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진짜 인간이었던 우리들의 얼굴, 얼굴, 얼굴…!

- 영화 ‘한여름밤의 재즈’를 보고

by 정소정


‘한여름밤의 재즈’를 봤다. 음악영화, 혹은 기록영화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장르가 아닌 어떤 상태로 일컫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데, 그건 바로 ‘아름다움’이다. 스크린을 보는 내내 가슴이 벅찼고 또 고통스러웠다. 어떤 감격과 상처로 눈물이 뺨을 적셨고 최근 몇 년 간 콘텐츠에서, 특히 영상 콘텐츠에서는 조금도 느낄 수 없었던 ‘인간’, 그리고 ‘인간의 아름다움’에 압도되었다. 아… 그래! 저게 인간이었지. 아! 맞아… 우리 인간에게는 사실 저런 아름다움이, 생기가, 뛰는 심장이, 흐르는 땀이, 감격하고 도취되고, 또 그 와중에도 무대 위 스타를 향한 무조건적인 숭배가 아닌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는 기품있는 태도 같은 것이 있었지. 그래, 우리는 한 때 ‘진짜’ 인간이었지.

찬란하던 그 재즈뮤직페스티벌로부터 7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빛과 색이 사라지고 재로 뒤덮인 어두운 미래 도시에 살고있는 나는 우연히 1959년 뉴포트의 찬란한 여름 날을 훔쳐보고 환희와 절망에 빠진 것이다. 다른 사람이 주변에 없었다면… 어쩌면 나는… 아니, 확실히 나는… 목놓아 울었을 것이다. 감격의 눈물은 통곡으로 변했을 것이다. 엉엉… 기쁨이 슬픔으로, 내가 존재하기도 전의 시간을 바라보며 향수를 느꼈다. 나도 다시, 살고싶다. 내 곁의 사람들도 70년 전 저들처럼 총천연색으로 반짝이게 만들어주고 싶다. 다시, 우리도 저렇게 진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마음 속에서 솟아난 의문과 희망, 꿈… 그래, 이루어지기 힘들지만 그곳을 향해 가야 하는… 그런 꿈 같은 게 솟아났다. 내가 지금, 여기, 태어난 이유. 모두에게 우리가 살아있음을 일깨우고 싶다. 우리는, 아직, 죽지 않았다고. 여기, 이렇게… 꺼져가는 초처럼 위태롭지만 여전히 빛을 내고 있다고… 여기, 인간이 있다고…

영상 초입에 페스티발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나오는데, 넓은 축제 공간에 나무 의자가 깔린다. 그렇다! 나무! 빌어먹을 플라스틱이 세상을 지배하기 전이란 말이다. 나무의자에 앉은 사람들은 나무를 닮았다. 플라스틱처럼 매끄러운 현대인들과는 다르다. 화면을 가득 채울 정도로 클로즈업된 얼굴들에 보이는 삐뚤빼뚤한 이는 라미네이트같은 걸 하지 않아서 그야말로 나무에 돋아난 잎들처럼 생명력이 넘친다. 찍어내거나 녹여낸 플라스틱 표면 같은 현대인들의 얼굴과는 다른, 요철이 많은, 나무나 돌처럼 그 자체로 생명력 있는 옛날 사람들의 얼굴에서 힘이 느껴졌다. 그 많은 사람들이 저 마다의 거칠지만 힘있는 얼굴로 남 눈치 같은 건 보지 않고 음악을 즐겼다. 어떤 이는 갓난쟁이를 그대로 품에 안았다가 하늘로 들었다가 들쳐업었다가 하면서… 또 다른 이는 일어나 춤을 추면서. 자신의 심박에 따라 몸을 옮기는 것만 같은 그들의 거친 춤은 기교가 없어서 아름다웠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듯, 꽃잎이 비에 젖으며 몸을 떨듯… 음악 속에서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보여주며 떨리고 있었다.


관극매너? 그런 걸 따지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누구라도 웃고 울고 춤추고, 때로는 그냥 초연하게 책을 읽기도 하고. 자신만의 기분으로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현대인들에게 강요되는 어떤 태도? 집중? 숭배?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들은 자신을 사랑하고 신을 경외하는 인간일 뿐이었다. ‘아이돌’이라는 말이 없었던 시절, 그 누구도… 최고의 스타조차도 ‘우상’이 되지 않고 ‘친구’였던 시절. 당대 최고의 스타인 루이 암스트롱은 자신을 멋지게 포장할 욕심 따위는 없이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실없는 농담을 한껏 늘어 놓았고… 그 농담은 그리 높은 수준의 재치 같은 것도 없이 투박했지만 그래서 더 멋이 있었다. 무대에 있는 사람이나 객석에 있는 사람이나 모두가 나무처럼… 그렇게…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굳건히 소리내고 흔들리고 웃고 울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모습이 그리웠던 것 같다. 매끈한 것들 말고 살아있는 것. 화면은 중형카메라처럼 정사각 프레임이었고 현대적인 의미의 공연영상과는 그 앵글이나 촬영방식이 너무나 달라서 그 자체로도 감각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그런 방면의 영상문법이 생기기 이전에 한 인간이 자신의 느낌대로 찍고, 또 편집하는 한 인간이 자신의 호흡대로 편집하고, 그 모든 것들이 너무나 자유로워서 영상에서도 그걸 찍고 만드는 사람들 하나 하나… 그야말로 그걸 만들고 있는 ‘인간’이 느껴졌다. 너무나 매끄러워서 인간이 보이지 않는 요즘 영상들과는 정 반대편에 있었다. 그 거친 결이 꼭 한여름의 재즈, 한여름의 햇살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