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찌빠

승부만이 남은 관계

by 채정완
묵찌빠_acrylic on canvas_65.1X90.9_2026.jpg 묵찌빠 Rock Paper Scissors, acrylic on canvas, 65.1X90.9, 2026

우리가 일상에서 간단한 내기를 하거나 승부를 가를 때 흔히 하는 가위바위보 놀이의 기원은 의외로 오래되었다. 이 게임의 원형은 중국 한나라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중국과 거래를 하던 일본 상인들에 의해 일본에도 전해졌다. 일본에서 '잔켄'이라는 형태로 정착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아는 가위, 바위, 보 3수 구조 규칙이 완성되었고, 일본과 서양의 교류 속에서 서양에도 이 게임이 전파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 가지 선택지 간의 상호 우열 관계는 완전한 우연성과 동시에 최소한의 전략적 긴장을 만들어내며, 이 단순한 구조 덕분에 가위바위보는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했다.


가위바위보에서 파생되어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발전한 '묵찌빠'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승패가 결정된 이후에도 공격과 방어의 주도권이 계속해서 이동하는 독특한 규칙을 가진다. 이 게임은 단순한 승부를 넘어, 관계 속에서의 위치와 흐름이 끊임없이 뒤바뀌는 역동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인물의 얼굴은 완전히 삭제되어 있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가위, 바위, 보의 손짓이다. 즉, 인간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얼굴'이 사라지고, 오직 승패를 가르는 선택의 상징만이 남아 있는 구조다. 이는 타인을 하나의 고유한 존재로 인식하기보다, 그저 싸워야 할 경쟁의 상대로만 바라보는 현대 사회의 시선을 시각적으로 압축한 표현이다.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동일한 복장을 하고 있으며, 개별성을 드러내는 어떠한 단서도 없다. 그 결과 남은 것은 오직 '무엇을 낼 것인가'라는 선택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들이 누구인가가 아니라, 어떤 패를 들었는가이다. 인간은 더 이상 관계의 주체가 아니라, 승패를 결정하는 하나의 기능으로 환원된다. 얼굴이 사라진 자리에서 손의 제스처가 주체를 대신하는 이 장면은, 우리가 서로를 인식하는 방식이 얼마나 단순화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이러한 구조는 현대 사회의 경쟁 논리와 깊이 맞닿아 있다. 우리는 점점 더 타인을 하나의 개별적 존재가 아닌 '비교 대상' 혹은 '경쟁자'로 인식하는 환경 속에 놓여 있다. 교육, 취업, 경제 활동 전반에 걸쳐 수치화된 평가 기준이 강화되면서, 개인의 가치는 타인과의 상대적 우위 속에서만 측정된다. 그 결과 관계는 협력의 장이 아니라 끊임없는 긴장의 장으로 변질되며, 타인의 존재는 이해의 대상이 아닌 극복의 대상으로 축소된다. 이러한 인식 구조는 효율성과 성과를 극대화하는 데에는 유리할 수 있으나, 동시에 인간관계의 깊이를 얕게 만들고 사회 전반에 피로와 불안을 축적하는 원인이 된다.


문제는 경쟁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유일한 관계 맺기의 방식으로 고착되는 데 있다. 모든 관계를 '이기고 지는' 프레임으로 환원하는 순간, 우리는 타인을 통해 자신을 확장하기보다 자신을 소모하게 된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경쟁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 외의 관계 방식을 회복하는 일이다. 협력, 공존, 상호 이해와 같은 가치들이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실제 작동 가능한 구조로 자리 잡을 때, 비로소 우리는 타인을 다시 '대상'이 아닌 '존재'로 인식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단순한 놀이의 형식을 빌려, 우리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경쟁의 규칙 속에 자신을 위치시키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얼굴이 사라지고 선택만이 남은 이 장면은, 관계의 본질이 어떻게 축소되고 있는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동시에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언제부터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이기려는 존재가 되었는가. 이 작업은 그 질문을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관계의 방식에 균열을 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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