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콥스키의 음악은 마법처럼 너무 환상적이고 아름답습니다. 중학교 때 피아노 협주곡을 듣고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첼로 로코코 변주곡도 참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고 바이올린 협주곡은 아름다우면서도 신나고 화려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차이콥스키의 음악이 가볍다고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이 더 깊이가 있다고 합니다.
차이콥스키가 살았을 때에도 그의 음악은 인정을 받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발레 작품들은 혹평을 받았고 그의 피아노 협주곡, 바이올린 협주곡도 연주불가능하고 낮은 평가를 받았다가 점점 인정을 받고 지금까지 널리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그의 교향곡들을 들으면 가슴을 뛰게 하고 눈물이 나기도 하는데 사람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선율을 작곡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거 같습니다.
차이콥스키는 러시아 우랄산맥 서쪽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제철소를 관리했고 첫 번째 아내가 어린 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자 17살 어린 두 번째 아내와 6명 아이를 더 낳았습니다. 차이콥스키는 그의 두 번째 아들이었습니다.
차이콥스키의 어머니는 프랑스인 가정교사를 고용해서 4살부터 차이콥스키는 프랑스어도 유창하게 대화할 수 있었고 아버지의 플루트, 어머니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차이콥스키는 자연스럽게 피아노를 치게 되었습니다. 그는 5살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어른보다 피아노를 잘 치게 되었습니다.
차이콥스키의 집 형편이 어려워져 프랑스어를 가르쳐주던 파니(프랑스 여교사)를 내보내게 되었습니다. 차이콥스키는 파니와 헤어지는 걸 매우 슬퍼했습니다. 그의 음악이 섬세하듯 그는 어릴 때부터 감성적인 아이였던 거 같습니다.
부모님은 형편이 어려워지자 차이콥스키를 상트페테르부르크 왕립 법률하교 예비학교에 보냈습니다. 공무원으로 안정적인 삶을 살기를 바랐고
차이콥스키가 다니던 왕립법률학교를 7년 다녔는데 차이콥스키가 14살 때 어머니가 콜레로 세상을 떠나자 그는 어머니를 추억하며 3박자의 왈츠를 그렸습니다. 법률학교의 스파르타 교육 속에서 그에게 위안을 줬던 것은 피아노와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러다 그의 동성애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차이콥스키는 법률학교를 졸업하고 법무부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열정이 사라지지 않았는지 그는 계속 오페라나 연극, 콘서트를 관람했고 첫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음악에 대한 마음이 더욱 커졌습니다.
차이콥스키는 법무부에 장기 휴가를 내고 피아노 레슨을 하며 생활비를 마련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서 본격적으로 음악공부를 했습니다.
그의 실력이 뛰어나서인지 안톤 루빈시테인은 아직 졸업도 안 한 차이콥스키를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 자리에 추천했습니다. 법무부에 들어간 지 3년 만에 차이콥스키는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모스크바 음악원 화성학 교수가 됩니다.
그는 러시아 5인조 보로딘, 무소록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 큐이, 차이콥스키로도 활동하며
러시아만의 음악을 만들어보려 했습니다.
차이콥스키는 주로 남자친구들과 어울렸는데 5살 연상의 데지레에게서 엄마, 가정교사 파니 같은
안정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녀를 향한 ‘로맨스 F장조’도 작곡했습니다. 근데 차이콥스키가 결혼을 주저하자
그녀는 다른 사람, 오페라단 바리톤 가수와 사랑에 빠져서 차이콥스키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차이콥스키는 러시아 민요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민요들을 피아노 곡으로 작곡했습니다.
차이콥스키의 음악은 아름다웠지만 그는 독설가였습니다.
브람스, 헨델 , 베토벤 음악이 별로라고
그는 모차르트는 좋아해서 모차르트를 빼고는 모두 쓰레기라고 했습니다.
제가 중학교 때 듣고 감동했던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을 올려봅니다.
이 곡은 러시아 감성을 담아낸 작품으로
처음부터 웅장하게 시작하고 아름다운
선율로 계속 귀 기울이게 되는 작품입니다.
https://youtu.be/2 DmfJu3 oNDM? si=xcWEyHSkjai6 aY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