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서다

매달림이 아닌, 넘어감

by 채정완
넘어서다_acrylic on canvas_33.4X24.2_2026.jpg 넘어서다 Beyond, acrylic on canvas, 33.4X24.2, 2026

대한민국은 눈부신 경제적 성장과 기술적 진보를 이뤄왔지만, 그 이면에는 한 가지 어두운 지표가 지속적으로 존재해 왔다. 자살률이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약 29.1명 (2024년 기준)으로 OECD 평균인 약 10.8명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준을 기록하며 여전히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인다. 이러한 수치는 단순한 개인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사회적 조건과 긴밀하게 연결된 집단적 현상임을 보여준다.


이 같은 높은 자살률은 특히 청소년 및 청년층에서 그 심각성이 더 두드러진다. 통계청 자료는 2024년 기준 자살이 10대에서 40대까지의 주요 사망 원인으로 나타났고, 특히 10, 20, 30대에서는 사망 원인 1위로 기록됐다. 40대에서도 처음으로 자살이 암을 제치고 사망 원인 1위로 올라섰다. 이러한 통계는 단순히 '젊은 세대에게 발생하는 문제'라는 범주를 넘어 구조적 압박이 청년기의 삶 전반을 위협하는 사회적 현실을 드러낸다.


전 세계적으로 자살은 WHO 기준으로도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지만, 많은 선진국에서는 청소년, 청년층의 주요 사망 원인이 사고사나 질병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자살이 지속적으로 청소년, 청년의 사망 원인 1위로 나타나는 구조는 절대로 일반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이런 비교는 한국 사회의 자살 문제가 개별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구조적 부담과 문화적 압력을 반영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러한 통계는 수치 이상으로 우리 사회의 조건을 드러낸다. 한국 사회는 오랜 기간 경쟁 중심의 교육 시스템, 취업과 성취에 대한 과도한 압박, 불안정한 노동시장과 주거 비용, 관계 단절과 사회적 고립 등 다양한 요소를 개인에게 전가해 왔다. '성공'과 '정상성'에 대한 단일한 기준은 실패나 위기의 순간을 낙인으로 전환하며, 회복 가능한 과정이 아니라 곧장 절망으로 이어지는 느낌을 강화한다. 이러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자살은 비극이지만 흔한 현실이 되어버렸다.


이 작품은 바로 이러한 현실을 표현한 작품이다. 화면 속에는 교수형 밧줄이 놓여 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죽음과 절망을 상징하는 이미지다. 그러나 인물은 그 밧줄에 매달리지 않는다. 대신 높이 뛰기 선수처럼 몸을 젖혀 그것을 넘어간다. 이 장면에서 밧줄은 목을 조르는 도구가 아닌, 마주해야 할 장애물로 놓인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자살은 더 이상 특수하게 다가오는 비극의 형태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누구나가 극복해야 하는 하나의 관문이 되었음을 상징한다.


한국 사회가 직면한 자살 문제는 개인의 취약성으로 환원될 수 없다. 이는 경쟁 중심의 교육, 노동, 주거 구조, 실패에 대한 낙인, 정신건강 안전망의 부재가 복합적으로 얽힌 구조적 과제다. 이러한 현실을 넘어가기 위해서는 경쟁 중심 구조의 완화, 안정적인 교육, 고용, 주거 환경 구축, 정신건강 지원 체계의 확충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의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자살을 개인의 문제로 단순화하지 않고, 사회적 책임과 공감의 틀 속에서 대응하는 태도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 작품은 밧줄 위를 넘어가는 한 몸의 이미지이지만, 그 너머에는 우리가 모두 함께 고민하고 변화시켜야 할 현실이 놓여 있다. 이 작품은 단지 죽음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과 삶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할 필요성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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