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동백 꽃 필 무렵’을 쓴 임상춘 작가의 작품은 정말 완벽한 글이었다는 오정세 배우의 인터뷰를 읽으니 질투가 난다. 그리고 이 작가의 작품이라면 언제든, 아무리 작은 역이라도 오케이라는 말에는 눈물이 난다. 이 정도의 믿음을 줄 수 있다면...! 누군가 이렇게 전적으로 믿어주는 사람 한 명만 있어도 그 인생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나에겐 그런 사람 한 사람이 있는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왠지 가슴 한 편이...
우리들 대부분은 임상춘 작가만큼 대단하지 못 하기 때문에 이 정도의 찬사를 인생 내내 단 한 번도 듣지 못 하고 죽을 수도 있다. 근데 나도 저런 말 한 번 듣고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럴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의 추워진 마음은 뭘로 달래지? 목욕? 맛집투어? 덕질? 산책? 뭐든 조금은 위로가 되겠지만 아마도 다시 저런 말이 듣고 싶어질 때가 올 것이다.
사는 데 정답은 없지만 이런 기분이 들 때, 나는 거울 앞에 선다. 그리 잘 나지 않은 내 얼굴과 몸을 본다. 어떤 비하나 기대 같은 것 없이 나 자신을 보기 위해 노력한다. 역시 내 얼굴은 안면비대칭이 너무 심해. 라든지... 최소 오 키로는 빼야 사람다워 보이겠다... 같은 생각하지 말고 거울 속에 선 익숙하지만 어제와 조금은 다른, 내일 또 조금은 달라질 지금의 나를 한 번 본다. 지금의 나는 뭔지 모를 글을 열심히 쓰느라 어깨는 앞으로 약간 말렸고 날개쭉지와 팔에 만성통증이 있으며 그래도 여전히 눈빛만큼은 살아있다. 여전히 늙지 않았다. 나는 나대로 지금 이 모습으로 거울 앞에 서기까지 열심히 살아왔다. 오정세까지 필요하지도 않다. 나도 입이 있으니까.
당신이라면 무조건 오케이입니다.
내가 나에게 말해준다. 그리 멋지지 않아도 나를 위해 온 힘을 다 해 살아주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이런 말 한 마디쯤 해주는 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는가. 중요한 건 지금의 나 자신을 받으들이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대단하지 않은 나를 받아들이는 훈련을 해야하는지도 모르겠다.
대단하지 않아서 좋은 점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남들로부터 대단하다는 말을 매일같이 듣다보면 혹시라도 조금 덜 대단해지는 순간 그 찬사가 질시로 바뀔 위험이 있다. 어쩌면 그 대단함이 사라질까봐 불안에 시달릴 지도 모른다. 대단할 것까지 없어도 나같은 사람도 가끔 뭔가를 잘 해낼 때가 있다. 그럴 때 가슴 벅찬 칭찬도 듣고 기분도 좋아지지만, 머지않아 저번만 못 하네. 라는 차가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우리는 어쩌면 저번만 못 하네... 라는 말 같은 것으로부터 초연해지는 훈련도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틈만 나면 찍어누르려 하고 깎아내리려 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래도 고개를 빳빳이 드는 훈련도 해야 한다.
다음에는 그런 멘탈 훈련에 대한 글을 본격적으로 한 번 써봐야겠다. 일종의 마음의 요가. 누가 다짜고짜 싸대기를 때려도 모가지 꺾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그런 훈련된 몸과 마음을 갖는 법이라든지... 구겨진 마음을 조금이라도 펼 수 있는 즉각적인 체조라든지.
이렇게 실컷 쓰고 보니, 조금 더 노력해서 그냥 남들한테 엄지척 받는 사람이 되려고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지금 이 긴 글은 모조리 현실도피다. 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아니다. 이건 현실도피가 아니다. 애쓰고 노력하는 와중에도 실망스러운 말들만 돌아올 때가 있다. 우리 모두 그런 날, 쓰러지지 말자고 하는 이야기다. 그런 날 애써 해오던 일들이 하찮아 보여 그만 두거나 자신의 인생 전체를 부정해버리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다음’이 있고, 더 나아질 ‘기회’도 생기고, ‘내일’도 오는 것이다. 정말 그렇게 힘들 때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꼭 이 말을 들려주자는 거다.
당신이라면 언제든 오케이, 무조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