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십 년도 더 되었을 것이다.
식물을 넘치도록 기르는 엄마 집에 내려가, "엄마, 이건 뭐예요?" 하고 물으면
대부분 찔레였다.
그래서 나는 내가 찔레를 좋아하는 줄 알게 되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안다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된다는 뜻이다.
찔레만 보면 기분이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던 시절에, 나는 내가 꽃 같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꽃처럼 필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까. 혹은 사람이 다 꽃이라고 생각했을까.
요즘은 꽃 한 송이보다 전체적으로 선이 고운 식물들에 자꾸 눈길이 가는데,
그동안 나는 많이 변했을 것이다.
몇 해 전부터 노마드라는 말을 들어오는 내가 아닌가.
노마드이고자 했던 시절이 있었다.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날마다 매우 다른 시간(때로는 남들이 출근하는 시간에도 출근이 이루어졌던)에 퇴근하던 나날들도 있었고, 칼퇴를 반복하며 규칙적인 일상에 젖어 나는 참 단정한 사람이라고 자족하던 나날들도 있었다. 그럴 때 이따금 타인의 삶을 빌어 들려오던 노마드라는 말은 꽤 낭만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그런 말을 듣는 사람.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사람.
하루하루 식물들을 돌보고, 식물들을 입양시키고, 공부를 하고, 글을 쓰고, 매장을 정리하고, 집안 살림을 하고, 잠을 설치고, 식물 가게들을 배회하고, 산책을 하고, 차를 마시고(요즘 자꾸 생각나는 신해철의 '일상으로의 초대' 가사군), 패브릭을 제작하고, 그림액자를 만들고... 그리고 자꾸 두리번거리고... 어슬렁거리고...
아, 그러니까 꼭 내 삶과 비슷한 것들에 애정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요즘은 선이 곱고 잎이 특별한 식물들에 자꾸 관심이 가는데,
요 며칠, 눈이 가는 녀석을 보면 화살나무다.
진궁이라는 이름을 가진 녀석인데, 수형에 따라 특별한 매력을 발산하는 야생종이다.
휘청휘청 가지를 늘어뜨리고 어디로 뻗을지 예측불가라는 듯 허공을 향해 지상에 없는 낱말들을 뿜어내는 화살나무.
관엽식물들을 주로 키우는 이들에게 몬스테라 같은 라인이 매력적인 식물이 있다면,
나처럼 야생종을 기르는 사람에게는 바로 이 진궁.
지금은 진궁의 시절이다.
붉게 물든 진궁의 잎을 보는 것으로 가을을 만끽한다.
이 계절처럼 메마른 가지에 이 계절처럼 붉은 잎을 한 채 잘 살아 있다고, 휘청거려도 이게 잘 살아 있는 거라고 담담하게 말을 건네는 진궁, 화살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