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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나 Feb 27. 2022

21. 우리 옛것과의 만남

혼인한 딸에게

이별 못한 이별     

씁쓸하다. 허둥지둥 나선 길에서 미처 챙기지 못한 무언가가 기억났지만 되돌아가기에는 늦어버려서다. 이런 낭패다 싶은 일, 낯설지 않다. 지난봄 첫 아이의 혼사 때도 그랬다. 사랑한다 말하고, 잘했다 칭찬해주고, 안아줬던 적이 언제였던가. 감정을 표현하는, 낯간지럽다 싶었던 모든 일들이 아쉽고 그립다. 


봉과封裹(국가의례에 사용되는 의물의 포장), 왕실의 품격     

마음의 표현이 마치 내용물이 드러나면 바로 버려지는 포장 같다고 여긴 적이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매듭이 헐거워져 자칫하면 물건이 빠져버릴 보자기처럼 난감한 꼴이 같아서였을까. 꽁꽁 싸매기도, 그렇다고 활짝 풀어지지도 않는 아이에 대한 생각으로 갈팡질팡할 때 떠오른 것이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전시 ‘조선왕실의 포장 예술’에서 보았던 보자기들이다. 비단·마·면·종이 등 여러 재료로 만들어진 홑보자기, 겹보자기, 솜보자기, 누비보자기, 기름종이를 직물에 부착한 맛보자기가 있었다.      

물건의 수명은 사용뿐만 아니라 보관에 의해서도 좌우된다. 귀한 물건과 행사가 많았던 왕실은 일상용품과 의물儀物의 건사에 더욱 공을 들였으리라. 왕실의 보자기는 요새 흔히 쓰이는 반질거리는 천과 달리 옷을 지어도 손색없겠다 싶은 재질이었다. 안감과 겉감, 끈마다 달리 쓰인 홍색·청색·자색·황색의 대비는 세련되고, 다양한 종류의 섬세한 문양은 멋스러웠다. 거기다 마주 보는 두 모서리에 붙인 긴 끈으로 물건을 여러 번 돌려 묶어 여밈이 야무지고 품새가 단정했다. 

어떤 형태와 크기의 물건을 감쌌을지 짐작케 하는 흔적과 고정대, 향香, 완충제 등 여러 부자재를 보며 포장은 내용물보다 하찮다는 예전 생각을 지워갔다. 

아이를 품어주는 부모의 마음도 저처럼 맞춤하면 좋았을 터인데. 보자기 한 점 한 점이 주는 이의 정성과 받는 이에 대한 예의,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하피첩바래지 않는 붉은 마음     

이별에 예습이 가능할까. 이별 후, 저려오는 마음에 남녀의 차이나 시대의 구분이 있으려나. 

마음 한편 다홍 비단을 앞에 두고 붓을 든 한 사내의 모습이 그려진다. 국립민속박물관 전시 ‘하피첩, 부모의 향기로운 은택’에서 본 『정약용 필적 하피첩(丁若鏞 筆蹟 霞帔帖, 이하 하피첩』이 떠올라서다.     

하피첩의 제작연대는 1810년(순조 10년), 다산의 나이 49세 때였다. 그가 전라도 강진 땅에 유배된 지 10년째로 양수리에 남아있던 부인 홍혜완이 혼인 30주년이 되던 해에 낡은 치마와 함께 사언(四言) 시를 지어 보낸 지 3년 후다.

‘그대와 이별한 지 7년/서로 만날 날 아득하니/살아생전 만나기 어렵겠죠/ 집을 옮겨 남쪽으로 내려가/끼니라도 챙겨 드리고 싶으나/해가 저물도록 병이 깊어져/이내 박한 운명 어쩌리까/이 애절한 그리움을/천 리 밖에서 알아주실지’

아내에게 보낸 다산의 답이 ‘붉은 치마’라는 말을 숨기고 어깨에 걸치는 숄과 비슷한 중국 복식의 이름으로 바꿔 붙인 ‘하피첩’과 시집가는 딸에게 준 ‘매화병제도梅花倂題圖’다.  

‘내가 탐진(강진의 이칭)에 유배 중인데, 병든 아내가 낡은 치마를 부쳤다. 시집올 때 입었던 훈염(결혼 예복)이다. 홍색은 바래고 황색도 옅어져서, 서첩으로 만들기에 꼭 맞다. 이에 재단하여 작은 첩을 만들어, 경계하는 말을 붓 가는 대로 써서 두 아들에게 물려준다......’     

200여 년 전, 세상과의 기약 없는 헤어짐 속에서 방대한 저술을 남긴 실학자이자 개혁가. 익히 들어온 다산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가려놓았다. 아버지, 그리고 남편으로서의 다산을 보여주는 글과 그림이 길고 긴 이야기를 전한다.

 

      

미암일기(眉巖日記)그대는 나의 잃어버린 반쪽     

결혼 생활에 대해 아이와 이야기를 나눈다면 들려주고 싶은 일화들이 있다. 400년이 넘는 시간의 간극을 잊게 될 것이다.     

『미암일기』는 유희춘(柳希春)이 55세 되던 1567년부터 세상을 떠나던 해인 1577년까지 약 11년에 걸쳐 쓴 그의 일기와 자신과 부인 송 씨의 시문(詩文)을 모은 것이다. 

아들과 딸을 가리지 않는 가족 관계, 본손과 외손을 따지지 않는 친족관계, 남자가 여자 집에서 혼례를 올리고 사는 장가와 처가살이 또는 친정살이가 보편적이었던 조선 중기의 사회상과 생활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성리학적 질서에 의한 가부장적 조선사회라는 단편적인 상식을 유쾌하게 깨뜨리며 ‘금성에서 온 남자와 화성에서 온 여자’의 만남인 결혼에 유효한 조언을 해준다.

살림을 주관하면서 남편과 동등한 위치에 서고, 여가생활을 즐기며 평생 글을 써서 문집 『덕봉집』을 남긴 부인, 현대 여성으로 태어나서 비혼이라면 알파걸, 기혼이라면 슈퍼맘이 되지 않았을까. 긴 이별에도 돈독한 부부애를 유지한 데에는 임금께 글을 가르칠 만큼 경학에 능한 고위직 문관으로, 부인을 비롯한 가족들을 보살피고 존중해 온 남편의 역할도 중요했다. 첩과 서녀, 기녀에 관련된 현대사회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도덕성의 문제를 차치하고 유희춘과 송덕봉 부부를 바라본다. 진정한 동반자란 인생의 난제에 한 모범 답안이지 싶다.    

  

보자기와 하피첩에서 미암일기까지, 옛사람들의 자취를 따라 시간을 거슬러 오르며 아이에게 전하고 싶은 것들을 되짚어 본다. 그러다 슬그머니 결혼은 더 이상 이별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이전과 달리 필수 아닌 선택 가능한 통과의례이고, 무엇보다 현재는 지구 너머 우주까지 통신이 자유로운 시대가 아니던가. 어쩌면 훌쩍이며 떠나보낸 대상은 지금 그대로가 아닌 기억 속 걸음마를 시작한 어릴 적 아이는 아니었을까. 이제는 정말로 헤어져야겠다 싶어 진다, 생각만 하면 콧날이 시큰해지는 주책스러운 감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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