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하지 못하는 청년, 바라보는 부모
'캥거루족'이라는 말은 한국 사회가 청년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을 함축한 단어이다. 2000년대 초, 성인이 된 자녀가 부모와 함께 거주하며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는 상황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기 시작한 이 용어는, 처음에는 청년 세대의 사회 경제적 어려움을 드러내는 관찰의 언어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 의미는 변질되었다. 이제 캥거루족은 게으르고 무기력한 존재, 자기 삶을 책임지지 못하는 '미성숙한 어른'이라는 이미지로 각인되고 있다.
이런 사회적 낙인은 청년 개개인의 삶을 단순화하고, 그들이 처한 현실의 복잡함을 지워버린다. 오늘날의 청년들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 불안정한 고용, 과도한 경쟁 속에서 '자립'이라는 이상에 가까운 요구 앞에 좌절하고 있다. 누구보다 독립을 원하고, 부모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어 하지만, 그 바람이 현실 앞에 번번이 좌초되는 것이다. '캥거루족'이라는 말은 이들의 고통을 설명하지 못한 채, 오히려 그들을 조롱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슬픈 캥거루' 작품은 이런 청년들의 상황을 그린 작품이다. 작품 속 성인이 된 자녀는 부모와 한 몸이 되어 안겨 있으나,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울고 있다. 나이가 찼음에도 자립하지 못하는 자신의 현실이 부끄럽고 슬프다고 느끼고 있다. 한편, 자녀를 감싸는 부모의 손은 따뜻함과 안타까움의 애정이 담겨 있다. 도와주고 싶지만, 품에 안는 것 외에는 특별히 더 해줄 것이 없는 무력한 위로의 복잡한 감정과 사랑이라는 이름의 무거운 책임감이 손끝에 머물러 있다.
이 작품은 한 몸이 되어 눈을 감고 있는 두 사람을 통해 '캥거루족'이라는 단어가 지워버린 감정의 층위를 다시 드러내고자 한다. 단지 의존과 무능력의 프레임에 가둬버린 시선 너머에, 좌절한 자녀와 복잡한 심경의 부모가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환기하려 한다.
'캥거루족'은 조롱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지금의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또 다른 얼굴이자, 공동체가 함께 짊어져야 할 현실이다. 우리는 이제 누군가를 비난하고 탓하기보다는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힘들고, 불안정하게 만들었는지를 돌아볼 때다. 어쩌면 진짜 자립은 혼자 일어서는 것이 아니라, 넘어지지 않기 위한 조건을 함께 만드는 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