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과 백 그리고 빨강

다른 색의 피부, 같은 색의 피

by 채정완
흑과 백 그리고 빨강_acrylic on canvas_33.4X45.5_2026.jpg 흑과 백 그리고 빨강 Black, white and red, acrylic on canvas, 33.4X45.5, 2026

인류는 끊임없이 '다름'을 기준으로 타인을 구분하며 살아간다. 종교, 인종, 국적, 신체 조건과 같은 차이는 다양성으로 받아들여지기보다, 보이지 않는 경계를 만들어내는 기준으로 작동한다. 이주민이나 장애인 및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시선에서 드러나듯, '다른 존재'에 대한 이해보다 거리 두기와 구분이 먼저 이루어지는 장면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같은 공간 안에 존재하면서도 서로를 동등한 존재로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은 일상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이러한 경향은 사회의 경쟁이 심화할수록 더욱 뚜렷해진다. 취업 시장에서의 스펙 경쟁, 부동산과 자산을 둘러싼 격차, 교육 환경에서의 서열화는 개인을 끊임없이 비교 가능한 상태로 놓는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타인을 이해하기보다, 자신과 다른 지점을 빠르게 식별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거리와 위계를 설정한다.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혹은 특정한 외모와 배경을 가졌다는 이유로 '다름'은 곧바로 평가와 배제의 근거가 된다. 채용 과정에서의 암묵적 차별이나 공공장소에서의 노골적인 시선과 거리 두기, 특정 집단을 향한 집단적 혐오 표현과 같은 장면들은 이러한 구조가 어떻게 현실에서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다름'은 다양성을 드러내는 요소가 아니라, 경쟁 속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명확한 구분선으로 기능하게 된다.


그 결과 우리는 타인을 하나의 개별적인 존재로 보기보다, 몇 가지 드러난 조건이나 이미지로 단순화해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그 단순화된 인식 위에서 충돌은 쉽게 발생한다. 차이는 갈등의 원인이 되고, 경쟁은 그 갈등을 더 증폭시키는 조건이 된다. 이해를 위한 시간과 노력은 점점 줄어들고, 빠른 판단과 구분이 더 효율적인 방식처럼 작동한다.


이 작품은 이러한 상황을 직관적인 장면으로 표현한다. 서로 다른 색의 얼굴을 한 두 인물이 동시에 서로를 향해 주먹을 내지르고 주먹을 맞은 두 인물은 코피가 터져있다. 두 인물의 피부색은 다르지만, 흘러나오는 코피의 색은 동일한 빨간색이다. 피부의 다름과 관계없이 피의 색이 같다는 이 단순한 사실은 우리가 서로를 다른 존재로 규정하며 벌이는 충돌이, 사실은 같은 조건 속에 놓인 같은 존재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드러낸다. 경쟁 속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누군가의 완전한 승리로 끝나기보다,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는 방식으로 반복된다.


'다름'은 사라질 수 없는 조건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이 작품은 타인을 밀어내는 방식으로 유지되는 생존의 구조를 드러내며,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경쟁과 구분의 방식이 어떤 충돌을 낳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서로를 향해 반복되는 이 충돌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속한 사회의 방식이 만들어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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