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를 위해서라면 뭐든…!

펜트하우스 3회차 관람기

by 정소정


김순옥 작가의 신작 펜트하우스가 어제 부로 3회차다. 이 작품의 주제의식이라든지 짜임새 같은 것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 재미에 대해서 말하자면 경이로울 정도다. 단 한 씬도 재미요소나 자극 없이는 지나가지 않겠다는 결의가 엿보인다. 그러니까 이 미친 듯 드라마틱한 상황 전개를 위해서라면 캐릭터의 일관성이라든지, 내용의 당위성 같은 것은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는 것 같다. 따발총을 우두두두두 쏴대며 황야의 무법자의 악당처럼 역광으로 등장하는 엄기준이라든지, 잘린 손가락 출몰이라든지, 성모상에 폭 안기며 피칠갑 사망하는 소녀라든지… 이렇게까지 과할 수 있을까 싶은 과한 설정은 말할 것도 없다.


나는 여성전용 찜질방에 가서 아주머니, 할머니들과 함께 드마라 시청하는 걸 좋아한다. 실시간 진짜 시청자들의 반응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나 내 주변 인물들은 이미 너무 많이 배웠거나 이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이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실 시청자들과는 거리가 크다. 그래서 나는 목욕탕 반응을 더 선호하는데, 펜트하우스는 그야 말로 모든 아줌마, 할머니들을 넋나간 미어캣으로 만들어버렸다.


“어머머. 쟤가 쟤 친딸아야?”

“아이구야 무서라. 손가락이 왜 나온대?”

“총 쏘는 거야? 지금?”

“미국이래, 언니!”

“웬일이야 웬일이야.”


이 드라마에 대해 잔인해서 국민정서에 안 좋다는 말부터 폐지가 답이라는 항의까지 다양한 부정적인 의견이 있지만, 우리네 건강하고 강하신 중년 이상 여성들에게는 역시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오락물로서의 기능이 더 큰 것 같다. 나 역시 짜임새 있는 글이나 극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했고 쓰기도 했지만, 또 한 명의 시청자로서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한국드라마를 보며 자랐다. 사실 그런 드라마 관극 경험은 삼시세끼 밥을 먹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한국드라마적 리듬이나 관성은 거의 디엔에이처럼 새겨져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 드라마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고 우선은 미어캣 모드 시청자로 보고 있는 입장이다. 임성한 작가도 곧 돌아온다고 하는 걸 보면 역시 옳고 그름으로 따져서 될 일은 아니다. 보통의 시청자들의 오랜 시간 형성된 기호가 쉽게 바뀌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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