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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 Jung Aug 05. 2023

우생학은 오답이다.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성격장애)를 품은 사회

사이코패스들을 모조리 잡아들이면 될 것 아닌가?

 이 글은 혹자로부터 들은  질문에, 내가 「그래서는 안된다.」라고 대답하면서 시작했다. 그의 접근방식이 내가 그간 잊고 지냈던 우생학(Eugenics)이라는 개념을 끄집어내게 한 것이다. 나는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한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우생학이라는 말을 처음 접했다. 호기심 많던 사춘기의 나는 이 개념을 소화하기 위해 한동안 몽상에 빠지고는 했다. 과거 나치독일의 근간이자, 히틀러가 총리에 오르기 수년 전부터 심취했던 이 개념은, 현실화에 따르는 피해를 살피지 않을 경우 뭇사람들이 그릇된 가치관을 품게 만들기에 충분한 힘을 가졌다. 분명히 밝히건대, 나는 우생학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를 필두로 삼은 것은, 사이코패스의 흉악범죄를 사전에 방지하려는 수단으로 다시금 우생학이 각광받는 일이 없도록 주장하기 위함이다.

[우생학]
유전 법칙을 응용해서 인간 종족의 개선을 연구하는 학문. 유전학의 한 분야로, 1883년에 영국의 유전학자 골턴이 제창하였다. 인류의 유전적 소질을 향상시키고 감퇴시키는 사회적 요인을 연구하여 유전적 소질의 개선을 꾀한다.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우생학은 대부분의 동식물에 적용된다. 병해에 강한 옥수수나 더 매운맛을 내는 고추의 품종 개발도 우생학의 범주에 속하며, 우수한 육질의 고기와 성장이 빠른 소나 돼지의 품종 개량도 마찬가지이다. 우생학의 문제점은 그 대상이 인간을 향할 때 비로소 실감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피할 수 없는 극단적인 차별주의라는 결과 때문이다.

 병해에 약한 옥수수와 매운맛이 덜한 고추, 성장이 느리거나 맛이 못한 소와 돼지는 우생학의 원리에 따라 역사에서 사라진다. 결과만 따졌을 때, 이는 다윈주의와 그 맥을 같이 한다. 일련의 연구에는 필연적으로 기준이 제시되는데, 옥수수의 경우 특정 병해에 인위적으로 노출하여 저항력이 우수한 인자를 추린다. 고추의 경우 스코빌 단위(SHU)의 목표치가 설정되기도 한다. 가축의 경우 일정 무게에 다다를 때까지 소요되는 시간과 사료의 비용, 지방과 단백질의 비율 따위가 기준으로 설정된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뛰어난 유전자 개체를 늘리고 유전적 장애와 질환 등의 열등한 유전자의 대물림을 억제하여 인류의 수준을 향상하고자 할 때, 우리는 자문해야 한다.

무엇을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생학이라는 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선술 한 바와 같이 기준의 설정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지적 수준, 의식 수준, 체격조건, 운동능력, 인종, 머리숱, 유전질환 따위의 기준을 정함과 동시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류가 미래의 제거대상이 된다. 기존에 우생학을 지지하던 사람이라도 스스로가 제거대상이 되면 자신이 틀렸음을 인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류에 대한 우생학의 실천이라는 극단적 조치가 취해졌을 때, 후회는 이미 늦다. 우생학의 접근을 오늘날 사회 일반의 것에서부터 과거의 극단적 예시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이해가 쉽다.

당신은 스스로가 지적으로 우수하고, 깨어있는 의식과 건강한 육체의 소유자이며, 후대에 물려줄 유전질환이 없는 인간이라 자부할 수 있는가? 당신은 상위 몇 % 인가?


1. 순종, 품종 반려동물에 대한 선호.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사람, 혹은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품종을 말하는 행위를 예로 들 수 있다. 스스로의 반려동물이 무슨 종인지 말하거나, 또는 입양할 때 희망 품종을 밝히는 것이 포함된다.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예시일 뿐이지만, 동물을 가족과 같이 여기는 이들의 의식 수준 함양에 있어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자녀의 입양에 있어 특정 인종을 선호한다고 밝히는 경우와 그 결이 같기 때문이다. 다음 항목부터는 사람을 대상으로 다룬다.


2. 장애 태아의 임신중절.

 병원의 정기검사에서 태아의 장애진단을 받은 부녀가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받는 경우가 있다.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서 모자보건법 14조의 조항은 법적 효력이 없다. 즉,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을 뿐,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받는 것은 위법이 아니다. 이렇듯 우리 사회는 자연스럽게, 우생학을 이해하고 있다. 이는 마치 야생동물이 허약하게 태어난 새끼를 어미가 삼키거나 죽이는 것과 같은 이치와 같기 때문에, 이해에 있어 불편함이 크지 않을 수 있다.

 현재 임신 중 정기검사에서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성격장애)를 진단할 합리적인 방법은 없다.


3. 장애인 임산부의 임신중절과 강제 불임.

 피임에 대한 이해의 부족 등으로 인해 임신에 이른 여성의 부모 주도하에 이루어지는 임신중절의 경우이다. 아직까지도 대한민국 법령에서 확인할 수 있는 모자보건법 14조에서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를 명시하고 있는데,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優生學的)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라는 항목이 그중 첫 번째이다. 이제는 무색한 법령이지만, 과거 우생학이 지녔던 파급력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나아가서는, 장애인의 부모 주도하에 이루어지는 불임수술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부터는 임산부 스스로의 결정이 아닐 수 있다는 가정으로 인해 이해에 불편함이 다소 커진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가장 잘 알려진 강제불임 사례는 나치 독일이다. 강제불임 정책이 홀로코스트에 선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0세기에 강제불임을 통한 우생학 정책을 실시한 나라는 독일뿐만이 아니다. 미국을 선봉으로, 캐나다, 스웨덴, 일본, 중국,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페루가 실제 강제불임 정책을 시행한 바 있다.


4. 유전적 기질을 넘어선 차별주의 : 민족, 종교, 국적, 인종

 본 항목부터는 인간에 대한 우생학적 접근이 더 이상 의도된 불임이나 인공임신중절의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 즉, 세상에 태어나 숨 쉬는 인간을 다룬다. 이는 생육이나 분양을 기대할 수 없어 반려동물을 살처분하는 것과 같은 행위가 인간을 향하는 것으로, 살인을 뜻한다. 이 살인이 조직적으로 행해지면 대량학살이 된다. 불임수술과 임신중절을 도구로 한 우생학은 여러 세대에 걸쳐 장기간이 소요되므로, 단기간에 결과를 보기 위한 극단주의적 조치란 결국 제노사이드를 야기하는 것이다. 과거 나치독일의 홀로코스트(1941-1945)는 단연 가장 잘 알려진 제노사이드로, 그 근간에는 우생학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아르메니아 대량 학살(1915-1923), 르완다 대학살(1994), 보디아 집단학살(1975-1979), 보스니아 대량 학살(1992-1995) 등과 같이 결코 정당화할 수 없는 학살일 뿐이었다.

 이때, 혹자는 사이코패스를 유일한 제거대상으로 삼는다면 소기의 우생학적 성과는 낼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전체 인구 중 약 4%, 그러니까 25명 중 1명 꼴로 존재하는 사이코패스의 성향의 인물을 색출하고 제거하는 형식으로 중범죄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사이코패스의 성격을 가진 사람 중 중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또한, 중범죄를 저지르는 상당수의 범죄자들은 사이코패스의 기질을 갖고 있지 않다. 무엇보다도 사이코패스를 모두 색출하고 죽이자는 주장은, 실제 사이코패스에 의한 살인범죄보다 더욱 끔찍한 결과를 야기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더 이상 한국은 안전하지 않다.

 외국으로 여행이나 출장을 다녀본 사람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에게 한국은 이상적인 치안국가이다. 총기난사 따위의 사건은 머나먼 외국의 이야기일 뿐이고, 범죄자들은 커녕 경찰에게도 자동권총이나 소총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늦은 시각까지 술을 마실 수 있고, 밤거리를 활보할 때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열 살 난 아이가 스스로 걸어서 학교에 갈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고, 마약에 절어 산송장처럼 배회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고, 곳곳에 위치한 치안용 방범 카메리가 범죄를 감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착각이다.

 총기 난사가 없는 대신, 우리는 불특정다수를 향한 칼부림 사건을 하루가 멀다 하고 접하고 있다. 경찰은 흉악범죄에 발포를 망설이지 않겠다고 발표하지만, 실탄 발포에 대한 민사적 책임을 경찰공무원 개인에게 지우는 것이 현실이다. 망설여지는 권총과, 재장전이 느린 테이저건으로 우리 경찰들은 칼을 든 범죄자를 제압해야 한다. 물론, 경찰은 칼을 들지 못한다. 술에 취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더 이상 낯선 뉴스가 아니다. 술에 취해 잠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 절도와 강도 범죄는 영화의 소재로 쓰일 만큼 흔한 일이 되었다. 한국은 이성을 잃은 주취자를 상대하기 위해 소방공무원과 구급차가 동원되는 나라이다. 한 해에 유아 실종 사건은 2만 건을 넘어섰다. 양념치킨보다 저렴한 매스암페타민이 유통되고, 청소년의 중독을 넘어 고등학생이 유통을 주도하기도 한다. 방범 카메라에 촬영된 흉악범죄의 실제 영상이 메신저로 퍼져나간다.
사이코패스들을 잡아들이지 말라니, 그럼 어쩌자는 것인가?

 이제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아름답고 안전한 나라」라는 과거의 영광을 지키기 위해 손쉽고 빠른 해답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장기적이고도 분명한 계획을 추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이미 「위험하고 불안한 나라」에 살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당장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강제적, 행정적 관리를 논하는 것은 결코 장기적 해결방안이 아니다. 끔찍하지만, 흉기를 든 범죄자가 언제, 어디서라도 나타날 수 있다는 가정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과 기차역에는 항상 안전요원이 배치돼야 한다.

 요즘, 지하철에 역무원이 없다. 자동화에 따라 줄어든 직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과거 지하철에는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항상 눈에 띄었다. 하지만 지금은 역무원을 찾아보기 힘들고, 각종 기계와 전광판이 그들을 대신하고 있다. 범죄자는 더욱 자유로워진다. 사회복무요원이 아니라, 전문 경비요원이 필요하다.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 자동화 이전에는 당연히 존재하던 것이었다.
 우리 사회는 더 나은 수익률을 위해 인건비 보다 저렴한 기계를 도입하고 있다. 작은 소상인부터 대형 프랜차이즈, 지하철이나 기차역에도 수많은 기계가 사람을 대신하고 있다. 기계의 사용법에 익숙지 않은 노인들은 도와줄 직원을 찾아 헤매고, 기계가 사람을 대신한 탓에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헤맨다.
 우리 사회는 기계보다 사람을 필요로 한다.

 교도소 재소자 1명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연 3100만 원이고, 매년 비용은 증가하고 있다. 재소자를 늘리고 세금을 쏟기보다는, 범죄자의 양산을 줄이고 예방하는 일에 쓰이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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