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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로리 May 12. 2023

우유를 마시지 않고 아메리카노를 마셔도 우리는 커간다.

성장을 위한 호르몬

아장아장. 지나가는 돌쟁이 아기의 걸음마를 쳐다본다. 휘청거리면서 넘어질 듯 위태해 보이지만 부모는 환한 웃음과 기대를 가지고 “잘한다, 잘한다.”를 부추길 뿐이다. 넘어질라 하면 바로 잡아줄 수 있을 만큼의 딱 한 걸음 거리에 서서 말이다. 나도 덩달아 신이 나서 “옳지! 옳지!” 추임새를 넣으며 아기의 몇 걸음 내딛는 발을 더 자세히 관찰해 본다. 정말 작디작은 발이다. 순간 함께 있던 아들의 발을 내려다봤다. 아들도 걸음마하고 있는 저 아기의 발처럼 작았던 순간이 있었는데, 어느새 내 발만큼 커서 나와 같은 사이즈의 운동화를 신고 있다.


아이들은 지속적으로 성장한다. 출생과 동시에 2년 동안 가장 많이 자라고, 그 후로도 볼 때마다 달라져있는 게 아이들의 성장이다. 사춘기의 시작과 함께 몸통이 한번 더 급격히 자란 후에 모든 성장이 멈추게 되지만 우리는 그들의 꾸준한 성장을 늘 기대하며 살아간다.


“엄마 발은 왜 더 안 자라? 엄마는 키가 멈춘 거야? 어른들은 왜 자랄 수 없어?”


그렇다. 나는 자랄 수 없다. 아들의 운동화는 매년 새로운 사이즈로 바꿔줘야겠지만, 내 운동화는 매년 그대로일 수 있다. 나는 멈췄고, 아들은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성장이 끝났다고 해야 할까? 우리는 성장을 기대하면 안 될까? 아는 작가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제 우리는 성장의 다른 측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성장에는 눈에 보이는 성장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성장도 있다고. 인간의 신체는 무한히 자랄 수 없음을 인정하고 내면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한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고 말이다.




뼈의 성장을 돕는 성장호르몬은 만 55세 정도까지 분비가 된다고 한다. 즉, 뼈의 성장이 끝나도 성장 호르몬은 여전히 제 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몸을 움직이고 제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아미노산을 단백질로 만들고, 간에서 지방을 분해하도록 관여하고, 물과 무기질이 균형을 이루도록 조절하는 중요한 일들을 묵묵히 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도 자란다. 우리도 성장하고 있다. 우리의 성장은 멈추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멈춘 것 같지만 계속해서 우리의 몸속에 건강한 대사작용을 하고 있는 것처럼.


자기 계발을 위해 공부를 하고, 책을 읽는다. 건강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걷기를 하고, 홈트를 하고, 헬스장을 매일같이 간다. 자기 확언과 감사의 말을 쏟아내며, 일기와 글쓰기를 통해 나를 돌아보는 일도 한다.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일들에 도전을 해본다. 춤도 춰보고, 영상을 올리고, SNS로 내가 가지고 있던 시야를 넓혀간다. 모두 각자의 본업이 있지만 그 외에도 시간을 내어 자기 성장에 동력이 되는 부캐를 만드는 일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들이다. 균형 잡힌 이 행위들이 우리의 뼈를 더 이상 성장시켜주진 못하지만 성장호르몬의 역할처럼 여전히 우리를 건강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때문에 우유를 마시지 않고 아메리카노를 마셔도 우리는 커간다.


눈에 보이는 아기의 걸음마만이, 내 아이의 발크기만이 성장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나 또한 자라고 있고, 우리는 늘 좀 더 나아진 나를 원한다. 돌쟁이 아기에게 보행기 신발을 신기고 뾱뾱 소리로 흥을 부추기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옳지, 잘한다.”라고 말해줄 긍정적인 사람과 함께 우리에게 어울리는 신발을 신고 걸으면 되는 것이다. 언제나 커가고 있는 나와 당신을 위해.


'성공'은 대기업에 취직 못 한 나를 낙오자로 만들겠지만 '성장'은 이 모든 과정이 나를 위한 필연적인 훈련코스임을 알고 그 안에서 뭔가를 깨닫게 만들어요. 그러니 부디 그 모든 과정을 글로 남겨보길 바라요. 성공이 아닌 성장의 과정, 승리가 아닌 배움의 과정이요.
어떤 날은 자신감이 떨어지고, 어떤 날은 모든게 헛짓거리 같기도 하지만 다시 힘을 내서 뭔가를 시작하는 나의 이야기. 뒤늦게 발견한 꿈을 향해 그냥 우직하게 한 걸음씩 걸어가는 나의 이야기들을요.

                                          - 김애리, <어른의 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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