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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로리 Feb 13. 2023

두 개의 선

#낫워킹맘

가로로 9센티미터. 나의 몸에는 위와 아래를 구분 짓는 두 개의 선이 있다. 그 선은 내게 상처였고 남들에게 보일 수 없는 선이었다.  


첫 번째 생긴 선은 아이의 첫 출산 때 생긴 것이었다. 역아로 줄곧 있던 아이 때문에 제왕절개 수술을 하게 되면서 생긴 선. '엄마'가 되기 위해 필요했던 그 표시선은 몸에 칼을 긋고 피부 가죽을 양쪽으로 벌려 소중한 생명을 꺼내는데 필요했고, 꽁꽁 묶여있는 베드에서 내 몸이 의지와 상관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만들어졌다. 알몸에 닿는 차가운 메스와 공기들은 불안과 불쾌가 동시에 느껴졌던 전혀 거룩해 보이지 않는 출산과정 중 하나였다. 그 후 배꼽 밑에 생긴 선은 두꺼운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듯 보여 나의 여성성까지 같이 앗아간 것 같았다. 


두 번째 생긴 선은 둘째 아이를 똑같은 과정으로 꺼낸 뒤 2년 정도 후에 생겼다. 엄마가 돼보면 안다. 왜 여자의 몸은 아이를 낳은 후 만신창이로 망가져가는지. 나는 육아와 가사에 신경 쓰느라 내 몸을 잘 보살피지 못했다. 건강검진을 계속 뒤로 미루는 동안 내 몸속에서는 작은 덩어리가 자라고 있었다. 내 몸을 내가 아끼고 사랑하지 않을 때, 덜컥 갑상선암은 찾아왔다. 암 중에서는 착한 암이라고들 하지만 '암'이라는 말을 듣고 나면 그 기분은 생각보다 처참히 아래로, 아래로 끌려간다. 




제일 밑바닥으로 치닫았을 때는 암세포를 추출하는 조직검사를 받을 때였다. 말 그대로 독박 육아의 나날이던 그때, 첫째 아이는 유치원에 보내 놓고 둘째 아이를 아기띠로 들쳐 안고 병원으로 향했던 기억이 난다. 그날은 내 생일날이기도 했다. 예전에는 생일이면 축하와 선물, 파티로 이어지던 행복한 시간이 분명 존재했었는데 가족이 늘어난 만큼 나는 친구들도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한 채였다. 존재 자체를 부정당한 듯 축하 연락은 받지도 못한 채 선물가방이 아닌 기저귀 가방을 손에 꽉 움켜쥐고 나는 외롭게 대기실에 앉아있었다. 


베드에 누워 기다란 장침을 목 속에 넣고 세포를 추출하는 순간, 조금의 미동도 있어서는 안 되는 그 순간에 나는 결국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검사를 받는 와중에도 옆 베드에 나란히 누워있는 15개월 둘째 아이를 신경 써야 해서 그랬을까? 아니면 엄마의 아픔 따위는 알지 못하고 간호사가 준 처음 맛보는 달콤한 막대사탕에 취해 방실방실 웃어대는 얼굴이 상반된 내 모습과 교차되서였을까? 혼자가 아니었지만 혼자인 기분이 들었다. 그제야 직장에서 잠깐의 시간도 못 내주었던 남편이 미웠다. 줄기차게 혼자 하던 일들이었다.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는 것, 돈을 관리하는 것, 집안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 아이의 교육을 신경 쓰는 것. 그 모든 것이 내가 생각했던 엄마이자 아내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책임감 아래 깔려있던 '나'라는 존재가 죽기 직전의 지렁이처럼 꿈틀댔다. 그 무엇도 존재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후에 갑상선 한쪽을 들어내는 수술을 하게 되면서 우리 가족은 많은 것을 느꼈다. '존재'에 대한 고마움과 '엄마'라는 소중함과 '아내'에 대한 연민이 묵직하게 서로의 마음에 굵은 선으로 새겨진 듯했다. 동일한 길이의 두 자국이었지만, 출산 때 겪은 처음의 선을 나 혼자 감당했다면, 암수술로 생긴 두 번째 선은 결국 우리 가족 모두에게 상처였고, 감당할 몫이 되었다. 선은 상처와 죽음이 될 수도 있었지만 결국 회복과 생명의 선이 되었다. 아이들은 혹여나 엄마가 힘들어할까 봐 나의 컨디션을 항상 살핀다. 남편은 가사와 육아에 많이 동참을 하며 자주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다. 


사랑과 배려로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 이제는 두 선이 몸에 새긴 문신처럼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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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워킹맘 #일하지않는엄마가하고있는일 #엄마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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