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로리 Nov 16. 2024

슬픔이 배인 탓

부산 영도구 흰여울길

여행자의 시선으로 그곳을 바라보면 그저 아름답다 말하겠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삶이 전혀 아름답지 않을 수 있는데 말이다. 부산 영도는 그곳 사람들에게 섬이라고 불린다고 했다. 부산역에서 508번 버스를 타고 영도대교를 지나오면서도 나는 이곳이 예전에 섬이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흰여울 문화마을에 도착해서 누군가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핸드폰으로 지도를 켜보니 부산의 아래쪽에 작은 혹처럼 붙어있는 곳이 영도였다.


그때부터였다. 그 후로 흰여울길에 사는 사람들의 외로움이 조금씩 보이곤 했는데 이상하리만치 그런 것만 보였다. 아무래도 이곳이 인구소멸 1위라는 말에, ‘노인과 바다’가 흰여울 마을 사람들을 얘기하는 거라는 말에 슬픔이 배인 탓일 게다. 6.25 때 피란민들이 터를 잡아 생긴 좁은 골목과 숨기 좋은 하꼬방은 여행객들이 미로 찾기 게임이라도 하듯 밝은 웃음을 띠며 지나다녔다. 나는 어떤 집 창문에 붙은 ‘목소리 좀 낮추세요’라는 글씨가 머릿속을 지나다녔다. 부탁이나 동의를 구할 수 있는 말에 ‘좀’을 붙여 어지간히 참아왔음을 표현하는 것이 어디에도 의지할 곳 없이 여전히 섬에서 홀로 싸우는 외로운 투쟁 같았다. 옥상이 훤히 내다보이는 곳에는 빨랫줄이 보였다. 빨랫줄에는 축 늘어진 런닝 하나와 색 바랜 트렁크 팬티가 걸려있었다. 저곳엔 할아버지 한 분이 살고 계시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층층이 난 가파르고 폭 좁은 계단은 성인들이 오르내리기에도 아슬아슬해 보였다. 그곳에 살고 있을 누군가를 향해 연민을 느꼈다. 감정은 자꾸만 아까 봤던 늘어진 런닝처럼 축축하고 무거웠다.


나는 어쩌면 사실과 다른 오해를 키우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이곳이 섬이었다 그래서, 끄트머리에 있는 사람들의 불안함을 알아서, 행복해도 불안함에 눈물이 먼저 나오는 사람이라서 반짝이는 윤슬에도 눈이 베일 것 같았다. 동네를 좀 더 걷다가 보게 된 독립서점은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유명한 시인님이 운영하시던 곳이었다. 몇 년 전 겨울, 흰여울길에 혼자 여행 왔을 때 나는 이 서점에서 따뜻한 글루바인을 마시며 외로움을 견뎠다. 그때는 바다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골목을 유유히 걸어 다니며 웃는 사람들은 여전히 여행자뿐이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사람과 사물이 사라진 빈 공간에도 여전히 그곳에서 먹이를 얻어먹던 고양이들은 이곳을 찾아올까? 해질녘의 노을은 아련하게 물들고 있었다.


시간이 한참 지났다. 바다에 정박해 있던 해도 이제는 사라져 버리고 동네는 어두워졌다.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고 가게들도 불빛을 거두었다. 고요가 찾아왔고 이제 이곳에 사는 사람들만 집에 불을 밝힌다. 여행자인 나도 이제 골목을 벗어나 버스정류장으로 발길을 향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래된 건물 하나를 바라본다. 흰여울 문화마을 맞은편에 있는 영선아파트다. 이곳에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보기에는 거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았다. 군데군데 콘크리트와 창문이 뜯기고 철이 부식되어 있는 모습에 내부는 얼마나 더 흉측할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흰여울 문화마을 골목에는 군데군데 켜진 불이 보이지만 이곳은 어둡다. 그럼에도 어떤 창문엔 작은 화분이 보이기도 했으니 누군가는 희망을 품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뜻일까? 분명 앞전에 보았던 하꼬방 보다야 아파트가 나중에 지어진 거라지만 이곳도 많은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음이 눈에 보였다.


아파트 입구 쪽엔 쇠파이프로 계단을 막고 철조망으로 세상과 차단된 채 선명한 노란색 표지판만 우뚝하다. 적나라한 빨강색 글씨로 적혀있는 ‘구조안전 위험시설물 알림’엔 아파트 거주자 또는 거주자 방문 목적 외 출입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있다. 어쩐지 떼어내지 못한 혹처럼 아슬아슬하다. 이곳에 사는 이들이 끝내 생을 마감하고 죽을 때 과연 가족들은 영도를 찾아올까? 어쩌면 이미 외면당했을지도 모르는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 누구에게도 추모받지 못한 이는 세상에 얼마나 또 많을까.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무연고자로 사망하는 사람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가족의 빚을 책임지기 싫어서, 내 살길이 바빠서, 내가 이룬 무언가를 뺏기기 싫어서 우리는 우리에게 달린 혹을 떼어버린다.  


우리가 보는 신문에는 한쪽 귀퉁이에 무연고자들의 장례부고를 게시한다고 했다. 처음 알게 됐다. 세상의 작디작은 슬픔은 언제나 커다란 것들에 묻혀버렸나 보다 생각했다. 영도를 떠난 지금, 부산의 오늘 자 신문에는 어떤 사람의 인적사항과 부고 적혀있을까. 부디 내 시선에 닿았던 슬픔들이 아니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