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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프구원자 Jul 27. 2022

낳느냐 안 낳느냐 그 것이 문제로다.

처음부터 딩크였던 것은 아니였다.

  또래에 비해 멋모르고 결혼을 일찍한 89년생 남자 초등학교 교사. 어느 덧 30대 중반인 서른 넷이 되었다.

처음부터 딩크였던 것은 아니였는데... 언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세상 물정 모르던 교대생 시기, 임용시험 통과하고 군대 다녀와서 부부교사해서 착실히 산다면

안정된 금빛 미래가 펼쳐질 줄로만 알았다.(실제로 그랬었던 시기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2013년 2월에 졸업을 하자마자 군대에 다녀와 2015년 9월에 첫 발령을 받았다.

초급장교 생활을 하며 모은 2천여만원이 나의 전 재산이였다.

당시 은행별 군인적금 한도를 총 동원하여 5%의 이자를 받아가며 최선을 다해 모았던 돈이다.


이 때 문득 나의 과거를 되돌아 보았던 것 같다.

"대학생 때 좀 더 돈을 모았어야 했을까?"

당시 주변에 과외를 하며 돈을 열심히 모았던 여자동기 중 한 명이 떠오르기도 하였다.

물론 나도 내 생활비 정도는 학교에서 주관하는 멘토링 사업 등을 참여하며 충당하였다.


당시 매달 부모님이 50만원씩 나에게 송금을 해주셨지만 월세 25만원+관리비 5만원 정도는 기본값으로 지출이되었다. 남은 20만원과 멘토링비 30만원 정도로 나는 한 달을 버텨냈던 것 같다.

그게 최선은 아니였겠지만 타지에서 내 나름의 최선을 다하며 분투해왔던 것 같다.

물을 돈주고 사먹기가 아까워 물통을 사서 학교에서 자취방으로 돌아갈 때 학교 정수기로 물병에 물을 받아서 집으로 돌아가곤 했으니까. 부모님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았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내 나름대로 아끼며 생활을 꾸려나가는 것을 보람되게 생각하며 지내왔었다.


그렇게 교사가 되어 월급을 받고 모으고 결혼을 하고 이제 세 번째 전세집이다.

지난 정권 하에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돈을 모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연봉이 올라서

호화롭진 못하더라도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내가 생각한 여유에 도달하는 것이 아득하기만 하다.

여유에 도달하기 전에 먼저 도달한 것은 나의 삶에 대한 희망 임계치였다.


'아 이렇게 모아서 언제 집을 사고 애는 또 어떻게 낳지? 애를 낳는 순간 수입도 줄고 지출도 늘어날텐데'


(나는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것이 아닐까? 21세기판 스토너는 다름 아닌 바로 나인 것 같다.)

(1화 참조 ^^;;)



낳느냐 안 낳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왜 나는 이러한 고민을 하는 것인가?



낳느냐 : 지금까지 사회에서 말하는 정상적인 삶의 궤도가 자녀를 갖는 것이니까. 별 생각 없이 낳아봐.

안 낳느냐 : 그렇지 않다. 인생은 한 번 뿐이고 온전히 나의 판단으로 결정할 것이다.

낳느냐 : 낳을 수 있는 것은 생물학적 때가 있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겠어?

안 낳느냐 : 반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낳을거면 난 제대로 키우고 싶어. 어중이 떠중이가 아니라

그 와중에 나의 인생은 10년정도 퇴보하게 될꺼야. 이렇게 금전적으로 버티는 삶이 너무 지쳤어.


나는 출산은 여자가 하는 것이므로 여자의 생각이 가장 중요하고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와이프에게도 출산의 의중을 진지하게 물어보지만 돌아온 대답은 잘 모르겠다이다.

굉장히 심플한 대답이지만 아마도 나보다 와이프가  더 심사숙고한 이후에 나에게 들려준 답이였으리라.


 와이프의 성격 상 내가 간절히 자녀를 원한다면 출산을 하자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책임지고 싶지 않아서 일까? 나는 비겁한 것일까?


결국 나는 경제적인 부분 + 그다지 아기가 간절하지 않음의 힘으로 출산에 대해 먼 나라 이웃 나라 이야기이 듯 먼 발치서 지켜만 보고 있다.


여기서 약간의 창의적 생각을 보태서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며 자녀를 낳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배우자와 나의 직업이 둘 다 교사이기 때문에 지방으로 전출이 가능하다는 것! 와이프가 근무하는 서울교육청은 언제든 전국을 프리패스로 이동할 수 있으며 나 또한 어느 정도 지방으로 교환이 가능하다.

서울보다 주거비용이 적게 드는 곳으로 이동하고 자녀를 낳는다면 좀 더 경제적 퇴보로 인한 출혈이 줄어들겠지만 이런 생각이 또 든다.


"돈이 없어서 서울에서 밀려나는 참담함을 느끼고 싶지 않다."


초등임용고시에서 서울에 입성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그 어려운 장벽을 뚫어낸 와이프의 노력을 봐서라도 그러고 싶진 않다.

사실 그건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향후 주택을 구매하게 되면 상승을 떠나서 가격방어 측면에서도 가장 전도유망한 것이 서울아파트아니던가..


미루고 미뤄왔는데 이제는 결정을 해야할 때다. 신이시여 왜 신은 나에게 유부단함과 가난한 가정환경을 주셨나요? ^^;;  나의 유부단의 시작은 첫사랑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야하지만..


오늘은 항상 내 머릿 속을 떠나지 않는 고민에 대해 이렇게 브런치로 옮겨 적으면 생각이 정리가 되고 후련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착잡하기만 하다. 참으로 어려운 난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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