훌 털라는 말은 무슨 자기개발서에 쓰여있는 너무 좋아서 오히려 더 무책임한 충고처럼 나에게는 적용할 수조차 없는 거 아닐까. 그럼에도 확신에 차서 훈계하는 누군가의 말을 일거에 무시하지 못 하고, 나는 오히려 나를 탓했던 것이다. 그럴 이유가 전혀 없는데...!
상처받을 만한 일인지 아닌지, 나 아닌 남이 심판하게 둬서는 안 된다.
내 마음이니까 나만 아는 거다.
상처가 남아서 아프다면 그건 지금 내 마음이 아픈 것 뿐이다. 내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는 이런 내 아린 마음이 아물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옳다든지, 그런 식으로 상처받지 말고 대범하게 넘기라든지... 그런 충고는 다 기준이 말하는 사람에게 있다. 실제로 그 일을 겪는 사람은 정작 나인데... 나같은 보통 사람들은 작아지고 한심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 어리석음을 상대방에게 솔직히 드러냈을 때는 상대방이 이런 나를 우습게 보거나 틀렸다고 지적해주길 바라는 게 아니라 이해받고 싶은 거다. 더 나은 사람으로 교정받고 싶은 게 아니라. 무언가 이해받고 싶은 부분이 있어 말했는데 비난 혹은 가르침이 돌아온다면, 말한 사람은 마치 훈계 당하는 학생처럼 느껴질 것이다.
모든 인간은 자신만의 촉수와 지표로 살아간다.
각자의 우주가 있고 각자의 별이 있다.
그 별이 설혹 어리석음과 오류, 혹은 약함으로 가득해 남들 눈엔 아름답지 않아 보일지라도. 산소가 가득한 타인의 별보다 좀 못난 나의 별을 더 사랑할 권리가 있는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