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직장에 처음 입사한 때는 2012년이었다. 굳이 "처음"이라는 말을 덧붙인 이유는 2018년에 퇴사했다가 2023년에 재입사했기 때문이다. 이 제조업 기반 프랑스계 기업의 한국지사는 천안에 본을 두고 있지만, 여느 외국계 기업과 마찬가지로 서울에도 사업소가 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곳은 서초동의 전력 사업부이다. 새로 맡은 직무는 퇴사할 때와 다소 달라졌지만, 같은 사업부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만족했다.
지난 11월, 그룹사는 아시아 지역에서 최근 1년 사이에 입사한 직원들을 중국 쑤저우로 불러 모아 교육을 목적으로 한 행사를 열었다. 우리말로 바꿔보자면 이른바 "신규 입사자 행사"이다. 사업부와 상관없이, 최근 이 기업의 이름을 건 아시아 각 나라의 지사로 입사한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했는데, 뜻밖이게 나도 포함됐다. 가기 싫었다. 나는 부끄럽게도, 평범한 경력직 입사자가 아니잖은가. 2012년부터 2018년까지 근무를 했던 내가, 그것도 돈을 좇아 이직했다가 되돌아온 내가 그런 성격의 행사에 어울린다는 생각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심지어 민폐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게다가 중국으로의 출장이라니, 나는 한숨이 나왔다.
흔히 사회 초년생이라면 국외출장이라는 일에 낭만을 품거나, 자랑스러워하기도 한다. 나 역시 과거에는 그랬다. 가족들 앞에 의기양양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시기는 생각보다 빨리 지나가버린다. 국외출장 역시나 결국은 일을 하러 가는 것이고, 좀처럼 개인을 위한 시간 따위는 주어지지 않는다. 출장동안에도 한국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를이메일로든 메신저로든 처리해야 함은 물론이다. 신입사원도 한두 해가 지나 직장에서 한 사람의 몫을 해낼 수 있게 되면, 국외출장은 그저 일의 한 종류가 될 뿐이다. 좋고 싫고를 떠나서 그저 익숙해진다. 내게 이번 출장이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말 그대로 교육 자체가 목적인 출장이었다는 점 뿐이었다.
요즘 중국출장을 위해서는 번거로운 일 몇 가지를 해내야만 한다. 먼저, 비자신청서에 넣을 증명사진을 찍어야 한다. 과거 여권을 만들 때 남겨뒀던 사진을 비자신청에 사용하게 되면 십중팔구 반려된다. 3개월 이 전에 중국을 방문할 때 사용했던 사진도 쓸 수 없다. 여권의 발행 또는 재발행 날짜가 비자 신청일 기준 3개월보다 오래된 경우, 비자신청용 사진은 여권사진과 달라야 한다. 무엇보다, 웹사이트를 통해 비자신청서를 작성하는 일이 번거롭다. 스스로의 연대기를 작성하듯 고등학교 입학 이후의 모든 학력을 날짜단위로 기입해야 함은 물론, 현재와 과거 몸담았던 기업의 입퇴사 이력에는 그 기업의 관리자 정보까지 기입해야 한다. 온 가족의 인적사항까지도 필수사항이다. 목적이 출장인 만큼, 중국지사의 인사부 담당자에게 형식에 맞는 초대장도 여러 번 요청해야 했다. 그나마 회사와 계약된 여행사가 있어서 몇 가지 번거로움을 피할 수는 있었지만, 역시 중국으로의 출장이 번거로운 것은 여전한 사실이다.
어찌어찌 여권에 중국 단수비자 스티커를 붙이고, 항공권과 호텔 따위를 예약하고, 나를 포함한한국지사 입사자들은 중국 출장길에 올랐다. 그중에는 사회로 첫걸음을 내딛는 사람도 있었고, 길고 짧은 경력직, 관리자급의 경력직은 물론, 나처럼 퇴사했다가 재입사를 한 경우도 있었다. 화요일에 출국을 하고, 금요일에 귀국하기까지 나는 백 명이 조금 안 되는 각 나라의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강의를 듣고, 그룹 과제를 하고, 발표를 하면서 교육 일정을 무던히 소화했다. 어차피, 내가 모르는 새로운 내용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이미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된 내부망과 관련된 퀴즈에서 내가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예전의 내부망 이름을 답하는 바람에 문제를 낸 인사부 사장, 에스텔(가명) 씨가 놀라기도 했다. 나는 우연이었다고 대충 둘러댔고,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알고 보니 신규 입사자를 대상으로 한 이 행사는 대륙별로 매년 열리는 행사로 자리를 잡은 모양이었는데, 교육 세션별로 강단 마이크 앞에 선 사람들이 얼마나 높은 직책을 맡고 있는지를 알아챈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 자리에 모인 대부분의 신규 입사자들은 아마도 퇴사할 때까지 두 번 다시 얼굴도 마주할 리가 없는 그룹 회장, 사업부별 사장, 부문별 총괄자 등이 행사의 교육을 맡았기 때문이었다.
수요일 이른 밤, 나는 호텔 출입구 밖의 흡연장소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몇몇의 한국인 동료들과 저녁에 현지의 아담한 식당을 찾아 얼큰하게 술을 마시고, 널찍한 호텔방에서 한가로이 책을 읽다가 바람을 쐬러 나온 터였다. 멀찌감치, 나는 흡연장소에서 호텔 출입구를 향해 선채 건물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별생각 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출입구를 지키고선 젊은 호텔 직원 둘이 손님이 드나들 때마다 상냥하게 문을 열어줬다. 그들은 문을 나서거나 들어설 때 매번 짧게 목례를 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이 재밌었던지, 둘이 마주 서서 서로에게 고개를 까딱까딱하고 흉내 내며 해맑게 웃었다. 그 둘을 보며 나는 절로 미소가 나왔다. 그렇게 담배연기를 뿜고 있던 중, 호텔 문 안쪽에서 낮에 봤던 그룹 회장과 타 사업부 사장, 그룹사 인사부 대표 등 중역들이 나오는 모습을 봤다. 휘황한 출입구와 달리 흡연장은 어두웠으므로 내가 그들을 보는 것과는 달리 그들은 내가 서 있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그 무리는 호텔에서 운영하는 바(Bar)로 곧장 들어갔는데, 그중 한 사람이 흡연장으로 다가왔다. 마누엘(가명) 씨로, 인사조직의 중역이었다. 큰 키와 우람한 체격, 그리고 빛을 잘 반사하는 그의 두상 덕분에 나는 그를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가 몇 걸음 앞에서 나를 알아보고는 피곤을 애써 숨기며 담배 한 개비를 청했다. 에스텔 씨가 담배냄새를 싫어해서 하루 종일 참았다고 그는 말했다. 결국 그는 나와 함께 버지니아 테이스트 슈퍼슬림 레드를 연달아 몇 개비 태웠다.
뜻밖이게도 그는 내게 회장이 들어간 바에 동석하자고 권유했다. 처음에는 예의상 권하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손사래 치며 거절했는데, 결코 어려운 자리가 아니라며 나를 붙잡았다. 아무리 중역이라고 하나, 그 역시 회장과 함께하는 술자리에서는 지원병력이 절실했던 모양이었다. 결코 사라질 리 없는 담배냄새를 지우려 그와 나는 손으로 외투를 여러 번 털어내고 바 안으로 들어갔다. 은은한 조명과 달큼한 술냄새가 나는 바의 내부는 매우 조용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은 주말이나 휴일도 아니었거니와 인근에는 값이 저렴한 식당이나 술집이 꽤나 있었기 때문이다. 테이블의 구석진 상석에는 회장이 앉아있고, 그 주변으로 사업부 사장 등의 중역이 앉아있었다. 다들 칵테일을 하나씩 주문하고, 나는 위스키 사워를 주문했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사람들이 앉은자리가 몇 번씩 바뀌었다. 네 번째 위스키 사워의 예쁜 잔이 내 앞에 놓일 즈음, 내 옆에는 에스텔 씨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낮에 있었던 퀴즈에서 신규 입사자의 입에서 나올 리 없는 대답을 한 나를 기억하고는 호기심이 발동했던 차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내가 별다른 취미는 없고 그저 남는 시간에 글을 읽거나 쓰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자 그녀는 거의 추임새에 가까운 질문을 던졌다. 프랑스의 소설도 읽어보았느냐고, 그녀가 물었다. 나는 술잔을 내려놓고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 한 장을 그녀에게 보여줬다. 서울의 한 칸짜리 자취방 창틀에 가지런히 모아둔 책을 찍어둔 것이었다. 한글로 쓰인 책의 제목을 알아볼 리 없는 그녀에게 나는 설명을 보탰다. 올해 목표 중의 하나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완독이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끝냈다고 내가 말했다. 그녀는 놀란 듯이 내 손에 들린 스마트폰 속 사진과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손에 든 이름 모를 분홍색의 칵테일을 단숨에 들이켜고 말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그녀의 친구와 친하다는 말이었다. 생각해 보면, 프랑스계 기업이다 보니 상당수의 중역과 임원은 프랑스인이고, 파리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 파리는 서울의 1/6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도시인만큼, 인맥의 가지를 뻗기에는 제격이기도 하다.
그날 밤 바에서, 그녀는 내게 업무용 메신저로 예의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나는 큰 기대 없이 그렇게 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조금 더 지난 12월 20일, 나는 뜻밖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