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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정 Nov 24. 2020

21세기의 가난



라면을 먹으려다가 불을 내서 중상을 입은 형제 중 동생이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 풍요의 시대에 외롭게 가난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연세가 많은 어른들은 요즘처럼 좋은 시절에 태어난 걸 행운으로 알라고 하시며, 우리 때는 다들 배를 곯았다는 이야기들을 하신다. 하지만 그 말 속에 있는 ‘다들’이라는 말이 실은 정말 중요한데, 다들 가난하면 다들 힘들고 다들 가난을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그 때의 가난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때에 가난한 사람들은 외롭지 않고, 부끄럽지도 않다. 그 때의 가난은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것일 수도는 있어도 수치는 아니다. 


하지만 모두가 부유한 지금같은 시대에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가난하다면, 그 때는 부끄러워서 그 말조차 못 하게 된다. 


이전소득이라는 것, 세금이라는 것이 있지만 분명히 그늘이 있다. 돈을 열심히 버는 사람들, 또는 재산이 많은 사람들은 세금을 많이 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 세금이 정말로 필요한 사람들에게 잘 전달되고 있는가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제도적 한계도 있고, 또 수치스러워서 아무 말 못 하고 굶고 힘들게 버티다 쓰러지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그렇게 현대의 가난은 말 못 할 고통이 되고 있다. 


가난은 각종 콘텐츠에서 여주인공이 걸치기 좋은 옷처럼 미화되고 스테레오 타입으로 낭만화되다가도, 현실에서 맞닥드렸을 때는 전염병처럼 꺼려지는 낯선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다들 너무 잘 살고, 아파트 하나가 수십억씩 하는 지금 이 시대에 가진 것 없이 힘겹게 버티고 있을, 그럼에도 가난해보이지 않기 위해 위장까지 해야 할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을 철저하게 타자화시켜서 참 안 됐다고 말하며 바라보는 것 말고, 혹독한 현실에 맞서고 있을 이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게 뭘까 오늘 하루라도, 가능하면 내일 또 다시, 고민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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