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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 Jung Jun 14. 2023

 [에세이] 찰흙

200원짜리 준비물.

 찰흙이 미술수업 준비물이었다. 어머니는 강둑에서 찰흙과 비슷한 흙을 찾아 구겨진 검정 비닐봉지에 양껏 담아 오셨다. 다음 날 아들은 학교에 숨기듯 가져온 그 봉지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미술시간이 됐고, 매를 맞았다.


 어머니는 월급이 제때에 나오지 않는 인쇄공장에서 일하셨다. 두껍게 쌓인 수천 장의 종이를 두부처럼 자르는 기계와, 수백 장의 종이도 가느다란 철사로 꿰뚫는 기계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그곳은 금속 부딪히는 소리, 전동기에 걸려 도는 기름발린 체인과 고무벨트가 날카로운 바람 소리를 내며 하루 종일 돌아가는 공장이다. 출판사라는 간판은 멀리서 보기에 언뜻 교과서의 고향처럼 멋져 보였지만, 실상 그곳은 배움의 기회가 적었던 엄마들의 전쟁터였다. 그곳에서 내 어머니는 제 때에 퇴근하신 일이 드물었다. 미술 수업이 있기 하루 전의 저녁, 시간이 늦은 줄도 모르고 누나들과 좁은 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텔레비전을 보던 중에, 신경을 긁는 쇳소리를 내며 열리는 문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어머니가 오신 모양이다. 그녀가 방문을 젖혀 열자 삼 남매는 어머니의 모습 뒤로 보이는 하늘이 어두워졌음을 알아차린다. 찰흙을 살 돈을 달라는 아들의 말에, 어머니는 기다리라 말하고는 걸음을 돌려 문밖을 나섰다. 한참 뒤 검정 봉지를 들고 돌아오신 어머니께, 아들은 몇 번이고 감사하다 말했다.

 봉지 겉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손등, 무르팍과 손톱에 묻은 흙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고, 금호강 강둑에서 찰흙보다 더 좋은 황토를 찾았다며 말씀하시는 그 얼굴에서 뿌듯함이 보였기 때문이고, 그동안 사 먹었던 과자로 인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준비물이 마련됐지만, 아들은 어머니와 달리 다행스럽지가 않았다. 자랑스럽기는커녕 부끄러웠다. 잠드는 순간까지 내일을 걱정했다. 아이들의 놀림과 교사의 매질 중 하나를 고르느라 3학년 초등학생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매질은 스스로의 선택이었지만 손바닥은 각오했던 것보다 아팠고, 한참을 울었다. 아이들 몇은 그 모습을 보고 순수한 얼굴로 소리 내 웃었다. 조금씩 얻어 만든 찰흙으로 빚은 앙상한 코끼리는 며칠 가지 않아 금이 가고, 이내 부서졌다. 황토를 버렸던 쓰레기 통에 코끼리도 뒤따라 들어갔다.


 아직도 나는 어머니를 뵐 때면 그때의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어렸던 나의 자조적 반성임과 동시에, 지금의 나 보다 어렸던 당시의 어머니에 대한 존경을 담은 기억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소녀처럼 부끄러워하시고, 나는 더욱 어른스러운 척 자랑스러워한다. 나의 글쓰기가 멋진 코끼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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