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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로리 Feb 13. 2023

종이에 베인 상처가 더 쓰라리더라.

#낫워킹맘

누구나 똑같은 부여받는 하루 24시간 중 어떤 사람들은 36시간이 주어진 것처럼 계획한 일들을 해내며 알차게 살아가기도 한다. 시간을 알차게 쓴다는 것은 빈틈이 없이 쓴다는 것일까? 아니면 뭔가 활용을 잘한다는 말일까?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나의 하루는 오전에 책을 읽고, 집안 살림을 조금 한다. 아침 겸 점심으로 혼자 밥을 차려먹거나 날씨가 좋은 날엔 자전거를 타고 호수공원 한 바퀴를 돈 뒤 근처 카페에 가서 빵과 커피로 요기를 한다. 오후 2시 정도 되면 학교를 마친 아들의 간식을 챙겨주고, 학원 갈 채비를 하여 보낸다. 중간중간 혼자 남은 오후 시간에는 서재로 들어와 노트북을 열고 생각을 짜내어 글을 쓴다. 글을 쓰는 시간은 대중이 없다. 그게 참 난감한 문제다. 어떤 날은 한, 두 시간으로 끝나기도 하고, 어떤 날은 가족들의 저녁을 챙겨주고 난 뒤에도, 그리고 가족들이 하나 둘 잠을 자러 방으로 들어가는 시간에도, 나는 글을 쓰고 있다.  


글을 계속해서 생산해 내는 작업, 그것이 ‘작가’라는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다. 책을 써서 출간까지 이룬 사람들도 거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글을 생산한다. 내가 생각했던 작가의 우아한 로망과는 조금은 다른 구석이 있다.  




"하고 싶은 게 도대체 뭐야? 글을 써서 돈을 벌고 싶은 거야? 아니면 명예로웠으면 좋겠어? 왜 갑자기 그렇게 몸을 축내면서까지 열심히 하는지 모르겠어. 다른 엄마들은 아이 학교 갈 때쯤이 되면 다니던 회사도 관둔다던데, 지금 그 일을 굳이 해야 해? 나중에 해도 되잖아. 그냥 취미로만 잠깐씩 하고 말아.”


지난 주말, 남편이 내게 한 말이다. 물론 내가 힘들어 보여서 안타까워 그랬다고는 해도, 독이 묻은 화살촉에 맞은 것처럼 나는 가슴이 아팠다. 무심코 내뱉는 말에도 진심의 방향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남편은 내가 글을 쓰느라 예전보다 아이들의 공부에 덜 신경 쓰고, 어수선해진 집안꼴이 신경 쓰이는 것이다.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남편은 이해하기 힘든 상황들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것일까? 말 대신 글로 써서 보여주면 진심이 조금은 통할까?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도 전업주부에게는 우선순위가 집안일이라는 것에 조금 비참했다.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쓰는 거야. 써야지만 마음의 덩어리가 풀리는 것이 있어.'




최근에 브런치에 썼던 글 중에 하나가 다음 메인글에 오르면서 엄청난 유입이 생겼다. 하루 조회수가 두 자릿수였던 것이 몇 시간 만에 네 자릿수로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기쁨이란 감정보다는 환희에 가까웠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더욱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곧 혼란에 빠졌다. 조회수가 많아지면 당연히 라이킷이나 구독자 수에도 영향을 끼칠 거라 생각했지만 그것과는 별개였기 때문에. 결국 사람들이 훑어보는 글 중 하나가 된 것이다. 공감을 얻어내거나 실용적이거나 혹은 자극적이지 못했다는 생각. 주변의 사람들은 이런 유입을 통해서 글 쓰는 동안에 자극과 동기부여가 된다고 하지만, 나는 전혀 그러질 못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다 보면 어떤 때에는 째깍째깍 고유하게 흐르는 시간마저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 같고, 어떤 때에는 그 시곗바늘이 날이 선 채 자꾸만 조여 오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옳은 것인지, 글을 쓰면서 전업주부인 내가 당당하게 글을 생산해내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을 할당받을 수 있는 건지, 결국 누군가가 희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것에도 가성비가 필요한 것이라는 뜻인지. 나에게 주어진 24시간 중에서 온전히 쓸 수 있는 시간에 대하여 나는 고민을 한다.


A4용지에 손을 베였다. 그동안 적어놓은 원고들을 살피려고 종이를 넘기려던 잠깐 사이였다. 피가 날 정도도 아니고 그냥 슥, 상처가 난 것뿐인데 칼로 손가락을 도려낸 것처럼 아팠다. 종이에 베인 상처가 원래 더 쓰라린 것인가? 요리를 하다가 칼에 베인 것은 남편이 와서 밴드라도 붙여주는데 오늘 종이에 베인 상처는 웬일인지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더 외롭다. 매일 밤 그러하듯, 글을 쓰다 보면 생각이 많아져서 그러겠지만. 



그녀는 글을 쓴다. 온갖 색깔의 노트에다, 온갖 피로 만들어진 잉크로. 글은 밤에 쓰는데, 그렇게밖에 할 수 없다. 장을 보고, 아이를 씻기고, 아이의 학과 공부를 돌봐준 뒤이다. 그녀는 저녁상을 치운 뒤 같은 식탁에서 글을 쓴다. 밤늦도록 언어 속에 머무른다. 아이가 깜빡 잠이 들거나 놀이에 빠진 사이, 그녀가 먹이는 이들이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된 순간에 글을 쓴다. 이제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그녀 자신이 되어 있는 순간 그녀는 홀로 종이 앞에 앉는다. 영원 앞에 나와 앉은 가난한 여자이다. 수많은 여성들이 얼어붙은 그들의 집에서 그렇게 글을 쓴다. 그들의 은밀한 삶 속에 웅크리고 앉아. 그렇게 쓴 글들은 대부분 출간되지 않는다. 

                                                                          - <작은 파티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낫워킹맘 #일하지않는엄마가하고있는일 #엄마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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