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쇼핑

by 정소정

스무 살의 나에게 쇼핑은 화장만큼이나 어색하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학엔 교복이 없었고 사복을 입어야만 학교를 갈 수 있는데 적절한 옷이 없었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내내 교복을 입었고 주말이나 방과 후에 사복을 입고 누군가를 만나는 일도 거의 없다시피 했던 나에게 사복을 입는다는 건 일종의 도전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처음으로 옷을 사기 위해 아빠와 함께 서울로 올라가 동대문으로 갔다. 옷으로 가득한 빌딩도 놀라운데, 그런 빌딩으로 가득한 거리에 눈이 휘둥그레졌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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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물론 여자 옷, 그것도 어떤 스타일의 사복을 입을 것인가에 대한 기준이 전혀 없는 스무 살의 여자아이 옷을 골라주기엔 역부족이었다. 나는 굉장히 많은 옷을 눈이 아프도록 봤고, 몇 벌을 샀다. 아직도 기억나는 건 채도 높은 보라색 니트 스커트. 멋쟁이였다면 어떻게 잘 소화할 수 있었겠지만, 당시 내가 입기엔 난해한 디자인이었다. 우선 몸에 너무 붙어서 엉덩이 라인이 다 드러났고, 그보다 더 문제인 건 캠버스에 그런 치마를 입은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나는 그 옷을 입고 나간 일이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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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하면 그 쇼핑은 실패였다. 완전한 실패.

하지만 나에게 어쩌면 인생 첫 쇼핑으로 각인되어 있는 그 쇼핑은 가장 따뜻한 기억 중 하나다.

이제는 기억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아빠와 꽤 긴 시간 동안 함께 걸었고, 또 쇼핑이 끝난 뒤에는 닭 한 마리라는 것도 먹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어설픈 쇼핑도, 아빠도 지금은 다시 만날 수 없는 순간이지만 닭 한 마리만큼은 그때 그 맛이다. 닭 한 마리를 생각하면 왜 참 별 거 없는데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굵고 거친 고춧가루에 간장을 붓고 휘휘 저어서 거기에 익은 닭고기를 찍어먹는 것. 그 단순하지만 거친 맛이 꼭 쇼핑이라는 건 해본 적 없던 그때 그 쇼핑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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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엄청난 멋쟁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그 이후 꽤 많은 쇼핑 경험으로 입지 못 할 옷을 사는 실수는 줄어들었다. 여전히 어떤 욕심이나 환상에 사로잡혀 어울리지 않는 걸 살 때도 있다. 하지만 아무런 기준이 없던 그때와는 다르다.


살다 보면 우린 조금씩 우리에게 어울리는 걸 알게 된다. 그렇게 알아가는 게 사는 기쁨 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걸 몰라 혼란으로 가득하던 그 시간이 조금은 그립다. 한 번 알게 된 것을 다시 모르는 상태로 되돌리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무지야말로 젊음의 특권이다. 몰라서 거칠고, 거칠어서 맛이 있다.


동대문 닭 한 마리처럼. 첫 쇼핑처럼. 그때 그 보라색 니트 스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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