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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 Jung May 07. 2024

자살은 합법이다.

쓰기 싫었던 이야기.

 ⌈너, 그거 알아? 자살은 합법이야. 심지어 실패하더라도, 여전히 합법이야.⌋



 둘 중 키가 큰 남자의 말에 키가 작은 남자가 피식 웃으며 되묻는다.

 ⌈취했냐?⌋

 ⌈조금은. 많이는 아니고.⌋

 ⌈무슨 소리야, 뜬금없이 자살이 합법이네 어쩌네 하는 이야기는?⌋

 ⌈그냥 재밌잖아. 재밌더라고, 법이. 자살은 불법이 아니래. 그러니까, 합법이라는 거지.⌋

 ⌈궁금한 것도 많다. 그것도 공부해서 알아봤냐?⌋

 ⌈어. 그렇지, 뭐. 한잔하자.⌋


 연신 빗방울이 부딪히는 창밖으로 회전 로터리를 돌고 있는 자동차들이 내려다 보이는 건물 2층의 한 선술집 가장자리에서, 이미 비어있는 소주병 네 개와 맥주병 하나를 나란히 세워두고 스물아홉 살 먹은 두 남자가 마주 보고 앉아있다. 둘은 서로 잔을 부딪히지 않고 건배하는 시늉조차 대충 하고는 소주잔의 내용물을 입속으로 털어 넣는다.


 ⌈사장님, 여기 소주 하나요.⌋

 ⌈요새 많이 힘드냐?⌋

 ⌈어, 힘들어.⌋

 ⌈암만 힘들어도 맨날 괜찮다던 놈이 힘이 든다-라. 그래서, 힘이 들어서 자살이 합법인지까지 알아봤고?⌋

 ⌈어. 법조항은 말이 어려워서 그렇지, 찾기는 쉽잖아. 공개자료니까. 야, 안주도 좀 먹어.⌋

 ⌈그래, 이 미친 새끼야. 야, 이 집 음식 잘하네. 뭐, 힘내라. 그런데 나한테는 꼭 그 말이 곧 죽겠다는 말로 들리네. 오랜만에 만나서 한다는 말이 그거냐. 에이 미친 새끼. 야, 힘내자. 우리 힘내자.⌋

 ⌈죽겠다는 말은 아니고. 죽으려고 했었는데, 진짜 신기하게 안 죽었지. 야, 잔 들어.⌋

 ⌈잔이나 채워주고 들라 그래라, 새끼야. 지도 잔 비었으면서.⌋

 ⌈내가 마시라고 했냐, 잔을 들라고 했지. 술 따라 줄게.⌋

 ⌈아 씨, 나도 취했나 보다.⌋

 ⌈아니, 너만 취했지.⌋


 잔을 채운다. 큰 남자가 맞은편 친구에게 술을 따르고, 친구는 술병을 낚아채듯 가져가 맞은편에 앉은 친구에게 술을 따른다. 큰 남자는 소심하고 말이 바른 반면에, 작은 남자는 호탕하고 말이 거칠다. 둘은 어딘가 모르게 닮은 구석이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묘하게 형제같이 닮은 둘이다.


 ⌈이 와중에 오랜만에 너랑 마시니까 술이 달다. 미친 새끼, 그래서 왜 죽으려고 했는데?⌋

 ⌈그러는 편이 나을 것 같더라고. 더 살고 싶은 생각도 안 들고. 뭐, 의욕이 없더라.⌋

 ⌈이 새끼 진짜 죽으려고 했나 보네.⌋

 ⌈그렇대도.⌋

 ⌈자랑이다.⌋

 ⌈자랑은 아니고.⌋

 ⌈지금은 해결됐고?⌋

 ⌈아니. 그래도 걱정 마. 다시 시도할 생각은 없어.⌋

 ⌈돈 때문이야? 그러니까 내 말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인 거냐고.⌋

 ⌈돈 때문이라기보다는……. 글쎄. 애초에 나한테 돈이 많았으면 생기지 않았을 문제이기는 하지. 돈 때문이 맞네, 생각해 보니까. 그런데, 지금은 돈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더는 안 물을게.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거면 다음에라도 말해라. 월급쟁이끼리 뭐 대단한 도움이야 되겠냐만. 아무튼. 그래, 자살은 왜 합법인 건데?⌋

 ⌈몰라. 자살한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 처벌을 못하잖아.⌋

 ⌈그러면 실패한 경우에는?⌋

 ⌈죽으려던 사람을 굳이 잡아다 감옥에 가두기야 하겠어? 벌금을 물리겠어? 더 죽고 싶어 지게?⌋

 ⌈하긴, 그렇긴 하다. 잔 채우자.⌋


 대학생들이 술집의 의자와 탁자에 저마다 자리하고, 요란하게 웃고 떠드는 젊음의 무모함과 혈기가 공기를 가득 채우는데도 둘의 주변은 진공상태가 되기라도 한 듯 오롯이 적막하다. 둘은 말없이 잔을 비우고, 안주를 씹고, 또다시 잔을 채운다. 취기가 올라 상기된 둘의 얼굴은 에어컨의 냉기로도 가라앉지 않고, 주변의 소음도 그들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죽으려고 했댔잖아. 그래, 뭐 어떻게 했었는데?⌋

 ⌈더는 안 묻는다며.⌋

 ⌈이유를 안 묻겠다는 말이었지. 어떻게 죽으려고 했기에 살아났는지, 지금은 그걸 묻는 거고. 대답 안 해도 돼, 미친놈아.⌋


 키 작은 남자의 짜증 섞인 걱정에 키 큰 남자는 머뭇거리다가 소주로 입술을 조금 적시더니 잔을 든 채로 대답한다.


 ⌈집에서. 집 안에서 했어. 온수보일러를 켜고, 보일러가 낡아서 물이 데워지는데 오래 걸려. 아무튼, 흰색 셔츠에 검은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은 채로 화장실에 들어갔어. 샤워기 헤드를 분리하고 호스만 남겼어. 물 온도를 적당히 맞추고, 호스를 목에 감고 매듭을 지었지. 물은 약하게 틀었어. 세게 틀면 온수가 나오다 말고 찬물로 바뀌거든.⌋

 그는 말을 멈추고 손에 든 소주잔을 마저 비우고 탁자에 내려놓는다. 맞은편의 친구는 말없이 잔을 채워주고, 키 큰 남자가 말을 잇는다.


 ⌈바닥에 앉은 채로 적당히 몸을 기울이니까 정맥이 눌리는 게 느껴지더라. 숨이 막히지는 않고, 딱 정맥만 눌리는 느낌. 제대로지. 너도 알 거야. 고등학교에서 유도 배울 때, 조르기 연습할 때의 그 느낌. 그렇게 기절했어. 다행히도 경직되는 바람에 어딜 부딪히거나 하지는 않은 것 같아. 그냥 축 늘어졌겠지.

 ⌈그러면……. 살아날 수가 없는데?⌋

 ⌈아무래도 그렇지?⌋

 ⌈그렇지, 아무래도.⌋


 무겁게 내려앉은 분위기와 정적이 불편했던지, 키 큰 남자가 주머니에서 담뱃갑과 라이터를 꺼내 젓가락 옆에 던지듯 올려놓는다. 키 작은 남자 또한 주머니에서 담뱃갑과 라이터를 꺼내 들고, 둘은 일제히 주변을 둘러본다.

 ⌈아무도 안 피우는 것 같지?⌋

 ⌈그런 것 같다. 나가자.⌋


 안주와 술병, 수저와 앞접시 사이에 휴대전화를 대충 올려두고 자리를 일어선 둘은, 종업원에게 손에 든 담배를 보여주며 누구도 번거롭게 계산대로 올 필요가 없음을 알린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키 큰 남자가 앞장서 내려간다.

 ⌈야, 여기 천장이 낮다. 머리 조심해라.⌋

 ⌈나쁜 새끼.⌋

 ⌈미안. 너한텐 괜찮겠다. 미안.⌋

 ⌈이 배려심 많은 개새끼야…….⌋


 빗방울이 굵어 좁은 처마 밑에 어깨를 마주한 둘이 담뱃불을 붙인다. 습한 공기 탓에 입과 코로 뿜어져 나오는 담배 연기가 유독 짙다.


 ⌈어떻게 살아났냐?⌋

 ⌈몰라.⌋

 ⌈미친 새끼. 왜 몰라?⌋

 ⌈눈이 떠지더라. 그래서 못 죽었구나-하고 알았지.⌋

 ⌈걔가 호스를 풀어준 건 아니고?⌋

 ⌈내가 화장실에서 나올 때, 화장실 문은 여전히 잠겨있더라.⌋

 ⌈휴……. 이 새끼 제대로 마음먹고……. 아주 작정을 했었나 보네.⌋

 ⌈그렇대도.⌋


 새빨간 담뱃불의 열기는 이따금 담뱃대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우습게 말려버리고, 기다릴 틈 없이 새까맣게 태워버린다. 엄지와 검지로 담배의 끄트머리를 꼬집어 들고 필터 가까이까지 담배를 태운 둘은 업소용 식용유 통을 잘라서 만든 쓰레기통에 꽁초를 던진다. 빗물이 차오르고 있는 쓰레기통에 꽁초가 닿으며 남아있던 불씨가 차게 식고, 다른 이들이 태우고 버린 시체들 사이에 떠오른다.


 ⌈신을 믿냐?⌋

 ⌈아니. 알잖아, 그런 거 안 믿는 거. 너는?⌋

 ⌈마찬가지지. 그럼 도대체 네가 어떻게 살아났을까……. 다행이기는 하다만, 희한하단 말이지.⌋

 ⌈내 생각에는 보일러가 살려준 것 같아. 온수가 계속 흐르면서 호스가 느슨해진 거지.⌋

 ⌈그럴듯하네.⌋

 ⌈그럴듯하지.⌋


 둘의 뒤로 연인 한 쌍이 계단을 내려온다. 거하게 취했지만 정신을 차리려고 눈에 힘을 준 남자가 뒤뚱거리며 앞장서고, 보다 더 취한 여자가 그 남자의 손을 쥐고 행복한 얼굴로 뒤따른다. 막 담배를 끈 두 남자는 연인이 지나가도록 길을 튼다. 키 작은 남자가 말한다.


 ⌈내일……. 아니, 오늘이네. 오늘 출근하냐?⌋

 ⌈못 죽었으니까 출근해야지.⌋

 ⌈말이라도 좀, 새끼야……. 뭐, 그만 마실까?⌋

 ⌈그게 좋겠지. 너도 집까지 가려면 힘들 거고. 너는 잠도 못 자고 출근하겠네.⌋

 ⌈그게 뭐 중요하냐. 그래, 일단 올라가서 계산하자. 물건도 챙기고.⌋


 내려올 때와 같이 계단을 오를 때에도 키 큰 남자가 앞장선다. 둘이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새 손님을 맞이하는 인사를 건네던 종업원이 두 남자의 얼굴을 알아보고서는 말을 멈추고 싱긋 웃으며 목례한다. 반사적으로 둘도 맹한 얼굴로 웃어 보이지만 종업원은 이미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둘은 의자에 걸어둔 외투를 걸치고 휴대전화를 집어든다. 먼저 권하는 사람도 없이 둘은 일어선채로 잔에 남은 소주를 들어 입속으로 쫓기듯 털어 넣는다. 키 큰 남자가 지갑을 꺼내고, 작은 남자가 말린다. 키 큰 남자는 더 나서지 않고 지갑을 넣는다.


 ⌈오늘은 내가 샀으니까 다음에 네가 좋은 거 사라.⌋

 ⌈그러지, 뭐. 뭐든지.⌋

 ⌈야. 불러줘서 고맙고, 말해줘서 고맙고, 살아줘서 고맙다.⌋

 ⌈실수로 살게 된 건데 뭐.⌋

 ⌈죽지 마라. 죽지 말라고.⌋

 ⌈이젠 그러려고.⌋


 키 작은 남자가 올라탄 택시가 빗속으로 멀어지는 모습을 키 큰 남자는 한참 동안 비를 맞으며 지켜본다. 되돌아가기 두려운 집으로 향하는 길에, 그는 편의점에 들러 담배 한 갑과 숙취해소제, 뜻밖이게도 눈에 들어온 샤워기 세트를 집어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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