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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나 Feb 24. 2022

13. 우리 옛것과의 만남

봄, 꽃

상춘곡賞春曲     


봄을 기다리며     

“나는 워낙 추위를 타선지 겨울이 지긋지긋합니다... 그런데 계절의 추위도 큰 걱정이려니와 그보다도 진짜 추위는 나 자신이 느끼는 정신적 추위입니다. 세월은 흘러가기 마련이고 그러면 사람도 늙어가는 것이려니 생각할 때 오늘까지 내가 이루어 놓은 일이 무엇인가 더럭 겁도 납니다. 하지만 겨울을 껑충 뛰어넘어 봄을 생각하는 내 가슴에는 벌써 오월의 태양이 작열합니다.” 박수근, 「겨울을 뛰어넘어」, 『경향신문』, 1961.1.19.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전시 <봄을 기다리는 나목>(2021.11.11~2022.3.1)에서 보았습니다. 눈에 익은 반가운 그림들 사이, 미석美石 박수근이 전한 중년 남성으로서의 소회에 발길을 멈췄습니다. 사진 속 순둥순둥 한 인상인 그에게 그림만큼이나 오래 시선이 머물렀습니다.

그는 석불이나 석탑 같은 석물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이를 조형화했습니다. 캔버스나 판지에 물감을 여러 겹으로 쌓아 올려, 우리 산하에 지천인 돌덩이 같고, 바짝 마른나무 껍질 같은, 우툴두툴하고 두터운 화면을 만들었습니다. 그 위에 굵은 선으로 대상의 윤곽을 그렸습니다. 눈, 코, 입의 묘사가 소략한 인물들과 이파리 하나 없는 나무들은 돋을새김을 한 듯 보입니다. 전생이 있다면 미석은 산 절벽에 천진난만한 미소의 부처를 새긴 백제의 석공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온유하고, 관대하며, 말수가 적었다는 그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성을 그리려 했다고 합니다. 작품 속 인물들에 그의 인품이 배어있다 느껴집니다. 

한창나이인 쉰 하나, 짧기만 한 생이 애석하기만 한데, 그나마 그가 세상을 떠난 때가 한겨울이 아닌 꽃피고 새가 우는 오월인 것이 일말의 위로가 되었습니다.     

“내가 지난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밭 속의 고목,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이었다... 봄은 아직 멀건만... 나목을 저리도 의연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 이리라.” 박완서, 「나목」, 1976     

낙엽을 끝낸 나목의 계절에, 코끝이 발개져 찾은 전시장에는 봄이 가까운 듯했습니다.     


박수근, 나무와 두 여인, 개인 소장

봄날 새벽에는

때때로 말은 본디 뜻을 넘어 역사적 의미까지 지니게 됩니다. ‘봄’이 그러합니다. 긴 세월 봄이란 ‘겨울과 여름 사이의 계절’만을 뜻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2019년은 3.1 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로 근대 서화의 거장 심전心田 안중식(1861-1919)의 서거 100주년이기도 했습니다. 이를 기념하여 마련된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근대 서화, 봄 새벽을 깨우다>(2019.4.16~6.2), 그 주인공은 '백악춘효도白岳春曉圖'였습니다. 1915년 두 차례 그려진 ‘백악춘효도’는 ‘여름본’, ‘가을본’ 두 작품이 있습니다. '백악'은 '북악산'을 가리키고 '춘효'란 봄날 새벽인데 ‘백악춘효도’ 속 계절은 봄이 아닙니다. 

나란히 걸린 두 족자를 얼핏 보면 바탕인 비단 색만 달라졌나 싶게 두 그림이 흡사하다 느껴집니다. 찬찬히 견주어보면 맑은 녹색과 불그레한 녹색의 수목이 주는 계절감, 미묘하게 달라진 화가의 눈높이가 눈에 들어옵니다. 화면 위로 백악이 우뚝하고, 가운데에는 새벽안개에 잠긴 경복궁의 근정전, 경회루, 광화문이 보이고, 아래에는 사람 하나 지나가지 않아 휑한 육조거리가 있습니다.

경복궁은 1915년 9월 3일 자 『매일신보』에 시정 5주년 조선물산 공진회 장소를 안내하며 실린 실제 모습과는 차이가 큽니다. 훼철된 상태가 아니라 조선이 강건했던 시기의 모습으로 잃어버린 조선의 ‘봄’을 아프도록 시리게 증언합니다. 

제목과 소재에 독립을 염원하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심전의 그림은 표현기법에서 익숙함과 낯섦이 교차합니다. 어느 한 장소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닌, 근경, 중경, 원경으로 확장된 화면 구성, 능선과 골짜기의 윤곽선을 따라 짧은 필선을 반복하여 그린 북악산은 전통시대의 관념 산수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렇지만 광화문의 세 홍예문(아치문) 앞으로 뻗은 두 갈래 어도御道와 난간석은 서양의 투시도법이 적용되어 근대적 미감을 드러냅니다. 심전의 서화가 “동양화와 서양화를 함께한다.”를 뜻하는 양양화관洋洋畵館으로 정의되는 이유입니다. 

한 세대가 물러나고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는 전환점에 동양과 서양, 옛것과 새것이 뒤섞이며 공존했던 우리 근대기, 봄에도 혹한기보다 더 매서운 바람이 불었을 듯합니다.      

안중식, 백악춘효(가을본)
안중식, 백악춘효(여름본)


화양연화花樣年華

봄의 상징에서 묵직한 역사성을 덜어내면 봄은 꽃이 됩니다. 지난해 꽃이 진 후, 까맣게 잊어놓고서는 처음 본 마냥 호들갑스럽게 반깁니다. 겨울나기를 끝내고 폭죽놀이하듯 여기저기 꽃망울을 터트리는 봄기운에 기분 좋은 취기가 돕니다.      

〇〇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〇〇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모란의 자리에 동백, 개나리, 진달래, 벚꽃, 매화 같은 온갖 봄꽃을 넣어가며 김영랑의 시를 읊어보기도 합니다. 그러다 ‘찬란한 슬픔의 봄’은 색과 자태가 고고하기 이를 데 없는 목련을 위한 계절이라고 생각합니다. 

목련木蓮은 가지 끝마다 딱 하나의 꽃송이를 피웁니다. 연꽃을 닮은 모양새가 정갈하고 자세는 꼿꼿합니다. 연꽃의 이름을 빌려온 목련은 ‘목필화木筆花’라고도 합니다. 부드러운 갈색의 털옷을 입은 꽃눈이 붓 모양이어서입니다. 문방사우 가운데 하나를 지녔어도 매·란·국·죽 사군자에 들지 않아 목련이 단독인 옛 그림은 보기 힘듭니다. 기명절지도와 화조화 속 목련은 행복을 뜻하며 ‘옥란玉蘭’이란 애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목련은 키가 헌칠합니다. 높이 올라야 꽃봉오리의 옆모습이 보이고, 더, 더 올라야 온 얼굴의 꽃봉오리가 보입니다. 조명을 켠 듯 환하게 무리 지은 꽃들이 환상적입니다.      

花開昨夜雨 어젯밤 비에 꽃이 피더니

花落今朝風 오늘 아침 바람에 꽃이 지네

可憐一春事 가련하다, 한철 봄이여

往來風雨中 비바람 속에 왔다 가는구나

      송한필, 「우음偶吟(우연히 짓다)」      

어느새 봄 날씨 변덕에 겨워, 명주솜으로 누빈 듯 푹신한 목련 꽃잎들이 툭 툭 떨어집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 그렇다는 듯 이내 시들어 버립니다. 꽃잎과 똑 닮은 모양의 푸른 목련 잎들이 꽃 진 자리를 덮어가며 봄날은 갔습니다. 

꽃과 잎을 떨구고도 의연했던 나목, 이를 기억하며 다시 돌아올 봄을 기다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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