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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나 Feb 25. 2022

20. 우리 옛것과의 만남

'고지도'에 대하여

지도별곡地圖別曲             


지도땅과 물의 肖像을 그리다

[1 한성도]

몇 해 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한국근현대회화 100선>展에서 『내금강 진주담內金剛 眞珠潭』을 보았다. 여러 차례 이루어진 寫生 경험으로 금강산의 풍경을 체득하였던 小亭 卞寬植(1899~1976)의 역작이다. 기운찬 필력과 과감한 구도에 생동감이 가득하여 쏟아지는 물줄기에 옷이 젖고 천둥 같은 폭포 소리가 전시실을 채울 것 같았다.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실에서 <漢城圖>를 마주했을 때 소정의 작품이 떠올랐다. 지도 속 우리의 산하가 그의 진경산수화를 축소해 놓은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산수화 위에 여러 갈래의 길을 내고 地名을 촘촘히 적어 넣어 지도를 그려내었을 것이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옛 지도를 보다 문득 다른 시대, 다른 지역의 지도가 궁금해졌다.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여정을 고지도로 시작해 본다.

변관식, 내금강진주담, 리움미술관

고지도문명을 기억하다

[ 2 T-O지도]    [3 천하도]

1993년, 소 축제로 유명한 스페인 나바라 지역의 동굴에서 빗금이 가득한 돌이 발견된다. 14,000여 년 전에 살았던 구석기인들이 동굴 주변의 산, 습지, 사냥감의 서식지를 그려 놓은 인류 최초의 지도로 밝혀진다. 기원전 600년경,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점토판’에 세상을 새긴다. 바다가 둘러싼 원형의 대륙에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이 흐르고, 두 강의 중심에는 황금으로 빛났던 세계 최고의 도시 바빌론이 위치한다. 1,500여 개의 산호초 섬으로 이루어진 남태평양 마셜 제도. 그곳의 원주민들은 돌멩이나 조개껍질을 붙여가며 야자나무 막대기를 엮어서 바닷길과 환초 그리고 해류를 표시한다. 서양은 기독교적 세계관을 반영한 지도를 만든다. ‘T-O지도’라고 불리는 중세 지도에는 기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이 가운데 있고 주변에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의 세 대륙이 자리한다. 

여러 종류의 고지도를 통해 자신의 생활공간을 세계의 중심으로 여기는 옛사람들의 관념을 읽게 된다. 또한 실재의 표상에 쓰인 두 가지 도형도 발견하게 된다. 인간이 원형, 사각형의 기초적인 도형으로 세계를 표현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이 달라져도 유사하게 나타나는 일종의 原型的 사고라고 알려져 있다. 우리의 지도에도 고대부터 완전의 상징으로 여겨진 형상, 원은 나타난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天圓地方’ 사상을 반영한 <천명도>, <천지도>, 원형 <천하도>가 여기에 해당된다. 

고지도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심리학, 사회학, 인류학적 지식과 함께 미술사, 도상학적인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고지도는 옛사람들이 상징 기호로 써 놓은 ‘수수께끼 역사책’이다 싶어 진다.     


조선의 지도세계를 향하다 

[4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건국 10년 후인 1402년, 조선은 <混一疆理歷代國都地圖 이하 ‘강리도’>를 제작한다. 지도 名은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華’와 중국 주변의 오랑캐 곧 ‘夷’를 ‘하나로 아우른다.’는 뜻의 ‘혼일’과 ‘변두리를 안다.’는 뜻의 ‘강리’를 포함하여 ‘알아야 할 또는 다스려야 할 역대 왕조와 세계의 모습’을 의미한다. ‘문 밖을 나서지 않더라도 천하를 알 수 있다’는 발문이 전하듯 중국 너머의 세상을 향한 조선의 자의식을 드러낸다. 당시 조선이 참고 가능한 중국의 지도는 기록에만 남아 있어 현전 하는 동양 最古의 세계지도이다.


<강리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일부만이 아닌 온전한 형태로 묘사된 아프리카 대륙이다. 나일강의 두 발원지에 위치한, 꼭대기가 빙하로 덮여 보름달처럼 환하게 보인다는 ‘달의 산’이 그려져 있다. 유럽 최초로 아프리카 대륙을 온전히 그린 <프라 마우로 지도>는 베네치아에 위치한 수도원에서 1459년에 탄생한다. 포르투갈의 탐험가 바르톨로뮤 디아스(1450~1500)가 아프리카의 최남단, 희망봉을 발견한 것은 1488년이다. <강리도>는 유럽보다 수십 년이나 먼저 아프리카를 그려내 국제 학계로부터 당대 最高의 세계지도로 평가받는다. 

중국의 지도 역시 세계사에 화려하게 기록된다. 중국 후난성의 무덤, 마왕퇴에서 발굴된 <地形圖>와 <州郡圖>는 부호와 축척을 사용한 동양 최초의 지도이다. 기원전 200년경에 실측이 이루어졌으리라 추정될 만큼 정확성을 자랑한다. 명대 수군제독이자 외교관, 정화(1371~1433)는 인도양을 건너는 대탐험에 나선다. 가축과 식물을 배 안에서 기를 만큼 규모가 크고 성능이 좋은 선박의 제조기술과 뛰어난 지도 제작기술이 28년간 일곱 차례 이루어진 대항해를 가능케 한다.     

17세기에 이탈리아 선교사인 마테오리치(1555~1610)의 <坤與萬國全圖>가 들어오기 전까지 조선에서 가장 훌륭한 세계지도였던 <강리도>는 현재 일본에 보관되어 있고 중앙박물관에는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강리도>에서 조선의 뛰어난 정보력, 기술력과 함께 굴곡진 우리 역사의 단면과도 조우하게 된다.     


지도시대정신을 기록하다

서기 166년에 로마 사신들은 인도에 이르는 바닷길과 말레이반도를 건너는 육로를 거쳐 중국에 도착한다. 중국을 다녀온 사신들이 전해준 정보와 ‘地球 球體說’을 토대로 하여 그리스의 천문·지리학자 프톨레마이오스는 세계지도를 완성한다. 로마가 멸망하자 그 존재가 잊혀졌다가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서는 성서 다음으로 대량 보급되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 훗날 이탈리아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1506)의 역사적 항해의 시원이 된다. 독일의 지도학자 발트제뮐러(1470?~1518?)는 이탈리아 탐험가 아메리고 베스푸치(1454~1512)가 주장한 제4의 대륙이라는 말에 영감을 받는다. 세계 최초로 ‘아메리카’ 대륙을 기록하여 흔히 ‘미국의 출생증명서’라 불리게 되는 지도를 1507년에 제작한다. 

지도의 변모에 인류의 역사적 도전과 탐험이 함께하는 것은 현대에도 다르지 않다. 2007년도에 북극 해저에 국기를 꽂은 러시아는 지난 2013년 말 세계 최초로 북극에서 석유를 채굴해낸다. 여러 국가와 기업들이 북극해로 몰려드는 상황은 19세기 금광을 찾아 서부로 사람들이 몰렸던 미국의 ‘골드 러시(gold rush)’와 유사하여 ‘콜드 러시(cold rush)’라 불린다. 세계의 관심이 북극해 자원과 북극을 통과하는 해상항로 개발에 집중되며 지도는 새롭게 그려지고 있다.   

  

종이나 양피지에 문명을 기록하던 고지도를 첨단 기술이 대신한 지 오래이다. 실제 세상의 轉寫를 눈앞에 두고도 때때로 길을 잃고 헤매는 우리들. 무뎌진 거리와 방향 감각을 탓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고지도가 그려 내고 있는 현대인의 肖像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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