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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로리 Sep 21. 2022

좋아하는 것을 들키는 것

카메라와 할머니

어릴 적 일이다. 나는 늘 부모님 몰래 무언가를 하는 걸 좋아했는데 그중 하나가 부모님의 비밀 서랍을 열어보는 것이었다. 비밀 서랍은 안방의 장롱 안에 있었다. 내가 일기장을 숨겨놓는 곳이 내 방 책상의 제일 아래 서랍이듯 부모님의 비밀 서랍도 그랬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면 나는 쪼르르 안방으로 들어가 장롱문을 열 준비를 했다. 청실과 홍실로 엮여있는 장롱 열쇠를 구멍에 넣어 비틀면, 삐거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서랍 안에는 중요한 문서들과 폐물들이 있었다. 하지만 어린아이에게 그런 건 전혀 관심거리가 아니다. 물론, 몇 번 엄마의 보석들을 껴보긴 했지만.


내가 장롱문을 자주 열었던 이유는 그곳에 있는 카메라 때문이었다. 묵혀있는 검은색 필름 카메라. 어릴 때 그 카메라를 꺼내 들면 묵직한 바디 때문에 손목이 휘청댔다. 그럼에도 버튼들을 마구 눌러대며 놀았다. 필름이 들어있는지 없는지, 상관없이 사진 찍는 놀이가 재미있었다. 해기 기울기 시작하면 혹여나 부모님이 들어오실까 봐 다시 제자리에 두고 열쇠 문을 잠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 선생님을 따라 친구들과 일본 여행을 가게 될 기회가 생겼는데 엄마는 나에게 처음으로 그 카메라를 빌려줬다. 필름 넣는 법과 감는 법을 배우고, 여행 가기 전 필름을 두둑이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1 롤에 30방 정도 찍혔던 것 같은데 용돈으로 4개 정도 더 샀던 것 같다. 처음 가보는 해외여행에 들떠서 여기저기를 사진으로 남겼다. 작은 뷰파인더로 넓은 세상을 보는 것은 너무 신기했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와 남은 사진은 한 장도 없었다. 사진관에 필름을 맡기고 이틀의 시간을 견뎌왔는데, 필름 롤에는 붉게 물든 뿌연 형체뿐이었다. 사진관 아저씨는 필름 장착을 잘못하거나 카메라 문을 제대로 닫지 않으면 햇빛을 받아 사진을 망치게 된다며 내게 제대로 넣는 법을 알려주셨다.


그 후로 나는 자주 부모님의 비밀 서랍을 열어 카메라를 꺼냈다. 소중한 순간을 다시는 잃고 싶지 않아서다. 사진관 아저씨와는 고등학생 때까지 친하게 지냈다. 아저씨는 내가 증명사진을 찍을 때면 자줏빛 배경지를 뒤에 펼쳐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동네에 춤추는 오빠들을 쫓아다니며 찍어댄 (엄마 아빠는 모르는 비밀) 사진들도 그 아저씨가 인화해주었다. 쫄깃쫄깃한 일탈은 너무 재미있었다. 스무 살이 되기 전 크리스마스에 아빠는 내게 디지털카메라를 사줬다. 처음 가져보는 카메라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늘 몰래하면서도 내 맘을 들키고 살았던 것 같다. 내가 카메라를 좋아하는 걸 언제부터 알고 계셨는지 그건 모른다. 어쩌면 부모님도 내 비밀 서랍을 자주 열어봤을지도. 아무튼 너무 좋았다. 날아갈 것 같았다. 그 후로 사진관에 갈 일은 줄어들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두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친구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예쁜 소품들을 찍고, 혹여 소중한 카메라에 흠집이라도 날까 봐 핑크색 헬로키티 파우치에 늘 넣고 다녔다. 그리고 그런 일들을 여러 번 반복했다. 아빠가 사준 카메라보다 더 성능 좋은 카메라를 아르바이트비를 모아 샀고, 그 후엔 핫핑크색 카메라가 유행이라 또 바꿨다. 콤팩트한 카메라만 쓰다가 사진에 욕심이 생겨서 무거운 DSLR 카메라도 샀다. 지금껏 핸드폰을 바꾼 횟수만큼 카메라도 바꾸며 살아왔다. 여전히 카메라가 좋다. 내가 핑크를 사랑한 만큼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하게 좋다. 내가 찍어 간직할 수 있다는 게 좋다. 길거리의 풍경도, 갖고 싶은 물건도, 좋아하는 사람도. 모두 들키지 않고도 간직할 수 있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에도 나는 장례식장에 카메라를 챙겨갔다. 엄마가 내어준 검은 상복에 흰색 리본을 머리에 달고 할머니에게 인사를 한 후 나는 내 카메라에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담았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는 듯했지만 신경 쓰지 않고 여러 장 찍었다. 사진 속에 할머니는 곱디 고운 연분홍색 저고리에 자줏빛 옷고름을 매고, 꽃분홍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살아생전 할머니가 내 아이의 유모차를 밀어줄 때 흩날리던 벚꽃잎처럼 아름다운 분홍 한복이었다. 할머니의 발인식때, 꺼이꺼이 소리내어 우는 나를 보고 엄마는 팔꿈치로 꾹꾹 치며 우는 소리를 참으라고 했다. 나는 그럴수 없었다. 내 슬픔을 다 표현해야 될 것 같았다. 그래야 내가 좋아했던 할머니를 잘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외장하드 어딘가에 있는 할머니를 꺼내본다. 할머니의 마지막은 어느 봄 날이었고, 몇 년이 지났는지 기억은 흐릿하지만 그래도 어딘가 '봄'의 폴더를 열면 할머니가 나타날거다. 좋아하는 것을 수집하는 사람들을 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수집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은 기억의 한 편, 한 편이 모여 절대 잊지 못할 추억으로 저장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글로 남기면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들킨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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