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곽선

'쉬었음'의 세대

by 채정완
윤곽선_acrylic on canvas_33.4X24.2_2026.jpg 윤곽선 Outline, acrylic on canvas, 33.4X24.2, 2026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청년들의 노동시장 이탈 현상은 구조적 문제로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2025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대와 30대 가운데 적극적인 구직 활동을 하지 않은 '쉬었음' 인구는 약 70만 명대에 이르고 있는데, 이 규모는 10여 년 전과 비교하면 거의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로, 청년층의 사회적 참여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쉬었음' 인구는 단순한 일시적 휴식이나 재충전이 아니다. 노동시장 진입이라는 최소한의 사회적 역할과 미래에 대한 기대에서 이탈한 상태를 가리킨다. 무언가를 준비하는 시간이 아니라,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방향을 상실한 채 정체된 시간이다.


그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그 바탕에는 '성공'이라는 단일한 기준으로 삶의 가치를 서열화하는 사회 구조가 놓여 있다. 일정한 속도로 성장하지 못하면 뒤처진 것으로 간주고, 생산성과 성취로 환산되지 않는 시간은 의미 없는 공백처럼 취급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취업은 점점 더 좁은 문이 되었고, 안정된 소득과 주거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결혼과 출산은 자연스럽게 포기할 수 있는 선택지가 되었다. 사회적 관계의 단절은 은둔형 외톨이라는 형태로 드러나고, 심리적 고립은 우울과 불안으로 축적된다. 그 끝에는 극단적인 선택이라는 비극적 결말이 놓이기도 한다. 자살은 더 이상 특정 개인의 특수한 불행이 아니라, 구조적 압박이 개인의 삶을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회적 징후가 되었다.


이 작품은 이러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화면 속 인물은 바닥에 누워 자기 몸 둘레를 분필로 그리고 있다. 이는 범죄 영화에서 흔하게 나오는, 시신을 표시하기 위해 그려지는 '살인 윤곽선'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타자는 부재한다. 누군가에 의해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인물이 직접 자신의 윤곽을 그리고 있다. 이는 물리적 죽음 이전에 이미 사회적으로 지워진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을 은유한다. 인물은 그 자리에 있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윤곽뿐이다. 이 장면은 한 존재가 사회 안에서 점차 희미해지는 과정을 압축해 보여준다.


이 작업은 단순히 현상을 고발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가 직면해야 할 질문은 '왜 청년들이 쉬었음을 택하게 되었는가'이며, 더 나아가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가'이다. 해결은 개인에게 더 많은 노력을 요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실패를 견딜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과 다양한 삶의 경로를 인정하는 구조적 전환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성공과 생산성 중심의 가치 체계를 완화하고, 멈춤을 낙오로 규정하지 않는 사회적 시선이 필요하다. 윤곽선은 죽음을 표시하는 선이 아니라, 다시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경계선이 되어야 한다.


이 작업은 한 개인의 좌절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성공 중심의 사회 구조가 개인을 어떤 위치로 수렴시키는지를 묻는다. 그 선을 다시 지우는 일은, 결국 공동체의 몫임을 환기하고자 한다.

작가의 이전글넘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