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나 또한 스토너이다.
소설 '스토너'는 1965년 존 윌리엄스가 출간한 장편소설이다. 소설 '스토너'는 다음과 같은 수식이 따라 붙는다.
"주인공 스토너라는 평범한 사람의 불행한 인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한 문체로 이야기하는 소설"
그러나 나는 소설 "스토너"를 한 문장으로 이렇게 요약하고 싶다.
평범한 사람의 위대한 이야기
왜 사람들은 스토너의 인생을 평범하고 또 불행하고 하였을까?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스토너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스토너는 1891년에 태어나 경제적으로 가난한 농사꾼 부모 밑에서 농사일을 도우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의 부모들은 나쁜 사람들은 아니였으나 스토너에 대한 관심이나 사랑, 문화적 경험 등을 제공해야할 여력이 없거나 제공해야 자녀가 좀 더 잘 성장할 수 있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였다.
그러던 중 군청 직원의 우연한 권유로 미주리대학교 농대에 진학하게 된다. 미주리대학교 근처에는 어머니의 사촌이 살고 있었고 그 곳에서 농사일과 온갖 잡일을 돕는 조건으로 숙식을 해결하며 대학교에 다니게 된다.
대학교를 다니던 중 아처 슬론 교수의 영문학개론수업을 교양수업으로 듣게되고 자신이 진정 관심있는 일은 농업이 아니라 문학임을 깨닫게 된다. 그는 결국 대학 4년 간 농업 수업이 아닌 문학 수업 위주로 수강하게 되고 문학사 학위취득을 한다. 석사를 마치고 아처 교수의 배려로 학부 신입생 강의를 하면서 박사과정을 밟게 된다.
스토너는 고든 핀치, 데이비드 매스터스라는 박사과정 동료와 친해지게 된다. 스토너는 세계 1차대전 징병에 응하지 않으면 앞으로의 커리어에 있어서 불리한 점이 있을 것을 알았지만 지원하지 않는다. 핀치와 매스터스는 참전에 응하고 매스터스는 전사한다.
아처 슬론에게 동대학의 전임강사 자리를 제의 받았다. 핀치 역시 전쟁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와 문리대 학장의 행정비서 자리를 맡게 된다.(핀치는 스토너와 반대되게 정치적 감각을 지닌 친구다.)
문리대 학장 조시아 클레어몬트 집에서 열린 전쟁터에서 돌아온 교수, 직원들을 위한 리셉션(고든 핀치가 기획한)자리에서 그는 이디스를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되고 얼마지나지 않아 이디스와 결혼하게 된다.
이디스와의 결혼 생활은 실패작임을 바로 깨닫게 된다. 그녀는 해당 시대 상을 반영하는 전형적인 여인이였음에 더불어 올바른 방향의 가정교육을 받지 못해 조울증으로 보이는 증세 등을 보였고 결정적으로 스토너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녀의 부모들로 부터 탈출하기 위해 단지 결혼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를 사랑하진 않지만 아이를 낳는 것이 순리라고 여겼던 이디스에 요구에 의해 그레이스를 낳게 된다.
이디스는 그레이스에게 무관심 했다. 모든 육아와 집안일은 스토너의 몫이였다. 스토너는 이디스에게 주지 못한, 받지 못한 사랑을 그레이스를 통해 느끼곤 했다. 스토너는 그레이스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문학(학문)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스토너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과제를 첨삭하고 집으로 돌아와 퇴근하여 육아와 집안일을 병행하는 모습을 보며 그이 삶의 무게가 느껴졌다.
그러던 중 스토너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연이어 돌아가신다. 은행장이였던 이디스의 아버지는 1929년 세계대공황으로 주식시장이 붕괴하자 투자실패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고야 만다. 이디스는 아버지 장례를 다녀온 뒤 태도를 바꾸어 그레이스에게 집착하였고 스토너와 그레이스가 가까워지는 것을 교묘하게 방해한다. 그레이스는 점차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기 시작하고...
그의 인생의 은인인 아처 슬론도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장애가 있던 학과장 로맥스와 그가 아끼는 찰스 워커라는 학생에 의해 학교에서 곤경에 처하게 되고 그의 신념을 꺾지 않는 선택을 하게 된다. 이로 인해 그는 죽을 때 까지 조교수 이상으로 승진하지 못했고 로맥스에게 일상의 갑질을 당하지만 묵묵히 버텨나간다.
그는 이디스와의 사랑없는 결혼 중에 캐서린 드리스콜과의 사랑(불륜관계)에 빠지지만 이러한 소문이 학교 전체에 암암리에 퍼지게 되고 로맥스의 간계로 인하여 캐서린은 미주리대학교를 떠나게 된다. 스토너는 이혼을 하거나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등의 선택 대신 캐서린을 떠나 보내게 된다. 사랑 대신 일상과, 딸 그리고 교수로서 학문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이 자신과 캐서린에게 도움이 되고 어울리는 선택이였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이별 이후 급속히 늙어버린 스토너. 로맥스를 크게 엿먹이기도 하며 학생들을 가르치며 학문을 해나가며 일상을 묵묵히 보낸다. 그 와중에 그레이스는 결국 집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임신을 하여 사랑 없는 결혼을 하여 집을 탈출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그레이스의 남편은 2차대전에 참전하여 전사하였으며 그레이스는 알콜 중독에 빠지게 된다. 스토너는 암에 걸렸고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한 사람의 생을 이렇게 짧게 정리하는 것으로 그 사람의 삶을 모두 알 수는 없을 것이니 소설 '스토너'를 꼭 직접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소설을 다 읽었을 때 스토너와 함께 한 번의 인생을 살았던 것 같은 느낌과 함께 먹먹함이 밀려오는 좋은 작품이다.
여기까지가 소설 '스토너'의 대략적인 줄거리다. 이렇게 줄거리로만 보면 사람들이 스토너의 삶을 행복하지 못한 삶이였다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스토너가 불행하다고 여겨지는 대표적 이유는 다음과 같다.
사랑하는 배우자를 만나지 못해 평생을 버티듯 살아왔다.
더 높은 자리로 승진하지 못했으며 그의 저서가 유명해지지도 못했으며 그의 이름을 학계에 남기지도 못했다.
그의 딸도 자신이나 이디스와 같은 불행한 삶을 살게된 것으로 보인다.
진정한 인연이였던 캐서린을 잡지 못했다.(캐서린은 스토너가 죽을 때까지 미혼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스토너가 정말로 불행했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책의 저자 존 윌리엄스는 스토너는 행복했으며 더 나아가 영웅적인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스토너의 삶이 행복했던 이유는 아래와 같다.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군청직원의 안내와 아버지의 권유로 대학에 진학을 했다.
그의 부모는 가난했지만 스토너의 대학 진학을 반대하는 부모가 아니였고 어렴풋이 나마 더 좋은 교육이 더 좋은 인생을 만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많지는 않지만 약간의 돈을 스토너에게 지원해주기도 한다.
어머니의 사촌이 마침 미주리 대학교 근처에서 살고 있어서 사촌 집의 잡다한 일을 하며 숙식을 해결하며 대학생활을 할 수 있었다.
농대에 진학하여 부모님의 농사에 일을 보태는 것이 목적으로 대학에 진학했으나 스토너는 대학에서 셰익스피어의 시를 읽고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에 눈을 뜨게 되고 박사과정을 밟고 교육자가 된다.
캐서린과 영영 맺어지지 못했지만 진정한 사랑을 느껴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에게 사랑보다 중요한 것은 학문이였을 것이다.(물론 이디스가 호락호락하게 이혼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상황이 맥락 속에 계속 언급되었고 스토너의 성격 상 파격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도 납득이 가지 않았지만...)
사랑하는 딸 그레이스와 잠시나마 교감했던 순간이 있었다.
스토너는 만약에...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게 하는 소설이다.
만약에 스토너가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면 이디스를 만나지 않았고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까?
→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소설 초반에 묘사되는 스토너의 부모님의 모습은 농사짓는 것 외에 어떠한 삶의 방향성이나 희망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디스를 만나 섣불리 고백한 것은 스토너의 큰 실수였지만 스토너는 자신의 선택을 죽을 때까지 짊어지고 간다.
만약에 스토너가 딸을 둘러싼 이디스와의 양육 주도권 경쟁에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면 그레이스는 바르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 작중에 이디스는 "나도 그레이스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라는 말에 스토너느 이디스에게 양육의 주도권을 완전히 내주고야 만다. 이디스로 인해 그레이스 본연의 반짝임이 점점 사그라드는 모습을 볼 때면 내가 그레이스의 아버지가 된 듯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디스와 적극적인 양육 경쟁을 펼쳤다면 그 것은 스토너가 아닐 것이다..
만약에 스토너가 이디스와 이혼을 하고 캐서린과 함께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다면 더 행복했을까?
→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당시 전도유망한 학생이였던 캐서린은 결과적으로 학문적 성취를 이뤄내는데 성공한다. 스토너와 캐서린이 모든 것을 버리고 둘 만의 사랑을 위해 떠났더라도 결과적으로 그 둘이 그렇게 사랑했던 학문을 포기한 순간 , 껍데기 밖에 남지 않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이 책이 나에게 "스토너의 삶을 행복하게 바라볼 수 없다면 내 삶도 행복하게 바라볼 수 없다. 고로 스토너의 삶을 행복하게 바라보고 더 나아가 내 삶의 서사들도 행복한 방향으로 해석해야한다." 라는 교훈을 주었다.
2화부터는 소설 "스토너"의 교훈에 따라서 나의 삶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며 글을 적어나갈 생각이다.
내가 불평을 한다고 내 삶이 달라지는 것은 없다. 오직 주어진 내 삶, 직면한 내 삶 속에서 매일매일 최선의 결정을 내리고 이 결정이 점차 나의 삶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아나갈 것이다. "나 또한 스토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