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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Sep 28. 2018

엘 데포와 폴리안 유칼립투스

얼마 전 갖고 싶은 식물이 하나 있었는데, 폴리안 유칼립투스였다. 

식물을 파는 사이트 등에서 설명하기를 대부분 동전 모양의 독특한 잎을 하고 있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폴리안 유칼립투스의 매력은 그 잎의 모양이 아니라 잎의 질감에 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그렇게 설명을 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질감은 주관적일 수 있으니까. 어쨌든 나는 그런 주관적인 매력에 끌려 그 녀석을 좀 찾아다녔다.

물론 나는 들꽃을 기르는 사람이고, 그런 매장을 가지고 있고, 그것과 관련된 일을 한다. 유칼립투스는 외래종 식물이니 좀 의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식물은 그냥 식물이다. 나는 그저 내가 조금 더 할 수 있는 일들이 많고 이야기가 많고 내가 더 관심 기울일 것들이 많은 들꽃과 동거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길을 가다가 누구네 집에 갔다가 혹은 어느 카페에 갔다가 눈길 끄는 식물이 있으면 꼭 이름을 알아서 탐색하는 과정을 거치고는 한다. 

폴리안 유칼립투스는 희귀한 식물도 아니고, 유행가처럼 흔한 유칼립투스의 한 종이니 뭐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을지 모르겠다. 식물 좀 안다는 사람들은 다 아는 이름이고. 

그런데 이것조차도 정말 단지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했다. 

화훼단지 안에 있는 친하게 지내는 분의 매장에 유칼립투스가 꽤 있길래 "폴리안은 없어요?"라고 물었다. 

 - 폴리안? 그게 뭐야?

 - 유칼립투스의 한 종류요.

 - 몰라. 요즘 사람들은 너무 어려운 것들을 물어 봐.

 - 아...

 - 유칼리면 유칼리고 장미면 장미고 틸란드시아면 틸란드시아고

 - 네...



딸아이가 식탁에서 밥을 먹으며 <엘 데포>라는 책을 읽은 소회를 밝히는데, 끝이 없을 것 같았다. 어떤 이야기는 열심히 듣고 어떤 이야기는 건성으로 듣다가 시간이 점점 흐르고 밥도 거의 줄어갈 무렵에는 거의 무신경해지고 있었던 듯하다. 그걸 눈치챈 딸아이는 마지막 질문이라는 듯한 제스처와 억양으로 물었다. 

"엄마, 그런데 엄마가 <엘 데포>는 좋은 책이라고 했잖아. 지난번에 나한테 사라고 했을 때. 이 책이 좋은 책인 줄 어떻게 알았어?" 

그러니까 아이 말인즉슨 엄마는 읽지도 않고 어떻게 알았느냐는 말이다. 나는 대답했다. 

"어딘가에서 그 책 줄거리를 본 적이 있어." 

"아." 

딸아이의 '아' 하는 소리의 억양을 듣자 하니, 썩 이해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냥 넘어가 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별다른 말로 변명을 늘어놓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잠시 함께하는 시간을 마무리했다. 


보아야 알고 읽어야 알고 경험해야 아는데, 그렇지 못한 채로 아는 척하는 일들이 많은 그런 세계에 살고 있다. 내가 식물 매장에 들어가 좀 어려운 이름의 식물 이름을 대면 미처 몰랐던 주인은 누구나 대부분 당황하고는 한다. 모르는 것이 마치 흉인 것처럼.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가 아는 것들은 너무나 먼지 같은 것들 아닌가. 

내가 딸아이에게 좋은 책을 소개한다면서 서점 어린이 코너에서 <엘 데포>를 잡고 떠들었던 그 장면을 생각하면 얼마나 웃음이 나는지. 딸아이는 엄마가 <엘 데포>를 읽은 줄 알았던 거다. 읽은 사람만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라고 믿는 순수한 시절이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어려운 식물 이름들을 물어온다고 너무 복잡한 것들이 싫다고 말했던 농원 사장님도 순수하신 분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냥 아는 척 "그거 없어요!" 하고 차갑게 대꾸하기도 하는데 말이다. 

엄청난 정보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안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 다른 개념인지도 모르겠다. 깊이 아는 것보다 어떻게 정보의 세계에 다가설 수 있는지 그런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냄새 맡고 몸으로 쓰다듬어 보아야 아는 것들이 존재하는 세계다. 아직 식물은 그렇다. 언젠가 마음에 꼭 드는 폴리안 유칼립투스 하나를 얻게 되면, '그것은 동전 모양의 잎을 한 유칼립투스의 한 종류'라는 정의 외에 정말로 그것을 정성껏 기른 사람이 써낼 수 있는 설명을 써 보아야겠다. 그러려면 일단 또 어느 꽃집이든 농장이든 들어가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겠지. 

- 폴리안 유칼립투스 있어요? 


오늘은 <엘 데포>를 정독해야겠다. 정독해야만 열 번도 더 읽은 딸아이와 진정한 대화라는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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