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12년 전, 나는 회사원이었다. 꼭 들어가고 싶었던 직장에 운 좋게 입사했고,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 회사나 일을 향한 내 마음은 진심이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글이 너무 쓰고 싶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어느 순간 무슨 신병처럼 깊어졌던 것 같다. 몸도 많이 아팠다. 아마도 사람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못 할 때 몸과 마음이 병드는 그런 존재인 것 같다.
그 때에 나는 전업작가들이 글 쓰기를 계속해나가는 게 힘들다는 말을 할 때면 별로 공감이 되지 않았다. 나는 쓰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서 못 쓰는데 그런 말을 하는 작가들을 보면 배 부른 소리를 하는 것만 같았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고, 언제나 작가이고 싶었지만 단 한 순간도 생계 유지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다. 숨 쉬듯 돈 벌이에 대한 고민을 해야했다. 그런 시절을 지나 입사를 했고, 그럼에도 글을 쓰고 싶었던 나에게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 작가들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 하는 게.
하지만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고, 상황은 변하기 마련이라, 나 역시 전업작가가 되었다. 회사 생활은 그리 오래하지 못 하고 4년차에 그만 뒀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그토록 원하던 글쓰기만을 하며 살아오고 있다. 그런데 정말로 글만 쓰려니까 글 쓰는 게 얼마나 힘든지 깨닫게 된다. 작가들이 오로지 자기 안에서 동력을 끌어내서 쓰고 또 쓰고, 또 새로운 작품을 써나가는 것. 그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힘든 일이 되어갔다. 그래서 나에게는 글쓰기를 지속해나가는 몇 가지 방편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그냥 키보드를 두드리는 타건행위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다.
키보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무한한 세계가 펼쳐진다. 다양한 축과 디자인, 설계에 따라서 타건감은 달라진다. 두드릴 때 나는 소리라든지 손끝에 느껴지는 감촉, 그런 것들 때문에 행복해지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럴 때 나는 글을 쓰는 게 아니라 키보드를 두드리는 거다. 지금 나는 레오폴드 무접점 키보드를 쓰고 있다. 텐키리스라 크기도 작고 예쁜데다 무접점 특유의 타각타각 부러지는 감촉이 참 좋다. 너무 좋아하는 키보드라 가운데 부분 키는 핑크색으로 바꿔껴주기까지 했다.
그냥 이런 작은 재미라도 마련하면 또 키보드를 만지고 싶어진다. 그러니까 글쓰기가 조금 힘들게 느껴진다면, 단순하게 키보드를 두드린다고 생각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내가 하는 이 사소한 행위가 나에게 즉각적인 즐거움을 줄 수 있게 바꿔가는 게 삶을 조금 더 행복하게 해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