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교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기이해와 진로 탐색’이라는 낯선 주제로 강의를 하고 왔다. 이번 강의는 3학년을 제외한 1·2학년 학생 모두가 듣는 자리였다. 약 200여 명의 시선이 강당을 채웠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은 낯설고 어려운 일이다. 생각을 온전히 다 전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말로 다 못한 이야기를 이렇게 글로 적어본다. (또 못한 말이 있는데, 애들아 지루했지 미안해ㅠ 조는거 다 봤다ㅎㅎ)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다.”
이 문장에 함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노동해야만 했지만, 이제는 기술 발달과 물질적 풍요로 인해 ‘생존’을 위한 노동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로 대표되던 시대가 저물고, 저성장 사회가 찾아오면서 ‘일’을 대하는 태도와 가치관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자동화와 인공지능이 전통적 노동을 빠르게 대체하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새로운 형태의 일’을 갈망하고 있다. 과거에는 가족 부양이나 더 많은 소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왔던 노동이 이제는 ‘자기실현’의 통로로 떠오른다. 단순히 먹고살기 위한 활동을 넘어, 자신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확인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변화를 마주하면, 자연스럽게 몇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일을 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왜 일을 해야 하고, 그 목적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이미 풍족한 자원과 자동화가 보편화된 시대에, 인간이 굳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오늘날 일은 한 개인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정의하는 핵심 수단이 되고 있다. 과거처럼 ‘생존을 위한 노동’에서 멈추지 않고, “어떤 일을 통해 나 자신을 증명하는가?”라는 관점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그 결과, 일의 본질은 단순한 ‘봉급’이 아니라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서 주목해볼 만한 세 가지 방향성은 다음과 같다.
자발적 노동_ ‘업’이 곧 ‘삶의 방식’
대량생산·대량소비가 끝나가면서, 개인이 스스로 선택하고 즐길 수 있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예술가나 창작자가 대표적인 예인데, 이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삶의 방식으로 삼으면서, ‘업’과 ‘취향’을 자연스럽게 결합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동시에, 그것이 곧 자기다움을 드러내는 활동이 된다.
관계 기반의 가치 창출_ ‘무엇’보다 ‘누구’
‘무엇을 만들어내는가’보다 ‘어떤 관계와 경험을 만들어내는가’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역량을 교류하고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면서, 물질적 가치를 넘어서는 인간적 유대감과 의미를 찾게 된다. 예컨대 지역 커뮤니티, SNS 기반의 창작 활동, 소규모 모임 등을 통해 사람들은 함께 공감하고 성장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낸다.
다양한 형태의 자기계발_ ‘성장’이 곧 ‘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경제적 보상을 넘어 자신을 성장시키고 삶의 목적과 가치를 찾는 과정 자체를 ‘일’로 여긴다. 회사 안팎에서 개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새로운 스킬을 배우며, 협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재정의한다. 이렇게 성장해나가면서 ‘일이란 결국 내가 계속 진화하는 과정’임을 느끼게 된다.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에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로
결과적으로, “일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다”는 전제는 기술 발전과 사회 구조의 변화로 인해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물론 여전히 생존을 위해 노동이 절실한 사람들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나’를 표현하고, 세상에 기여하며, 스스로 성장하는 데 더 큰 가치를 두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일의 본질’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자본과 효율성의 논리에만 매몰되지 않고, “나와 사회 모두에게 긍정적인 영향과 행복감을 가져다주는가?”라는 물음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 더 이상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만으로는 부족하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더욱 중요해진 시대다.
이 답을 찾는 과정은 쉽지 않지만, 동시에 매력적인 도전이 될 수 있다. 스스로를 탐색하고, 실험하고, 발견하는 모든 과정에서 ‘내 일’을 새롭게 정의해갈 수 있다. 이것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일의 가치를 다시금 찾아가는 길이 아닐까.
동시에 예산 청년마을 내:일이 존재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