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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로리 Apr 18. 2023

깊이 배어든 맛

결혼하고 부모님이 살고 계신 집에는 자주 내려가질 않는다. 어쩌다 친정집에 내려간다 언질이라도 하게 되면 엄마는 분주하게 집밥을 차려내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엄마의 뒷모습을, 엄마의 쪼그라든 손을 보는 것이 싫었다. 외식 한 번 하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그 한 번이 뭐 그리 몸에 좋지 않은 일이라고. 아무래도 엄마는 한사코 집에서 뚝딱! 차려내는 밥만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오랜만에 들린 엄마의 집에서 익숙한 물건 하나를 발견했다. 윙윙 돌아가는 냉장고 뒤편에 있던 것인데 그건 기다란 나무 밀대였다. 이제는 쓰지 않는 먼지 묻은 나무 밀대. 그리고 그 옆에 당연히 함께여야 하지만 이제는 놓여있지 않은 나무밀대의 사라진 단짝. 난 갑자기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나무 밀대의 단짝은 투박하고 두꺼운 나무도마였다. 그 도마는 쓰임을 다하여 이제는 볼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되었지만, 예전에 엄마의 요리들은 모두 그 도마 위에서 만들어졌다. 나무 도마 위에서 서걱서걱 무가 잘리는 소리, 총총총 당근을 채 써는 소리, 퍽퍽 마늘을 빻던 소리를 기억한다. 어릴 때 식탁에 앉아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엄마는 마치 주방에서 요술을 부리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의 다리는 그곳에 뿌리처럼 내려 박힌 듯, 움직이지 않고 손만 분주하게 뚝딱뚝딱. 재료들을 손질하고, 썰고, 묻히고. 언제나 엄마의 요술부림의 필수세트인 나무 도마에서 말이다.


아침이 되어 눈을 떴을 때 나무 도마 위에 쌓여있는 어마무시한 김밥대군들을 본 적이 있다. 견고하게도 쌓여있는 족히 스무 줄은 넘어 보이는 김밥들을 다시 하나씩 내려트려 김 위에 기름칠을 하고 칼로 여러 차례 난도질을 하면 단면에 꽃이 핀 듯 여러 가지 색깔의 재료들로 물들어 있었다. 어떤 날은 돼지고기 등심을 사서 나무 도마 위에서 신나게 망치질하는 엄마의 뒷모습을 봤다. 튀김가루를 묻혀 깨끗한 기름에 퐁당 튀기면 바삭하고 맛있는 수제돈가스가 완성됐다. 엄마는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엄마의 요리에서는 언제나 특이한 맛이 느껴졌다. 재료 본연의 맛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질적인 맛. 처음엔 그 맛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나는 나중이 되어서야 그것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엄마는 한 가지 도마만 주야장천 쓰는 사람이었다. 도마가 한 개도 아닌데, 역시나 저 도마에는 무슨 비밀병기라도 있는 듯 엄마는 여러 개의 도마 중 그 나무도마만을 사용하셨다. 나무 도마에선 살이 벗겨진 부끄러운 닭고기가 올라가 있기도 하고, 손질을 기다리는 비릿한 생선이 올라가 있기도 하고, 신선한 과일이 올라가 있기도 했다. 어느 날 엄마가 잘라준 과일들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이상한 듯 익숙한 맛이 느껴졌는데, 그건 결국 도마에 배어든 마늘냄새였다. 한 입 배어물 때 입 안에 맴돌던 그 냄새가 너무도 싫었다. 정말이지...




엄마의 마늘냄새가 용인되는 음식이 있었다. 그건 엄마의 손칼국수였다. 밀가루에 물을 조금 추가하여 손으로 여러 번 치대면 둥그런 반죽이 만들어졌다. 그럼 엄마는 밀가루를 조금 움켜쥐고 손가락 사이로 흩뿌린 다음 둥그런 반죽을 나무도마 위에 턱! 하니 내려놨다. 우리 집에 여전히 있는 그 나무밀대로 반죽의 퉁퉁한 복부를 정성스럽게 롤링마사지해 주면, 그때부터는 얇고 널따란 도화지들이 완성되었다. 엄마는 넓게 펴진 반죽들을 다시 말아 접어 칼을 재빠르게 움직였다. 엄마만이 할 수 있는 행위예술! 몇 번의 칼질로 몇 인분의 칼숙수면들이 완성되는 신기한 광경을 나는 언제나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엄마의 손칼국수에는 특별한 비법 같은 것은 없었다. 언제나 육수는 멸치를 몇 마리 물속에 퐁당 넣어 만들어두었고, 냉장고문을 열어 집에 있는 재료들을 스캔한 뒤 그중 몇 개를 집어 썰었다. 그래서 엄마의 손칼국수는 면의 굵기가 제각각인 것처럼 어떤 날은 애호박과 양파와 당근이 들어가 있기도, 어떤 날은 김가루와 양념간장과 통깨만 올라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엄마의 손칼국수에서는 따뜻하고 깊은 맛이 느껴졌다. 내가 눈살을 찌푸리며 “저 도마 낡았는데 갖다 버리고 다른 도마 쓰면 안 돼?”라고 말해본 적도 있지만 엄마는 내 말을 무시한 채 항상 그 자리에서 묵묵히 또, 도마를 씻어 칼국수와 어울릴 김장김치를 썰어 내어 주셨다. 그러면 나는 또 고개를 그릇에 처박고 뜨끈한 칼국수를 호로록, 시원한 김장김치를 맛 좋게 먹을 뿐이었다.


나무도마에는 여러 칼자국, 그리고 그 칼자국 사이로 스며든 엄마의 맛이 배어있다. 그리고 나는 오늘따라 마늘 냄새가 배어든 나무도마가 그리울 뿐이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고, 비가 내리면 저절로 칼국수는 땡기는 법이니까. 작은 물방울들이 집결해서 구름 사이에 스며든 것처럼 내 마음도 이 날씨에 스며들기 좋은 법이니까. 




비와 그리움. 그것이 오늘의 센티한 감정의 이유다.  가끔 엄마를 보러 가는 딸이지만 사실은 여전히 내게 그리운 사람인 것처럼, 엄마의 손을 보면 외식을 하자고 말하지만 사실은 나도 엄마의 집밥을 여전히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엄마의 요리에 스며져 있는 작은 추억들마저도 나는 그립다. 이래서 조용히 배어든 것일수록 치명적이다.


                                                                                     

여행 중 식당에서_엄마의 뒷모습과 비슷해 나는 그분의 행위예술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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