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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나 Feb 24. 2022

12. 우리 옛것과의 만남

'벽사'에 대하여

三物三色


지붕 위의 수호자들  

한국 전통 건축물의 지붕은 선이 곱다. 버선코나 살포시 들어 올린 치맛단의 곡선미를 생각나게 하는 처마는 기와를 올려 묵직해진 지붕이 날아갈 듯 가뿐해 보이게 한다. 선의 유영을 살피려 시선을 높이하고 가까이 다가서면 그제야 모습을 드러내는 작은 형상들이 있다. 높다란 지붕 위에 쪼르르 나란한 조형물들, 잡상(雜像)이라 불린다.  

악귀와 흉액을 물리친다는 벽사의 상징인 잡상에는 『서유기』의 주인공들과 도교의 잡신, 그리고 상상의 동물들이 등장한다. 기와처럼 구워낸 잡상은 궁궐의 전각이나 문루의 추녀마루에 모셔지는 ‘지체 높은 토우’다. 그런데 실제 인물인 현장법사를 표현한 맨 앞자리의 대당사부만 번듯한 모습이다. 다른 형상들은 기다란 두 팔을 내려뜨린 채 사방을 경계하는 자세로 차림새는 허술하고 생김새는 들쑥날쑥/뒤죽박죽이다. 손오공을 형상화한 손행자는 끝이 뾰족한 모자를 쓴 의인화된 형태 외에 완벽한 원숭이 모습(창덕궁 신선원전 터에서 발견)까지 있다. 

당나라의 현장법사가 북인도에서 불전을 구해 돌아온 사실(史實)에 입각한 <서유기>. 명나라의 대표적 신괴(神怪) 장편 소설로 요괴가 나타나고 도술이 펼쳐진다. 천계를 빌어 현실세계의 타락상을 해학적으로 풍자하고, 천제의 자리를 윤번제로 하자는 선진적인 주장을 담고 있다. <서유기> 주인공들의 활약상을 떠올리며 자그마한 체구의 잡상을 향한 이런저런 염려들을 누그러뜨려본다. 위기상황에서는 신통력을 제대로 발휘하려니 믿어본다.

본격적으로 지붕 위에 잡상을 올린 것은 임진왜란 이후부터라 알려져 있다. 전쟁의 상흔을 어루만지려 가상의 힘이라도 빌리려 했던 것인가, 역사의 질곡이 시리기만 하다.



지상의 파수꾼  

광화문 양편에는 수도 서울을 대표하는 듬직한 석조물들이 있다. 높은 좌대 위에 늠름한 자세로 앉아있는 해태 한 쌍이다. 중국 요순시대에 등장해서 아시아에 널리 퍼져 있는 상상의 짐승인 해태는 ‘해치’로도 불린다. 해치는 ‘해님이 파견한 벼슬아치’에서 맨 앞과 맨 뒤의 글자를 합친 것이라 풀이하기도 한다. 태양숭배 사상에 따르면 해는 만물을 생성시키는 근원이다. 해가 뜨면 귀신과 흉악한 짐승은 사라지고 병자는 깨어나므로 재앙을 물리치는 것으로 해석된다. 기억에 남아있는 ‘해태 타이거즈’ 프로 야구팀 이름 때문에, 해태는 호랑이 계통으로 여겨지기 쉬운데, 피부는 비늘로 덮여도 사자의 모습에 가깝고, 머리에 뿔이 하나 있다.

해태는 시비(是非)나 선악(善惡)을 판단하는 신령스러운 동물로 법과 정의를 상징한다. 옳지 않은 일을 한 사람을 뿔로 받아 버린다고 한다. 중국 초(楚) 나라 법관과 조선 사헌부 관원들의 의복 문양, 우리의 국회의사당 정문을 지키는 조각상이 이와 연관된다. 

해태는 재앙을 막는 벽사의 상징 외에도 물의 신수(神獸)로 궁중뿐만 아니라 민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할을 맡는다. 설화에 따르면 물에서 살기에 오행설에 맞춰 화재(火災)를 막아준다고 한다. 경복궁의 해태는 중건 역사 도중 불이 자주 일어나자 관악산의 화기로부터 한양 도성을 보호하기 위한 풍수 작업이었다고 전해진다.                         

불을 먹고 산다는 해태가 그려진 세화(歲畵)는 가옥 내에서 불을 다루는 부엌에 붙이는데, 이때 해태는 일반적인 무서운 모습에서 벗어난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묘사된다. 사찰에서는 업경대의 받침대에 새겨지고, 궁궐에서는 왕권의 위엄과 수호를 나타내는 기물에 표현된다. 사방팔방 다양한 표정과 자세로 등장하는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경복궁 근정전 월대(궁궐 전각 밑에 놓인 섬돌)의 해태상이다. 보기 드문 가족상으로 망중한을 즐기는 모습이다. 1592년 전소 이후 1867년에 이르러서야 중건에 들어간 경복궁,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들이 자녀를 향한 부모의 심정처럼 애틋하고 간절하였을 것이다.

경복궁 근정전 월대의 해태
잡상. 양주 회암사지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땅 속의 서수(瑞獸)  

지하세계의 수호자를 자청한 상상의 동물도 있다. 사자(死者)가 안치된 무덤의 묘실에 위치하여 외부의 나쁜 기운을 막고 죽은 자의 영혼을 인도한다는 진묘수(鎭墓獸)이다. 중국의 경우, 초기에는 주로 점토 조형이었고 점차 유약을 사용한 도기로 바뀌어 갔다고 한다. 몸체는 사자, 용, 멧돼지 등 짐승이고 얼굴은 사람이나 동물의 모습이어도 머리에는 뿔을, 몸에는 날개를 달고 있는 무시무시한 괴수의 형태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석수가 유일하다. 

우리 고고학상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 일컬어지는 무령왕릉은 유일하게 주인이 밝혀진 삼국시대의 왕릉이다. 중국 남조 양나라의 무덤 양식인 전축분(벽돌무덤), 일본에서만 자라는 금송으로 제작된 목관 등이 6세기 동아시아 문화의 정수를 수용하며 백제를 강국으로 재건시킨 무령왕의 위대한 업적을 증언한다. 

1971년 여름 이루어진 발굴 당시의 현장 사진을 보면 석수에 가장 먼저 시선이 향하게 된다. 사방이 소나무의 뿌리로 뒤덮이고 수많은 유물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무덤의 널길 중앙에서 밖을 향해 서있는 모습이 참으로 당당하다. 1500여 년 동안 암흑과 침묵의 세계를 오롯이 지켜낸 후 후손에게 왕릉을 인도하는 마지막 임무를 수행한 것이다. 중국의 진묘수가 무덤에 침범하는 자와 맞서 싸우리라는 전의를 느끼게 한다면 우리의 것은 묘주의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지켜온 살뜰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을 전해준다. 국립공주박물관에서 안식을 취하는 석수가 목도한 백제 문화는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섬세한 문양의 금제관식만큼이나 찬란했을 것이다. 


나쁜 것을 막아내고 좋은 것을 맞이한다는 벽사진경을 형상화한 조형물 중 잡상, 해태, 진묘수를 마음속에서 한자리로  모아 본다. 태곳적부터 변함없었을 우리네 소망이 내재된 상상의 존재들은 서로 다른 시대에 태어나 각자 다른 영역을 굳건히 지켜내고 있다. 그들이 바라보는 우리의 현재가 궁금하다. 역사의 흥망성쇠에서 어느 지점에 닿아있을까. 

무령왕릉 석수. 국립공주박물관
진묘수. 중국 후한.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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