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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에핀국화 Nov 17. 2023

사려 깊은 피우다 대표의 어느 평범한 가을하루

2028년 11월 10일 금요일 날씨 맑음

[좋은 아침입니다.]

매일 똑같은 시간 똑같지 않은 새벽이 시작 되었다.

글쓰기 루틴을 만들려는 시도로 새벽기상을 시작한게 벌써 5년 전이다. 여전히 새벽을 깨우고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참 대견하다. 고요한 시간을 만끽하고 나면 더욱 활기차게 아침을 시작할 수 있음을 알기에 이 시간을 포기할 수가 없다.

상쾌한 분주함으로 가족들의 아침을 준비하는 내 옆에 슬며시 다가온 우리 집 장남은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식탁에 올려 둔다. 나를 쓱 보더니 씻어놓은 과일과 컵까지 가져다 놓고는

"뭐 도와 드릴까요?"하고 묻는다.

아들을 향해 씽긋 웃어 보이며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계란 후라이를 부탁한 후 막내방으로 향했다.


아침잠이 제일 많은 막내딸은 여러 번에 걸쳐 깨워 줘야 한다.

1단계 방문을 열고 암막커튼을 걷어 준다.

2단계 14살 감성에 맞는 상큼한 음악을 틀어 논다.

3단계 굿모닝 뽀뽀와 함께 궁디팡팡을 해준다. (최대한 부드러운 터치로)

4단계 지각할 수 있음을 알린다.

대부분 3단계에서 일어나 침대에 앉기 때문에 협박을 해야 할 필요는 거의 없다. 오늘도 역시 3단계에서

끄~~~~ 응 소리와 함께 일어나 앉는다.


19살 첫째는 영국 유학 생활 후 미네르바 대학 1라운드에 합격했다. 중2가 되는 나이에 혼자 지내다 보니 철이 일찍 들어버린 아이는 자기 주관이 뚜렷한 그리고 도전적인 아이로 자랐다. 미네르바의 2라운드와 3라운드가 아직 남아 있지만 왠지 좋은 예감이 든다.  

아이가 돌 즈음 EBS다큐를 통해 지금은 하버드 보다 들어가기 어렵다는 이 학교를 알게 되었다. 연년생이던 두 아들을 힘겹게 재워 놓고 단칸방 같은 18평 아파트에서 티비를 시청던 장면이 생생하다.  당시 혁신적인 이 대학이 왠지 모르게 맘에 들었고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 한 살 두 살 아이를 보며 익숙하지 않은 이름을 잊어버릴 새라 스마트 폰에 저장해 두었던 게 엊그제 같다. 돌아보니 시간은 한 번도 느리게 흘렀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외대부고에 다니는 둘째는 내년이면 고3이라고 벌써 수험생 모드이다. 기숙사 생활로 둘째와도 떨어져 지내야 할 때 큰아이가 집으로 돌아와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나에게 선물로 주어진 세 아이들이 각자 자기만의 색깔로 잘 자라주니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없다.


막내딸과 남편이 학교와 일터로 집을 나간 후 큰아들과 함께 피우다 사무실에 왔다. 이렇게 훈훈한 청년이  내 아들이라니 이 동네 저 동네 소문내고 싶지만 꾹 참고 사무실로 향한다.

건물 1층에 새로 들어온 카페에서 갓 구운 빵냄새와 커피 향이 코끝에 내려앉았다.

굿모닝 인사와 함께 어느샌가 내 손에는 커피와 빵이 들려있다.

4년 전 큰애가 유학 가면서 비워진 방 한 칸으로 하브루타 독서 수업을 시작했다. 동네방네 소문낸건 아니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2년 전 이곳으로 확장이전 했다. 이 공간으로 오면서 피우다를 통해 하고 싶었던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초등, 중등 하브루타 수업은 매번 마감이 되고 있고, 내가 많은 시간 투자하는 부모교육과 성인 하브루타 수업도 인기가 많다. 독서모임, 성경하브루타, 출간 프로젝트, 피움책방 등 내 꿈이 차곡차곡 실현되고 있다. 가장 드라마틱 한 건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다.


사무실에 들어가자 평소처럼 그녀가 보였다.

"굿모닝! 오늘은 우리 아들 이랑 같이 출근했어요. 2차 시험 준비 해야 한다고 따라 왔는데

 오전에 비어있는 작은 강의실 있죠?"


 




 커피 한 모금 마시고 다음 주에  있는 강연 준비를 했다.

일주일 후 2023년에 출간한 열두 달 하브루타 저자 특강이 있는 날이다.

5년 전 세상에 나온 책이  잠깐 나왔다 사라져 버리지 않고 지금까지 꿋꿋하게 살아남아 주니 기특하고 대견할 따름이다.

강연준비 후 오후에는 출판사 미팅이 있었다. 유난히 날이 좋아 운동도 할 겸 지하철을 타고 갔다. 

작년에 출간했던 하브루타 교재가 꽤 반응이 좋았다. 여러 독서 학원에서 내 교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수업하면서 매번 활동지 만들기가 귀찮아 만든 책이었다.

고대하던 첫 단독저서가 교재일 줄이야.

에세이를 쓰고 싶어 하는 내게 출판사 대표님은 자기 계발서를 제안해 주셨다.

특별히 전업주부로 경력단절 여성들을 대상으로 써달라고 하는데 자녀교육서와 자기 계발서 그 사이 어느쯤에 있는 책이 나올 듯하다.

대표님 가방에서 계약서라고 씐 종이 한 장이 나왔다. 자연스럽게 사인을 하고 사진을 찍고 계약을  했다.

출간 계약하기가 이렇게 쉬울 줄이야. 배달온 반찬으로 저녁식사를 차리는 것만큼이나 쉬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출간 계약을 했지만 더 이상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하루다.


금요일이니 둘째가 집으로 왔다.

5 식구가 모두 모여 밥을 먹을 수 있는 금요일 저녁은 아무도 없이 혼자 있는 시간만큼이나 좋다. 계약서를 쓴 탓은 아니지만 집에 오는 길에 미팅을 가진 호텔에서 케이크 하나를 사 왔다.  디저트로 케이크를 먹으며 식탁에서 일주일의 삶을 나누고 께 교회로 향했다.

남편과 나란히 걸으며 앞서가는 세 아이의 뒷모습을 본다. 이 충만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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